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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디어 속 누군가를 심판할 자격이 있는가

더 퀴즈 쇼 시즌 2(2009)

by 박지수

들어가며

배우 김새론이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그리고 유튜브의 누군가가 사망 원인으로 배우 김수현을 지목했다. 그 이후 사람들은 김수현에게 왜 김새론을 지켜주지 못했냐며 항의하고 있다. 김수현은 그로 인한 이미지 악화로 계약 몇 개가 해지되기도 했다. 나는 이 사건에 오가는 이야기들에 관심이 없다. 내가 함부로 이 사건을 판단할 자격이 되는지를 모르겠어서 그렇다. 유튜브, 인터넷 뉴스 등의 연예인 이야기들만 보고 이들에 대해 판단하고 심판할 수 있는 것일까. 더 퀴즈 쇼라는 일본 드라마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퀴즈쇼를 빌려 이뤄지는 심판

드라마의 배경이자 주요 소재는 퀴즈쇼 '더 퀴즈 쇼'다. 카리스마 넘치는 진행자 MC KAMIYAMA(사쿠라이 쇼)는 모든 문제를 맞히면 참가자의 꿈을 반드시 이뤄줄 수 있다 유혹한다. 그런데 후반으로 갈 수록 퀴즈는 그들이 숨기고 싶은 어둠에 대한 퀴즈로 바뀐다. 프로그램은 이렇게 퀴즈의 형식을 빌려 참가자들을 심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참가자이자 뮤지션 안도 코스케(요시다 에이사쿠)가 세계 투어를 하기 위해선 자신이 파트너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만 했다. 그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MC KAMIYAMA에게도 숨겨진 어둠이 있었다. 그는 방송이 끝나면 독방 안에서 덜덜 떠는 나약한 인간, 카미야마 사토루란 것이다. 카미야마는 과거에 어떤 사고를 당해 기억 상실에 걸린 상태였다. 그를 꼬드긴 사람은 더 퀴즈 쇼 디렉터 혼마 토시오(요코야마 유)였다. 카미야마의 꿈은 모든 기억을 되찾는 것이었다. 혼마는 자신이 그 꿈을 이뤄준다고 약속하고 카미야마를 섭외한 것이다. 그런데 카미야마는 회차를 거듭하며 잃어버린 기억이 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꿈을 미끼로 퀴즈쇼에 참가한 사람들을 심판하는 계획에는 흑막이 있었다. 디렉터 혼마였다. 그는 이전에 비행기 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 탓에 동승자이자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던 좋아하는 여자아이인 미사키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 사고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을 조사해 그들에게 복수하는 것. 이것이 혼마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심판 대상에는 또 다른 동승자이자 친구 카미야마도 있었다. 혼마는 카미야마가 미사키를 죽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혼마에게 퀴즈쇼는 심판의 도구였다. 퀴즈쇼는 꿈이라는 상품을 대가로 사람들이 숨긴 것들을 이야기하라 요구할 수 있는 최적의 장르였다. 그를 변호하는 강력한 수단은 시청률이었다. 참가자들의 어두운 실체는 좋은 방송거리로만 판단될 뿐이다. 그것이 드러나더라도 방송 관계자들은 시청률이 좋았냐만 판단할 뿐, 경찰에 신고하는 식의 후속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다. 드라마 속에서 사람들을 단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공권력이 아닌 미디어였다.


드라마 속 위험: 편향된 정보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후 카미야마는 그 유치한 계획이 혼마의 진짜 죄를 은폐하려는 수단이라 폭로한다. 그들은 이후 서로를 부여잡고 통곡하는 촌극을 보여준다.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대체 뭘 위한 퀴즈쇼였던 것인지. 퀴즈쇼에서 제시된 정보들은 모두 혼마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만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더 퀴즈 쇼에서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묘사하지 않는다. 다만 나처럼 허무함을 느꼈을 것이라 짐작한다. 퀴즈쇼를 통해 나쁜 사람들을 심판하는 재미로 봤는데, 그게 시청자(혹은 공익)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개인의 복수를 위해서라니.


처음에 온갖 미디어에서 쏟아지는 연예인들 이야기들만 가지고 이들을 판단하고 심판할 권리가 있을까 화두를 던진 적이 있다. 이 드라마는 그럴 권리가 없다고 탁 잘라 말한다. 어떤 미디어든 소재를 100% 공정하고 면밀하게 다룰 수는 없다. 어딘가에서는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의 의도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악의를 가지고 사람의 평판을 깎아내리기 위해 미디어를 만들면 더 위험하다. 그렇기에 미디어 안에서 다뤄지는 사람에 대한 판단은 신중해야 한다. 이게 더 퀴즈 쇼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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