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음악과 함께한 연말공연, 부제는 누벨바그
구립합창단을 15년째 해온 엄마와 영화음악 콘서트를 다녀왔다. 영화음악 공연이지만, 공연 제목은 ‘소프라노 강혜정의 연말 콘서트’로 성악가 강혜정 중심으로 기획된 공연이었다. 합창단에서 알토를 담당하고 있는 나름 업계인인 엄마에게 들어보니 대중적으로 꽤 유명한 소프라노라고 했다.
검색해보니 KBS 열린음악회에도 출연하고, 뮤지컬에도 등장하는 등 장르를 넘나들며 클래식의 대중화에 힘쓰는 분이었다. ‘강혜정’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아트인사이트 초대권을 통한 잠실에 위치한 롯데콘서트홀 공연 관람은 피아노 리사이틀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연말 분위기 콘서트답게 로비에는 가족 단위, 중장년층의 관객들이 바글바글했다. 차분한 색깔의 옷차림을 한 사람들, 연말 콘서트에 대한 기대로 공간의 분위기는 살짝 들떠 있었다.
영화음악을 소재로 한 강혜정의 연말 콘서트는 ‘누벨바그’를 부제로 하고 있다. 누벨바그의 영화를 활용한 것은 아니었고 ‘개인의 영감과 비전을 투여하여 창조적 개성의 추구’에 방점을 찍고 소프라노 강혜정의 음성으로 재해석된 영화음악을 연주한다는 점에서 ‘누벨바그’라는 용어를 차용한 듯하다.
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총 열 네 곡의 영화음악이 연주되었다. 한경arte필하모닉과 지휘에는 차웅, 그리고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이 해설을 맡았다. 친절한 구성이었다. 영화음악을 주제로 한 공연에서도 해설이 덧붙여지지 않은 형태도 더러 봤었는데, 성악가의 공연에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김태훈으로 내세워 중간중간 설명을 덧붙인 것은 꽤 중요한 기획 포인트라고 여겨졌다.
지난번에 관람한 피아노 리사이틀 역시 엄마와 함께였는데, 당시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정반대의 느낌이었다. 연말 분위기 가족단위의 관객을 타켓팅한 행사로 친절한 해설과 설명이 덧붙인 영화음악은 성악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진입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 실제로도 엄마는 저번에 비해서 아는 노래가 많다며 신나 하셨다. (객석에서 아는 노래를 같이 흥얼거리는 모습도 더러 목격할 수 있었다.) 더욱이 옛날 노래도 몇 개 섞여 있어 중장년층 연말모임의 행사로 손색이 없는 공연이었다.
1부 첫곡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My Sassy Girl, 2001)’의 ‘Canon in D Major’였다. 에피타이저 느낌으로 오케스트라의 연주로만 진행되었는데, 홀의 크기와 대비되어서 그런가 명확히 들리지 않았던 연주 소리가 좀 아쉬웠다. 그러나 점점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면서 오케스트라의 호흡도 맞아갔고, 두 번째 곡부터 등장한 강혜정의 노랫소리로 인해 관객들은 순식간에 공연에 몰입해 갔다.
3~4곡 연주하고 난 이후 중간중간에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이 나와 영화음악 혹은 영화에 관한 설명을 했다. 인상적인 몇 가지 문구가 관객들의 머릿속에 각인이 되었겠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영화’에 관한 설명만 이어져 공연과는 별개의 또 다른 코너로만 다가온 점이 아쉬웠다. 즉, 영화음악에 대한 강혜정의 해석은 온전히 강혜정에게만 맡긴 느낌이었다. 물론 철저한 역할 분담의 측면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한 기획이었다면 ‘영화’와 ‘음악’ 간의 관계뿐 아니라, ‘영화음악’과 ‘음악’ 간의 관계나 맥락도 짚어주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러나 이 틈을 메꾸는 건, 과연 공연의 주인공 강혜정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팸플릿에도, 그녀를 다룬 여러 기사들에서도 알 수 있지만 소프라노 강혜정을 수식하는 문구는 다음과 같다. “다채로우면서도 유연한, 너무나 달콤한 소프라노”. 강혜정 자신도 오래 살아남고 버틸 수 있던, 혹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면모로 ‘유연함’을 꼽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을 사랑했으면 하는 마음, 또는 장르를 넘나들어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선사해주고 싶은 그녀의 마음이 목소리에 깊게 배어있었다.
