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늘 Nov 03. 2023

시대를 잘못 태어난 아티스트, '한대수' 입문하기

[Review] 한국 포크 록의 대부 한대수의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

한국 포크-록 음악의 대부이자 사진작가인 한대수의 사진집. (…) 특히 1960년대 말의 뉴욕과 서울을 찍은 흑백 사진은 두 문화의 극명한 대조를 보여주는 한편으로, 동경, 호기심, 연민, 비애, 향수 등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 한대수, 『삶이라는 고통』 책 소개 中


1960년대 말 서울과 뉴욕을 찍은 사진, 당시에는 더 심했을 대비되는 미국과 한국의 사회상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대수, 그의 인생도 책을 읽고자 한 하나의 계기였다. 1948년생이고 앤디 워홀의 등장, 비틀즈의 미국 상륙, 반전(反戰) 시위 등, 격동의 1960년대 뉴욕에서 청년기를 지낸 ‘한대수’ 작가의 시선이 궁금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사진집을 감상했다. 


그런데 감상 후 하나의 글로 정리하려 하니, 생각보다 머리가 아팠다. 텍스트가 주가 아닌 사진이 주인 ‘사진집’을 리뷰하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물꼬를 터야 할지 고민이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아무런 사전정보 습득 없이 사진을 감상해야겠다.’였다. 


이후 작가의 생애를 추적한 후, 감상하는 방법. 이렇게 두 가지 방법론을 가지고 사진집을 대하기로 했다. 



사진집을 감상하는 첫 번째 방법, 작품 자체에 집중하기


첫째. 가장 날 것 그대로 ‘이미지’ 그 자체만 들여다보는 것이다. 


프레임 안 내용에서만 느껴지는 어떤 ‘푼크툼’을 쫓았다. (*푼크툼 : 롤랑 바르트가 『밝은 방』에서 제기한 철학적 개념. 사진작가의 의도나 사진의 상식적인 의미보다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감상 순간의 강렬한 충격과 여운의 감정을 말한다/ 출처_나무위키) 


내 안의 어떤 감정이 동요해, 사진과 맞닿는 순간을 발견하고자 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사진의 대부분은 ‘스냅사진’의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어떤 동요를 내 안에서 끌어내기에는 너무나 “순간 포착”이었다. 작정하고 찍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작가 개인의 무의식이 묻어나는 장점도 있지만, 앞뒤 맥락이 잘린 채 사건의 표면만 포를 떠내는 결과물일 수도 있기에 스냅사진은 ‘복불복’이다.


한대수 사진집의 사진도 ‘복불복’이었던 것 같다. 중간중간에 글이 삽입되어 있지만, 사진의 ‘순간’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게다가 어떤 일정한 기준, 시간순, 국가별, 주제별로 사진이 카테고리화되진 않았기에, 목차에 기대어 감상을 덧붙이는 것도 별 효과를 거두진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와 프레임 안에서 느껴지는 것에 집중해 보았다. 감정이 올라올 때까지 해 보는 것이다. 


피사체는 종종 외로웠다. 누워있거나, 졸고 있거나, 앉아 있거나, 갇혀 있다. 여러 국가, 여러 장소, 분명 여러 대상이었지만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꽤 일관되었다. 그만큼 그의 주관이 뚜렷한 탓일 것이다.

 

한편, 사진은 꽤 공격적인 매체이다. 


마치 총구를 겨누는 것처럼, 우리는 카메라의 렌즈를 피사체에 필시 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경계를 푸는 대상과의 거리는 가까웠지만, 대부분의 피사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피사체를 둘러싼 주변의 맥락을 사진은 포함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그의 시선은 항상 ‘사람’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는 렌즈를, 총구를 누군가에게 겨누기에는 퍽 다정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을 표현하는 한대수의 언어는 비교적 ‘단정적’이다. 어떤 추측이나, 여지가 없다. 다르게 말하면 관람자가 느끼기에 상상의 폭이 크지는 않다. 하지만 대담하다고는 말할 수 없고, 오히려 흘러가는 바람처럼 그는 순간의 감정적 동요가 일어나는 대상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두 번째, 방식으로 사진집을 감상했다. 개인의 생애를 추적해 보는 것.



사진집을 감상하는 두 번째 방법, 작가 개인의 생애 추적하기


그는 사진 말고도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아마 가장 유명한 건, ‘음악’이고, 그리고 ‘글’, ‘사진’ 등이다.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한대수는 한국 포크 록의 대부이자, 최초의 싱어송라이터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1948년생인 그는 격동의 1960년대 대비되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다양한 문화적 토양을 쌓았다.


출처 : 한국대중가요앨범


한대수가 ‘멀고 먼 길’이라는 타이틀로 한국에서 1집 데뷔를 했을 때, 뭇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당시 사람들이 그의 음악보다도 장발에 더 관심을 가졌다고 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는 이미 반항의 정신을 뉴욕에서 충만하게 체득했고, 그의 개성 넘치고 뚜렷한 주관은 겸손을 최고의 미덕으로 치는 당시의 한국에서는 더더욱 받아들여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평생을 이방인이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소속감을 느낄 수 없었다. 피사체와의 경계를 풀게 하는 데에는 소속감, 동질감만 한 게 없다. 하지만 그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피사체와의 거리가 멀고 혹은 사진 속 대상이 경계의 태도를 취하는 데에는, 피사체 입장에서는 작가 또한 철저한 이방인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음악에서만큼 그는 자유로웠다. 음악은 사진보다는 이성을 뺀 감성의 영역에 가까운 매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음악을 쌓아 올린 틀과 기본은 매우 수학적이지만, 음악이 완성된 결괏값만큼은 인간에게 가장 직관적인 매체이다. 그래서 한대수는 음악 안에서 더욱 편안해 보인다. 


그의 영혼이 자유롭게 뛰놀고 한바탕 소리칠 수 있는 공간은, 바로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아티스트, 한대수


 그의 음악, 글, 사진에서 드러나는 특유의 위트와 솔직함, 그리고 한대수만의 ‘명명’의 언어들. 자신의 기분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하고자 하는 게 있으면 쟁취하고, 불안함조차도 자신의 언어로 명명하는, 요즘 젊은이들과 퍽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아침 눈을 뜨니 기분이 이상해서
시간은 열한 시 반 아 피곤하구나
소주나 한잔 마시고 소주나 두잔 마시고
소주나 석잔 마시고 일어났다
할말도 하나 없이 갈데도 없어서
뒤에 있는 언덕을 아 올라가면서
소리를 한번 지르고 노래를 한번 부르니
옆에 있는 나무가 사라지더라
(후략)

- 한대수, ‘하루 아침’ 가사 中


결론적으로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을 통해 ‘한대수’라는 한 가수, 인간에 대해 입문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로 인해 그 당시의 분위기, 음악, 문화 등을 흡수했기에 나는 이 사진집을 통해 참 많은 걸 얻은 셈이다.


음악적 면모 외에 그의 시선, 그의 살아온 궤적을 좇고 싶다면 한대수의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 한번 들여다봐도 좋을 것 같다.



출처 : https://www.artinsight.co.kr/

작가의 이전글 가족 같은 남남, 남남 같은 가족을 그린 웹툰 <남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