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분석: 박교순(신의 악단)
신의 악단에서 박교순(박시후)의 인생 방향이 바뀌는 결정적 순간. 박교순은 결혼을 앞두고 있던 여자와 어떤 말도 없이 이별한다. 그 후 가짜 찬양단을 같이 만들고 있었던 어떤 단원은 박교순에게 '사랑은 늘 도망 가'라는 음악을 연주한다. 그런데 박교순은 그 단원을 체포하지 않는다. 남한 음악을 북한에서 불렀음에도. 그 때부터 박교순의 마음은 풀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 결말에선 끝내 위대한 선택에 도달하게 된다.
스크린 바깥에서 이런 변화를 바라보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박교순에게 이별이 왜 중요한 일로 남게 된 건지,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은 없다. 이 사소한 공감으로 인해 사람이 바뀔 수 있을까? 의문이 먼저 든다. 단순히 하나님의 은혜라고 넘겨짚기에는 너무 큰 서사적 허점이다. 그러나 영화 안 세계랑 박교순의 심정을 생각해보면 허점이 아닐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영화 안에서 박교순은 이미 취약한 상태다. 군복을 입은 모습을 보면 마음도 단단해 보인다. 그러나 그의 감정 상태는 연애 속에서 드러난다. 그의 연애는 감정보다 조건에 가까워 보인다. 대화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그러나 되짚어보면 "박교순 너가 출세하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겠다"는 전제가 깔려 있단 걸 알게 된다. 사랑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성취한 뒤에 겨우 허락된 보상이다.
대화 없이 이별하는 장면도 "어떤 조건이 만족되어야 결혼하겠다"는 피폐한 가치관을 암시한다. 거기에는 서로가 어떤 걸 원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의 사랑이 감정에 기반한 관계라면? 그 이별 단계에서만이라도 서로가 어떤 심정이었는지를 주고받는 장면이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이 진짜 원했던 게 없었던 것처럼.
이후 드러나는 과거는 이러한 감정의 공백이 생기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박교순의 어머니는 성경을 가지고 있었다가 군인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어린 박교순은 그 광경을 목격했다. 박교순이 왜 감정을 봉인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해주는 사건이다. 이미 박교순은 타인의 단순하고 조건 없는 호의에도 쉽게 마음이 동요되는 상태일 것이다.
박교순은 북한 안에서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엿볼 수 있는 캐릭터다. 북한이라는 체제 안에서 개인의 감정은 허락되지 않는다. 모든 감정은 체제와 지도자를 향해야 하고, 개인적인 슬픔이나 사랑은 위험한 것으로 취급된다. 감정을 표현하거나 추구하려 하면 죽는다. 군인으로서, 당원으로서 요구되는 것은 오직 임무에 대한 충성이다.
그렇기에 박교순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 악단은 위협이 아니라 위로에 가깝다. 그들이 비밀 교회 공동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임무를 수행하면서 박교순을 진심으로 대한다. 그들은 임무가 끝나면 죽을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박교순에게는 그 경험을 통해 처음 온기를 느꼈을 것이다. 이 변모는 각성이라기보다 오래 방치된 마음이 외부의 자극에 의해 무너지는 과정에 가깝다.
처음 영화를 볼 때는 이 감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렇게 쉽게 사람이 바뀔 수 있다니. 그런데 영화 속 조건을 따지니까 생각이 달라진다. 이 정도 감정의 피폐함이 박교순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북한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최소한의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 결론에 이르기 위해 필요했던 것. 그가 왜 바뀌었는지를 따지는 게 아니다. 박교순의 이해 되지 않는 변모는 그 이해 되지 않는 상황에서마저 무너질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다. 그가 그렇게 바뀔 수밖에 없었던 조건을 바라보는 것이다. 신의 악단은 피폐한 감정을 가지도록 길들여진 삶의 상태도 바라보라 주문한다. 그 위에 아주 작은 온기가 닿았을 때, 찾아온 변화는 선택이라기보다 필연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