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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티네(1993)

기타노 다케시가 들려주는 허무의 멜로디

by 박지수

야쿠자가 선택된(?) 이유

소나티네의 주제를 드러내는 명언이 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영화는 무라카와란 야쿠자의 삶과 죽음을 통해 이 일면을 잘 드러낸다. 가장 폭력적이기에 가장 죽음과 가까운 존재.


기타노 다케시는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야쿠자는 죽음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가장 좋은 소재라고. 이처럼 소나티네는 야쿠자 영화의 형식을 빌려 인간의 허무주의를 노래한다.


오키나와에서 찾은 활기

영화는 어떤 도박장에서 시작된다. 거기에 주인공은 없다. 나중에 들어와 총격전을 벌인다. 거기에 폭력으로 인한 카타르시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번 이 일을 해온 듯한 권태가 존재한다.


이처럼 무료하게 일상을 보낸 무라카와에게 보스는 오키나와 행을 제안 받는다. 다른 야쿠자를 도와주라는 명령과 함께. 그리고 오키나와로 간 무라카와. 거기서 그는 활기를 되찾는다.


무라카와는 오키나와에 있으면서 부하들과 함께 해변에서 노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해수욕장에서 함정을 파기도 하고, 불꽃을 가지고 총싸움을 하기도 한다. 그 순간에는 죽음을 잊은 듯이.


이때 무라카와는 화면의 중심에 놓여 있다. 오키나와에 가기 전, 무라카와는 화면 주변부에 있었다. 이 연출이 무라카와가 찾은 활기를 더 강조한다.


오키나와에서마저.......

그런데 무라카와 등 야쿠자들은 죽음이 가까이 왔단 것을 이미 직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오키나와 전에도 없었던 모습은 아니었다. 오키나와의 풍광 때문에 그 그림자가 더 짙게 느껴졌을 뿐.


야쿠자들의 천진난만한 놀이 속에서도 그들의 불안을 읽을수 있다. 함정, 총싸움 등의 놀이들에선 죽음이 연상된다. 그들은 언젠가는 죽겠구나 하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이 세상인 것 같다. 죽음이 있고, 그것이 가장 끔찍한 형벌이라는 것.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것. 그것을 애써 잊으려 사는 사람들. 소나티네는 그 은연중에 서린 공포를 포착한다.


죽음이 두려워서 죽음을 선택한다

무라카와는 죽음이 두려워서 죽는다는 역설적인 선택을 한다. 자신의 죽음만큼은 자신의 통제에 두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다. 그 삶을 놓은 듯하면서 삶을 살려는 허무주의가 영화에 짙게 깔려 있다.


이런 철학적인 지점 때문일까. 소나티네는 예상외로 재미가 없었다. 야쿠자 영화라면 폭력과 그 카타르시스가 있어야 할 테니. 그런데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폭력이 아니었다. 죽음과 그 죽음에 무감각해진 무표정이었다.


그 무표정함은 여러 죽음을 바라보면서 찾아온 공포에 마비된 탓에 짓게 되는 무표정일 것이다. 그런데 삶을 살려 하니 고통스럽고, 그래서 죽음을 자초하는 비극.


그래서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 말은 소나티네에서는 이렇게 해석될 수 있겠다. 살려 하면 죽는 공포를 느끼고, 그래서 죽고 싶어진다. 그래서 삶과 죽음은 구별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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