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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늘 Apr 24. 2023

가족 같은 남남, 남남 같은 가족을 그린 웹툰 <남남>

[Opinion] 쿨해 보이지만 안으로는 더 뜨거운

Empahty requires understanding. 


공감에는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타인을 이해하고자 할 때는 많은 에너지가 든다. 남. 가족과 같은 혈연관계에서는 본인을 믿어줄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믿음이 형성된다. 또한 가족 내 각 구성원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엄마, 아빠, 이모, 삼촌, 할머니 등 ‘역할’로 호명되기 때문에 서로 간에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덜하다. (서로 잘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 무의식중에 우리는 그 노력을 내려놓는다)


그러나 철저히 남, 남의 관계에서는 우리는 그렇게 애를 쓴다. 관심이 있다면 저 사람의 마음을 알기 위해 이해해보고자 노력할 것이고, ‘쟤 왜 저래?’와 같은 호기심이 인다면 그 사람의 심리와 기질을 파악하기 위해 이해해보고자 노력할 것이다. 물론 결론적으로 두 노력이 향하는 종착지는 ‘공감’이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하므로,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는 사회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웹툰 <남남>에서는 캐릭터 간의 관계성이 정반대이다. 가족 구성원끼리는 무의식적 믿음이 결여된 남남이고,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 없는 남, 남에 위치한 이들은 오히려 가족 같다. 그들은 애쓰지 않는다. 누구를 이해하기 위해, 이해받기 위해 지지고 볶지 않는다. 드라마 장르의 일상을 다룬 생활 웹툰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여타 드라마 장르에서 흔히 다뤄지는 관계성과는 사뭇 다르다.


<남남> 속 인물들은 각자 자기만의 명확한 선을 지니고 있다. 뭐랄까. 서로에 대해서 다 안다고 착각하지 않고,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둔다. 심지어 지지고 볶고 난리 나는 K-모녀 사이에도 그렇다.


주인공 김진희 와 그의 엄마 김은미. 친밀도가 높게 그려지는 웹툰 내의 유일한 혈연관계이다. 뒤늦게 은미의 애인으로 나타난 진희의 친부도 사실상 남남이고,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진희와 친구, 그리고 직장동료들 또한 모두 남남이다. 즉, 진희와 은미 모녀를 빼고는 모두 남남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우정’이라는 엄청난 믿음을 기반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정영롱 작가의 웹툰 <남남>은 카카오 웹툰에서 19년 여름 연재를 시작으로 22년 초 완결이 된 작품이다. 40대 여성의 삶과 관련된 자료 조사를 하다가 발견한 작품이다. 아예 나이가 많은 5-60대 부모나, 20대 초중반의 모습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은 많아도 40대라... 미디어에서 흔히 접할 수는 없는 생소한 나이대이다.



<줄거리>


"어느 날 엄마가 애인이라고 데려온 아저씨가

사실은 얼굴도 몰랐던 나의 친부였다면..?"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가는 28살의 진희.

남자친구와 결혼 이야기가 오가던 중

부모 험담에 화가 치밀어

자리를 박차고 집에 돌아가기로 한다.


그러나 집에 와서 마주한 건,

성인 채널을 틀어놓고 정신없이 자위를 하고 있는

자신의 엄마였는데..!


엄마의 자위 장면을 목격을 시작으로

진희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이

저마다의 삶을 유쾌하게 풀어간다.


(후략) 출처: 카카오 웹툰



작품 소개는 위와 같지만,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드라마틱한 사건에 치중하지 않는다. 대신 캐릭터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만든다.   



