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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게 최선이었니?

대도시의 사랑법(2024)

by 박지수

줄거리

눈치 보거나 계산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인 재희(김고은). 그리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남자 동기 흥수(노상현). 서로는 너무나도 다른 존재였다. 재희는 신입생 환영회 때 학교에 오토바이를 끌고 온 모습을 보인 이후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반대로 흥수는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학교에 숨긴다. 그리고 몰래 게이 클럽에 가서 사랑을 찾는다.


재희는 우연히 흥수가 어떤 남자와 키스를 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후 그녀는 흥수가 나쁜 소문에 휘말리는 것을 막아준다. 이후 재희-흥수는 동거를 결심한다. 흥수는 게이라 같이 살아도 안전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한편 흥수는 집값을 아끼기 위해 동거를 하겠다는 다소 소박한 동기였다. 이 기묘한 우정은 13년 동안 이어졌다.


재희는 흥수가 게이라는 사실에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흥수가 다른 남자와의 연애를 잘 할 수 있도록 조언해주기도 했다. 흥수도 그녀의 직장 생활, 남자친구 때문에 침울해하는 재희를 위로해주며 대학 시절처럼 자신답게 살라 격려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끝내 맺어지지 않는다. 재희는 민준(이상이)이라는 직장 동료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한단 이야기를 듣고 결혼한 것이다.


영화의 문제: 우정과 로맨스는 분리되었다?

그런데 이 결말이 불안한 이유. 영화가 애써 재희-흥수의 관계를 우정으로 단정하는 모습으로 그린단 것이다. 그러나 상대를 상대답게 세워주는 우정. 원작 작가 박상영이 말했듯 자기답게 살지 못하는 대도시 속에서 이들도 서로를 사랑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런 육체적 접촉이나 로맨스는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사랑한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증거는 영화가 결국 도려내지 못한 달달함이다.


그러면 의문점은 왜 재희에게든 흥수에게든 다른 상대와의 로맨스를 보여주냐는 것이다. 재희-흥수처럼만 하면 괜찮다. 문제는 재희-흥수의 관계를 제외하고 재희와 흥수가 따로 만나는 사람들과는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묘사되지 않는단 것이다. 재희-흥수 때문이든 상대 때문이든. 민준과의 결혼을 결심한 이유도 남자와 여러가지를 해봤지만 할 수 있는 게 결혼밖에 안 남았다는 것 때문이다.


흥수와 만났던 다른 남자인 수호(정휘)와의 관계의 경우 묘사는 재희의 그것에 비해 점잖다. 그런데 결말에서 수호는 흥수와 헤어질 때 자신이 흥수에게 집착했다고 인정한다고 문자를 보낸다.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이야기와 함께. 수호는 흥수가 자신이 게이라고 밝히며 살길 원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조차도 흥수를 가두는 태도라 생각했던 것이다.


재희-흥수가 경험했던 우정 빠진 관계들을 보면 한 가지 의심을 해볼 수밖에 없다. 재희-흥수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한 건가. 이들 사이엔 감정이 없으니 우정과 감정을 다 만족시키려면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하는가. 우정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처럼. 그런데 은연중에 영화는 우정이 뒷받침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인정한다. "집착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이 대사는 이것도 암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재희가 민준을 만나 결혼을 하는 결말을 맞이해도 불안하다는 생각이 든 거다. 영화 안에서 민준이 흥수처럼 재희를 재희답게 인정해주는 모습, 과정이 짧게 묘사가 되었으니 말이다. 묘사만 보면 민준은 재희가 경험했던 다른 남자들과 비슷하다 느껴진다. 그래서 민준과의 결혼도 우정이 배제된 사랑 때문이라는 의혹이 든 거다. 민준과 결혼하는 것은 재희에게 정말 최선의 결말이었을까.


또 다른 동성애 영화였던 아가씨가 떠오른다. 대도시의 사랑법처럼 담백하지 않고, 온갖 시커먼 감정들이 들끓는 영화다. 수위 높은 장면들도 많았고. 그러나 아가씨를 재밌게 봤었던 이유. 사랑 속 로맨스와 우정은 나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히데코(김민희)와 남숙희(김태리)가 맺어진 것은 히데코의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공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의혹: 재희-흥수는 서로를 이용했다?

대도시의 사랑법이 불쾌한 이유는 동성애 때문이 아니다. 그걸 빌미로 애써 사랑을 로맨스와 우정으로 찢어놓으려 하면서 사랑은 우정을 기반으로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중적인 자세를 취하기 때문이다. 재희-흥수를 통해 우정은 사랑이 아니라고 하면서 우정만으로 사랑이 성립되는 걸 보여주면 대체 어떻게 영화를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의혹까지 든다. 재희-흥수도 자기를 위해 서로를 이용해먹은 것 아닐까.


만약 흥수가 게이가 아니고, 재희가 남자라고 해도 이야기가 이상해진다. 영화의 결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재희와 흥수는 서로가 각자의 여자친구를 만날 때 서로에게 "너답게 하면 돼!"라고 격려하는 사이다. 그러나 재희가 교제가 잘 돼서 결혼을 한 뒤 그들의 우정은 끝나버린다. 그러면 이때까지 그들은 그들의 여자친구를 위해서 서로를 감정을 쏟는 휴지통으로 이용했을 뿐인 건지.


다른 가능성은 없었는가 하는 아쉬움

재희가 보여준 13년 간의 사랑은 흥수가 게이 성향을 접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했다 생각한다. 나는 그럴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는 걸 알아요. 근데 우린 하나도 안 이상해!"라고 할 정도로 절절한 관계라면 말이다. 재희의 캐릭터만 생각하면 서로가 윈윈하는 사랑의 형태가 새롭게 완성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그 가능성을 애써 배제한다.


영화가 흥수의 모습을 빌려 성정체성을 자기가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결혼이나 사랑의 형태도 그럴 것이다. 영화는 재희-흥수의 우정을 통해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다만 흥수는 게이라는 특성 탓에 그걸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해 아쉽다. 영화에서 흥수가 새로운 사랑의 형태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영화를 통해 느낀 불쾌함이 해소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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