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장국영)는 친어머니로부터 버려지고 양어머니에게 맡겨진 뒤 2가지 목표를 세운다. 1번째, 어떤 관계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 과거의 상처 때문에 다시는 그런 아픔을 겪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2번째, 자신의 고통을 치유해주는 사람을 만나 정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목표는 본질적으로 모순적이다.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선 누군가와의 관계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아비의 사랑은 처음부터 실패할 운명이었다. 그는 수리진(장만옥)이라는 여자와 사귄다. 처음에는 행복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수리진이 결혼 이야기를 꺼내가 두려움이 찾아왔다. 결혼이 자신의 자유를 제약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비는 수리진을 내쫓는다. 자유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를 다시 고독하게 만든 것이다.
아비는 나중에 루루(유가령)를 만나면서 자신의 자유를 찾은 듯 보였다. 그러나 고독이 다시 아비를 지배했다. 결국 아비는 루루를 버리고 필리핀으로 떠난다. 자신의 친어머니를 찾기 위해. 그러나 아비의 친어머니는 아비를 만나주지 않았다. 이후 아비는 어떤 기차 안에서 총에 맞아 숨진다. 그 죽음은 스펙터클함 없이 잔잔하게 묘사된다. 마치 아비 스스로가 죽음을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아비의 불행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아비는 어떤 목표도 이뤄내지 못했다. 문제는 또 있다. 아비의 목표들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단 것이다. 수리진과 루루는 아비와 사귄 순간을 잊지 못하고 아비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양어머니도 평생 아비를 키운 정을 잊지 못하고 살 것이다. 아비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각자의 결핍을 새로 안고 살게 되는 것이다.
아비는 영화 속에서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 독특한 위치에 놓여 있다. 그가 보여준 행보는 한 사람의 불행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타인에게도 그것을 전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결과, 아비정전 속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아비가 겪었던 불행을 똑같이 겪게 되고 마니. 아비정전을 고독과 결핍의 연쇄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해석할 수 있는 이유다.
아비를 불쌍하게 여기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분들은 아비가 자신의 고독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는 모습에 집중했을 것이다. 한편 아비의 선택으로 다른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모습을 보면 아비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고통을 극복도 못 하고 민폐를 끼쳤으니. 이러한 상반된 반응은 아비가 복잡한 감정들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