<남남>이 그리는 관계의 양상과 인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작가는 관계를 그리는 데 있어서 전형성에 기대지 않듯, 캐릭터를 대할 때도 편견 없는 시선으로 대한다. 40대 여성 ‘김은미’ 캐릭터의 전사가 학창 시절 임신을 해 아빠 없이 딸 진희를 낳았다는 설정임에도. 연민의 태도로 작가는 바라보지 않는다. (종종 어떤 작품에서는 ‘어.. 어떻게...’하는 식의 '되도 않는 동정'을 자신이 만든 캐릭터에 작가 본인이 부여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김은미는 ‘김은미’이다. 그녀는 정형외과 물리치료사로서 일을 하고, 상사 뒷담을 하며, 연애를 하고, 자위를 하고, 우정을 나눈다. 작가는 ‘김은미’라는 캐릭터를 타자화하지 않는다.


작가, 독자, 웹툰 속 인물들 모두는 동등한 위치에 놓여있다. 그래서 댓글을 보다 보면, 진희의 수다를 바로 옆에서 듣는 느낌이라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까르르 웃으며 힐링을 얻는 이들이 많다. 이러한 관계성이 기반이 되기 때문에 작가는 넌지시 이야기하지만, 그래서 독자들의 가슴에 훅 스며드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남남>은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좋은 토양을 가지고 있다.


진희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친한, 게이 친구 진수가 있다. 그와 연애 상담을 하는데, 진희가 진수에게 무심결에 질문을 던진다.


“너넨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사귀냐?”

이에 진수는 답한다.

“나도 그냥 궁금해서 묻자. 보통 너네끼리도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사귀는지 물어보고 그러냐?”


하지만 이후 대화의 분위기는 절대 싸해지지 않는다. 그들은 친구이기에 분위기를 이어간다. 가령 이런 식으로.


"야. 뭔 말인지 이해했는데 꼭 그렇게 돌려 까야겠냐. 나 몰라서 처음 물어본 건데."

"너한테나 처음이지. 그리고 나 재수 없는 거 이제 알았냐?"

"아 씨. 얘 어릴 땐 되게 착했는데 왜 이렇게 됐지."

"너는 그때랑 지금이랑 같냐? 자꾸 옛날얘기 하지 마.”


웃음이 나온다. 그들은 친구이고. 친구일 뿐이다. 작가는 전형성에 기대어 캐릭터를 그리지 않는다. 진수는 ‘진수’일 뿐이고, 진수의 친구는 우연히 ‘진희’일 뿐이다. 


* 


시즌 1은 단행본으로 접했는데, 시즌 2는 카카오 웹툰에서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시즌2가 더 좋았다. 캐릭터의 깊이감이 더 농익어서 그런지, 관계성이 시즌 2에서는 더 짙어졌다. 완결 후기에서 작가가 언급한 바로는, 원래 연재는 40회를 예상했고 시트콤처럼 에피소드 식으로 그리려 했지만, 작가 본인조차 인물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시즌 2에서는 더 농익었고, 숙성된 이야기는 작가의 통찰력까지 담고 있다.


비록 남남의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웹툰 속 인물들이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어디선가 또 계속 살아갈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특히, 은미의 친구이자 모녀의 절대적 조력자인 미정 이모에 대한 이야기를 개인적으로는 더 듣고 싶기도 하다.


출처: [특별 인터뷰]  웹툰 <남남>, 이토록 쿨한 엄마와 딸 이야기 (채널 예스)


물론 이들의 이야기를 계속 곱씹다 보면 약간 판타지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떻게 가족 간의 관계, 연인, 친구끼리 이렇게 쿨할 수 있냐고. 자존감 스크래치 하나 없이 모든 걸 (비교적) 별 탈 없이 극복해 나가는 이들을 보면, ‘쿨해서 좋겠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들지만. 나는 여기서 언급하고 싶다.


사실 쿨해 보이는 이들이 안으로는 더 뜨겁다. 그들은 뜨겁고, 가슴 깊이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기에 오히려 툭툭 던질 수 있다. 인간적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이기에 그들에게 ‘남남’이라는 경계선은, 서로 간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인 것이다. 진짜 ‘경계’해야 할 선이 아니라.






출처 : https://www.art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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