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의 피동적 성격을 닮은 존재, 사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설령 미리 알고 있다 하더라도, 현재의 시제로 맞닥뜨릴 때 우리는 과연 얼마나 감당해낼 수 있을까? 상상하면 두렵고, 어렵다. (표현하는 데에도 힘이 든다) 일어나지 않을 미래의 일이다. 그럼에도 미래를 대하는 감정은 복잡하다. 불현듯 파도처럼 밀려오는 아득함이 희망을 잠식해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 태양계 차원의 큰 재앙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인간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게 없을 걸 알면서도(한편 그 익숙함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낙관적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상한 감정에 젖어 드는 건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거는 어떠할까. 사진첩에는 현재의 나의 삶과는 거리가 멀어진 수많은 얼굴들이 박제되어 있다. 꽤 친했다고 생각했던 사람부터, 스쳐 지나간 인연까지. 게다가 나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잘하지 못한다. 관계도 그래서, 일정기간 동안 친했던 사람들은 당시에 그 사람들하고만 지냈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고, 연락이 자연스럽게 끊기면 사진에만 얼굴의 형태가 남는다.
그래서 가끔은 이상한 생각이 들곤 한다. 어떠한 형태로든 소식을 알지 못한다면 죽을 때까지는 영원히 다시 보지 못할 얼굴일 수도 있다는 게. 그런데 개인적인 나의 사진첩에 남아있다. ‘흔적’이란 형태로.
‘흔적’을 쉽게 지우지 못하긴 한다. 정리해 두었다가, 주기적으로 꺼내 보면서 매 순간 달라지는 감상을 즐겨왔다. 사진첩을 볼때마다 '그땐 그랬었지'라며 낭만 어린 감정으로 다가왔는데, 이번엔 왜 이렇게 쓸쓸했는지 모르겠다. 사진에 박제된 얼굴들의 주인이 세상을 떠난 것도 아닌데, 전생의 일 같다.
마치 세상을 등진 것 마냥, 그들의 얼굴이 아득하고.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같이 아직 일어나지 않을 미래처럼. 과거는 이미 장례식을 치렀다. 현생에서 사진 속 얼굴을 마주쳐도 나는 떠올릴 수 있을까. 그들을 다시 만난다면, 내가 마주한 얼굴들은 다시 만나야 할 새로운 얼굴일까. 혹은 과거의 때가 묻어 있는 낡은 얼굴일까.
‘쓸쓸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현재의 나는 최소한의 관계만 유지하고 많은 것을 차단했다. 애써 나를 증명하기 위해 벌려 놓았던 많은 일들을 내려놓고, 한 가지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임이나 관계도 줄었다.
외로움에 쓸쓸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글쎄, 쓸쓸함. 해결할 수 없는 감정이다. 해결할 수 없는 어떤 ‘상태’에 가깝다. 과거를 떠올리는 유일한 기록인 ‘나의 기억’과 ‘사진 속 이미지’를 직조해보면, 나는 늘 관계 속에 파묻“혀” 있었다. 주어인 ‘나’는 피동적이었다. 표현하지도, 줄 줄도 잘 몰랐다. 선망의 대상이 있었고, 나에게 열등감이 있음을 포착하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아니, 좋아해야 마땅한 사람들을 실은 좇고 있었다. 그런데 반대로 내가 부러 인연을 끊은 사람도 있었다. 당시의 나는 그럴만한 핑곗거리를 찾아내 과거로 만들었다. 관계에 매몰되어 바라보지 못했다. 내가 너무 중요해 주변을 바라보지 못했다.
매몰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는데, ‘나’에 이미 매몰되었음을 사진들을 들춰보면서 발견했다. 수동적이지 않으려고 그렇게 노력했었는데, 능동적이려는. 나를 어떻게든 바꿔보려는 이상한 강박에,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몸부림쳤구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렇게 죽어라 알고 싶어 했으면서도, 실은 아는 게 하나도 없었구나. 다시 들춰본 사진 속 박제된 얼굴들에서 쓸쓸함을 느꼈던 이유는 현재의 내가 외로워서가 아니라, 관계 속 과거의 외로웠던 ‘나’를 발견해서가 아니었을까. 기억은 점점 흐릿해져 가고, 흐릿해지다 못해 사진 속 일들이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던 일처럼 느껴진다.
인간은 수동적이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발버둥 치지만, 결국 인간이기에 ‘인간’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피동적 존재이다. 사진도 비슷하다. 능동적으로 기억하기 위해 셔터를 누르지만, 시간이 흘러 남겨진 사진은 ‘기억’에 의해 피동적으로 기록되니까. 능동과 피동의 결과물이 사진이고 곧 인간이다. 그사이에 남겨진 틈에 발견되는 것이 ‘순간’이다.
많은 사람은 순간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진은 ‘순간’을 대신할 수 없다. 오히려 사진은, 미래를 남긴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보지 못하는 먼 미래에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 잔존한 사진은 쌓인 시간 속에서 재편집된 기억에 의해 다시 기록된다.
따라서 사진은 순간이나 과거를 기록할 수 없다. 사진은 설령 태양계 차원의 큰 재앙이 닥치더라도, 인간의 능동성은 허깨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미래를 남길 것이다. 인간은 인간의 피동적 성격을 가장 닮은 사진으로 추억팔이하며, ‘그랬었지’라고 되뇌며 이겨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