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영화는 삶을 바꾸지 않는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by 박지수

참 골 때리는 영화다. 온갖 기괴하고 정신 없는 액션, 멀티버스가 쏟아진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면 혼란이 아니라 감동이 남는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가득 찬 코미디 슈퍼히어로 영화다. 그렇게만 작품을 받아들여도 된다. 그 기준을 훌륭하게 충족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동이 남는 이유. 영화가 제시하는 질문 때문이다. 지금의 삶은 이떠한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분명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영화는 이러한 질문을 남긴다.


에블린(양자경)은 원래 중국인이었다. 그런데 아버지,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와 빨래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할 일은 산더미였다. 남편 웨이먼드 왕(키 호이 콴)은 이 와중에 이혼을 하겠다고 한다. 거기다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했다. 에블린 입장에선 아무런 쓸모가 없는 남편이었다. 딸(스테파니 수)은 동성 연인을 데리고 와 가족들에게 인정을 받으려 한다. 복잡한 문제 속 자기 초라함을 느끼는 에블린. 세금을 내는 시간이 왔다. 이 세무조사는 에블린에게 자신의 초라한 인생을 반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때 남편의 몸을 통해 누군가가 연락을 해온다. 그리고 해괴한 말들을 꺼낸다. 이 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는 하나만 있지 않고 여러 개(멀티버스)가 있다, 멀티버스에는 각각 다른 에블린이 있다, 그런데 조부 투파키라는 악당이 모든 세계를 파괴하려 한다. 아무도 정체를 모른다. 그러나 세계선을 파괴할 만큼 무서운 악당이다. 이런 해괴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데 에밀리는 의심 없이 그 임무를 받아들인다. 그녀는 이 삶을 벗어나 다른 가능성을 꿈꾸고 있었다.


영화 초반은 현실에서 실패한 에블린이 마침내 자기 능력으로 현실을 뒤집고 성공하는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꽉꽉 채워져 있다. 영화에서도 쿵푸 고수 에블린, 인기 배우 에블린, 손가락이 늘어난 배우 에블린 등. 골 때리는 장면이 가득하다. 분명 조부 투파키는 무섭다. 그런데 그 경고와 함께 골 때리는 장면이 가득하다. 이 부조화가 웃음을 만들어낸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아무런 생각 없이 봐도 충분히 재밌고 퀄리티가 높다.


영화는 흡사 양자경의 연기 포트폴리오를 보는 듯했다. 소시민으로서, 배우로서, 쿵푸 고수로서, 그리고 해괴한 생물이 되면서. 이러한 모습들을 잘 소화했다. 괜히 양자경이 이 영화를 찍은 뒤 아시아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활약을 보면 괜히 기대하는 게 생기게 된다. 남편 웨이먼드는 마음을 고쳐먹고 에블린과 이혼하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바보처럼 굴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조부 투파키는 슈퍼히어로로 각성한 양자경에 의해 무너질 것인가.


그런데 영화는 그 기대를 철저히 배신한다. 이야기했듯 이 영화의 문제는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게 에블린 주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식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세상을 구하긴 했다. 그러나 귀환 뒤엔 여전히 세탁소, 세금, 골칫덩어리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에밀리의 영웅 서사를 기대했다면 실망했을 결말이다. 왜 굳이 양자경을 고생시키면서 이런 결말을 보여주어야 했던 걸까.


해답은 조부 투파키의 정체였다. 조부 투파키는 에블린의 딸 조이였다. 조이도 자기를 둘러싼 현실에 절망해서 다양한 세계를 돌아보며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했다. 더욱 완벽한 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아마 다른 세계선 속에서도 조이는 가족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그럴수록 자신에게 더욱 공허함만이 찾아왔다. 다양한 가능성을 강구해봤자 결국 남는 건 공허란 결론 때문이었다. 베이글에 온갖 재료들을 올리면 검고 흉측한 베이글이 되는 것처럼.


영화의 목표는 갑작스럽게 바뀐다. 어떻게 지금의 삶 대신 더 나은 삶을 얻을 수 있을까. 이런 기존의 목표는 악당이 된 조이에 의해 실현이 불가능하단 결론이 내려졌다. 조이는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하다 공허해졌다. 에블린도 같은 여정을 겪는다면 딸과 똑같이 공허해질 것이다. 그러니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어떻게 허무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그 때에야 남편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에블린이 배우인 세계선 속. 웨이먼드는 에블린에게 이 말을 꺼낸다. "복잡한 삶에서 더 친절해지는 것. 이게 내 최대의 싸움법이다."


에블린은 생각을 고쳐먹는다. 모두에게 친절해지기로. 그래서 조부 투파키 일당에게까지 친절을 베풀게 된다. 분명 여전히 골 때리는 싸움 장면이다. 그러나 감동이 밀려오는 싸움 장면이다. 그로 인해 조부 투파키는 구원을 받게 된다. 에블린이 그 모습까지도 딸의 모습으로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마침내 골칫덩어리 가족에게 돌아간 에블린. 딸과 그의 동성 연인뿐 아니라 모든 모습을 받아들이는 성숙함을 보인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세무조사에서 그녀는 웃는 모습으로 세무조사를 받게 된다.


에블린뿐 아니라 누구에게든 삶을 뒤바꾸고 싶은 정서는 있다. 그런데 조부의 모습은 그런 시도가 철저히 공허로 돌아갈 것임을 암시한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현실 속 웨이먼드가 그랬듯이. 이걸 전달하기 위해 슈퍼히어로적인 결말을 의도적으로 피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받아들인다고 문제가 해결이 안 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문제 앞에서 더 의연하게 대처하는 에밀리가 될 것이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그 모습을 통해 우리도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지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