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17(2025)
미키 17을 보고 궁금한 게 생겼다. 복제인간 미키 17(로버트 패틴슨)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옛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되살아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왜 자기 여자친구 나샤(나오미 앳키)가 미키 17이 다시 복제된 미키 18(로버트 패틴슨)과 바람을 피운 뒤, 죽지 않겠다고 태도를 바꿨던 것일까. 왜 독재자 케네스 마셜(마크 러팔로)이 주인공의 활약으로 사망한 뒤, 미키 17의 꿈 속에서 아내 일마(토니 콜렛)에 의해 케네스가 되살아나는 장면이 등장했을까.
영화관에서 막 보고 나왔을 때는 이 두 장면이 목적과 다소 안 맞는단 생각이 들었다. 미키 17의 목적은 역시 SF로서 낯선 환경과 새 과학 기술 속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찰해야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사소한 장면들이 삽입된 것일까. 지금 제시할 수 있는 답 하나. 이 사소한 사건들이 미키 17과 케네스에 대한 인식을 뒤집은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전환은 어느 누구의 죽음도 이용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끈다.
영화에서 죽음이 이용당하는 방식은 2가지다. 죽기 위해 이용당하거나 죽음 자체가 이용을 당하는 것. 미키 17은 둘 다 해당되었다. 영화 초반에 미키가 16번이나 죽는 모습은 케네스가 새롭게 정복하려는 행성의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모습이기도 하다. 혹독한 추위와 낯선 바이러스를 극복해내기 위해 그는 몇 번이고 죽음을 경험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연구 결과에 관심을 가질 뿐, 그것을 위해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지 공감해주려 하지 않는다. 미키 17 본인마저 자신은 이해를 못 받는다 생각했다.
케네스는 반대로 주도적으로 죽음을 이용하는 독재자다. 한편 그는 아내 일마(토니 콜렛)에게 전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어수룩했다. 어수룩할 뿐만 아니라 행성의 토착 생명체였던 크리퍼를 말살하자는 말을 할 정도로 목적을 위해선 무엇이든 하는 잔인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미키 17을 저녁식사에 초대해놓고 그에게 그의 목숨을 뺏을 수 있는 실험을 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케네스는 우주선 사람들 대부분에게 존경을 받는다.
미키 18과 나샤의 바람이 중요한 이유는 이 사건을 계기로 미키 17에게 새로운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가 아예 사라질 것이란 두려움. 만약 미키 17이 죽으면 미키 17로서의 기억과 경험은 아예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샤와의 은밀한 관계는 미키 18만이 경험했던 것이기에. 역설적으로 이 두려움이 미키 17을 누구도 함부로 목숨을 뺏지 못하는 인간으로 바꿔준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에 '미키 반즈'라는 인간 시절의 이름을 되찾게 된다.
미키 반즈의 꿈 속에서 케네스를 되살린 존재는 어딘가에서 사망한 아내 일파였다. 그녀는 케네스의 피를 가지고 케네스의 복제 인간을 만들어 그를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다시 이용하려고 한다. 지도력이 있지만 남의 죽음을 이용할 정도로 악랄한 독재자도 아내 등에 의해 이용당하는 소모품이라는 사실이 폭로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그의 죽음을 이용하겠다는 악한 마음을 품으면, 케네스가 복제되지 않고도 또 다른 케네스가 나올 수 있겠단 불안감을 일으키는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