합창단에서 알토를 담당하고 있지만 엄마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파트는 ‘메조’라고 했다. 알토와 소프라노의 중간음인 ‘메조’ 파트를 좋아하는 엄마는 평소에도 째진 음을 별로 선호하지는 않았다. 높은 고음을 들을 때 귀가 아팠던 경험이 있었는지, 강혜정만의 단단하고 부드러운 고음은 듣기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여느 소프라노와 달리 중저음도 잘 내는 목소리여서, 그녀가 음악적으로도 ‘유연함’을 강점으로 가져갈 수 있는 또 다른 이유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영화를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개인적으로 스크린을 통해 영화장면을 함께 볼 수 있었던 공연이어서 흥미로웠다. 물론 공연이 아닌, 영화장면에 너무 시선을 뺏긴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저작권 문제 때문인지는 몰라도 모든 곡에 영화장면이 곁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보지 않았던 영화에서도 향수가 느껴지는 기이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영화음악의 힘인 것일까?
특히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1985)’의 OST는 게스트, 클라리네티스트 송호섭과 오케스트라의 협주로 연주되었는데 꽤 인상적이었다. 클라리넷의 악기가 이 영화의 음악과 퍽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2부의 시작은 영화 ‘라라랜드(La La Land, 2016)’의 음악이 열었다. 2부는 후반부로 향할수록 선곡이 좋았다. 소프라노 강혜정의 기량이 마음껏 발휘되는 영화음악들로 구성되었고 특히 가사가 없는 ‘우우우~’하는 음성으로만 연주된 영화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1994)’의 메인테마 곡은 ‘영화음악’과 ‘성악’ 간의 콜라보가 절정에 이른 파트였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라벤더의 연인들(Ladies in Lavender, 2004)’의 영화음악은 처음 들었는데 너무 좋았다. 바이올린 연주곡이었는데 영화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연주했다고 한다. 영화, 음악 공연을 통해 클래식 아티스트를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클래식을 향유할 수 있는 한 계기가 되었으니, 꽤 성공적인 기획이 아니었나 싶다.
솔직히 처음에는 무난한 기획이라고만 생각했다. 영화음악, 이라 뻔한 선택이라 생각했다. 여러 가지 에피타이저로 부드럽게 문을 연 콘서트는 후반부로 갈수록 강혜정만이 낼 수 있는 부드럽지만 강함이 콘서트홀 내를 몽글몽글하게 만들었고, 연말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힐링을 선사하는 무난하면서도 개성이 녹아있는 공연이었다.
공연 관람 이후, 자연스럽게 강혜정 그녀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다. 매체에 자주 얼굴을 비추면서 여러모로 대중적으로도, 또 후학 양성에도 힘을 쓰고 있는 그녀의 가곡 앨범도 발견했는데 역시나 좋았다. 이렇듯, 여러 곳에서 그녀만의 뚝심 있는 행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2019년작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에서 극 중 유명한 성악가 ‘패티’ 역할로 분해, 성악에 대해 잘 모르는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는 에피소드는 단연 그녀의 행보를 대표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언제나, 장르를 넘나드는 예술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흥분된다. 이에 앞장서는 사람들에 감명받고, 또 어렵지만 어떻게든 해내는 모습들에 뜨거운 응원을 보내게 된다. 가끔은 너무나 패턴화 되고 형식에 그치는 문화예술 행사들에 기운이 빠질 때도 있지만, 이처럼 어디선가 빛이 나는 공연을 볼 때면 관객으로서 지치지 않고 열심히 응원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가지게 된다.
출처 : https://www.art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