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분석: 유만수(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이란 영화에는 '착한 유괴'란 아이러니한 개념이 나온다. 주인공 일행(신하균, 배두나)은 돈을 위해 아이를 납치한다. 그러나 돈을 받은 뒤에는 아이를 놓아준다. 그러면 돈도 얻고, 아이도 무사하고. 모두가 상처 없이 끝이 날 수 있단 이야기다. 그런데 이는 아이의 사망으로 그 실체가 드러난다. 착한 유괴란 말은 유괴를 정당화시키는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어쩔수가없다의 유만수(이병헌)을 떠올릴 때 이 개념이 다시 생각 났다. 유만수도 스스로를 합리화했기 때문이다.
유만수는 가족, 생계, 자신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 제지 회사에 취업을 하려 한다. 그는 "어쩔 수가 없다"고 누누이 변명한다. 제지업 경력 25년, 자폐 딸의 첼로 교습비까지. 현실은 유만수를 옥죈다. 그러니 제지 회사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게 현실적이지 않더라도. 그런데 살인을 통해 취업하려 했던 게 문제였다. 자신의 일자리를 이미 얻은 사람과 그 지원자들을 다 죽이려 했던 것이다. 이것이 유만수의 '착한 살인'이다. 그 비현실적인 계획이 실행된 순간, 유만수에 대한 동정은 불편함으로 바뀐다.
그 비현실적인 계획이 이뤄질 때의 카타르시스를 기대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것마저 배제한다. 첫 번째 살인은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이뤄진다. 두 번째 살인은 무미건조하다. 마지막 살인은 너무 쉽게 이뤄진다. 어느 쪽이든 유만수의 뿌듯한 마음을 반영하지 못하는 연출이다. 거기다 현실적이지 못하고 아름다움만 강조된 연출, 맥을 끊는 기괴한 유머까지. 이 특징이 오히려 관객들에게 유만수의 착한 살인이 진짜 어쩔 수 없었던 살인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어쩔수가없다는 유만수와 같은 약자들의 싸움을 그린다. 서로가 죽고 죽어야 취업이라는 조그만 목표를 간신히 이룰 수 있는 세상. 이 점은 기생충과 비슷하다. 그러나 한편 영화는 이것이 온전히 사회만의 문제일까 반문한다. 분명 현실은 유만수를 살인으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유만수는 윤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영화는 어느 것이 더 문제인지를 답하지 않는다. 대신 서늘하고 아름답고 짓궂은 시선으로 그 속의 아이러니를 드러낼 뿐이다.
그럼에도 유만수는 불쌍한 사람이다. 정말로 이 선택지밖에 없었나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아내 미지(손예진)의 말대로 집을 작은 것으로 바꾸고 쓸모 없는 소비를 줄이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정원은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딸의 학원비는 내줄 수 있었을 것이다. 2번째 희생자였던 고시조(차승원)가 이 점에서 유만수의 반면교사였다. 그도 제지업에서는 스페셜리스트였다. 그러나 신발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만수는 제지업에 자신을 가두었다.
유만수의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은 변명이자 자백이다. 그를 둘러싼 현실은 잔혹한 게 맞다. 이제는 AI와 일자리 경쟁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도 그것으로 인해 다시 일자리를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런데 그 잔혹함을 핑계로 자신의 범죄를 선의라 정당화한 사람도 유만수다. 유만수는 그로 인한 비극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대표하는 것은 유만수와 그 희생자들만의 비극이 아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착한 살인'을 저지르는 우리 모두의 초상이다. 마음으로든 실제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