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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늘 Dec 20. 2023

바로 이런 뮤지컬이지! 어벤져스 군단의 완벽한 뮤지컬

[Review] 100년이 된 주택을 소재로 한 희망의 무대 <딜쿠샤>

뮤지컬 하면 흔히 ‘레베카’, ‘라이온킹’, ‘렌트’ 등 대형 뮤지컬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또한 뮤알못(뮤지컬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 뮤지컬은 응당 ‘노래’가 중심인 극이라 생각했다. 화려하고 발랄하고 역동적인 느낌. 개인적 취향으로는 굳이 공연을 보자 하면 연극을 택하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트인사이트 문화 초대를 통해 다양한 예술문화에 대한 애정을 키워오던 중이었다.


뮤지컬 <딜쿠샤>. 내 경험치로 해석하기에는 여러모로 생경한 느낌이었다. 제목부터가 생소하다. 딜쿠샤? 달쿠샤? 사람 이름 같기도 한 제목. 딜쿠샤는 ‘희망의 궁전’이라는 뜻을 가진 주택이었다. 집을 소재로 한 뮤지컬이라니. 도대체 어떤 내용일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빈약한 내 뮤지컬 관람 경험의 한줄기 빛이 되어 준 뮤지컬 <딜쿠샤>


이제껏 축적해 온 내 뮤지컬 경험은 아래와 같았다. 스토리보다 노래가 더 우선인 장르, “뮤지컬”. 가끔씩 배우가 하는 노래와 대사 사이에 간극이 느껴지곤 했다. ‘어? 저 배우 대사 끝났다. 곧 대사에 담긴 감정을 노래하겠지?’ 하면 어김없이 노래가 시작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대사와 노래간의 텀이 부자연스럽다고 느꼈었다. 


또한 뮤지컬 배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기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나오는 배우들이 하는 공연을 관람하곤 했다. 물론 카메라 앞의 연기와 무대 위에서의 연기는 확연히 다른 역량이지만. 하지만 이왕 마음먹고 한번 보는 것, 실패 없는 선택을 위해서는 우리는 익숙한 얼굴을 종종 선택하는데 그러다 보면 가끔씩 처참한 결과를 맞이할 때가 있다. 이후, 뮤지컬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낮아지게 된다. 종종 어떤 뮤지컬에서는 유명세만을 앞세운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오기도 했는데, 앞자리에 대거 포진한 팬덤이 거북함을 줄 때가 있기도 했다. 퀄리티가 어떻든 간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야 하는 분위기에 둘러싸이면, 전문가가 아닌 나의 생각은 어떻게 뻗어 나가야 할지 매우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빈약한 모든 경험을 종합해 봤을 때, 뮤지컬에 대한 ‘어떻다’ 할 느낌은 없었던 것 같다. 조금은 다른 예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뮤지컬 영화’라 하면 곧잘 흥행에 실패하곤 하는데 가끔씩 그 이유는 뭘까 생각하면, 그만큼 예시로 들 만한 작품이 떠오르지 않았. 


뮤지컬 <딜쿠샤>는 나의 이런 빈약한 경험에 한 줄기의 빛이 되어주었다. 어느 면에서나 너무 완벽했다.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케미면 케미, 무대면 무대, 연출이면 연출, 스토리면 스토리.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보니 이를 리뷰하기 위해서는 도통 어떤 경험과 비교해서 이야기를 써내려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너무 해피엔딩이어서, 너무 매끄러워서, 너무 완벽해서, 반항기질이 있는 나에게 어떤 승부욕을 자극하는 것일까? 빈틈을 찾아봐! 갖가지 이유를 대봤지만 결국은 “이런 뮤지컬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바로 이런 뮤지컬이지! 어벤저스 군단의 완벽한 뮤지컬 <딜쿠샤>


더 이상 수없이 반복되는 대형 뮤지컬 말고, 특정 배우를 티켓파워로 가져가는 작품 말고, 바로 이런 뮤지컬이 많이 나와야 한다며 덕질 한번 해본 적 없는 나의 마음에 갑자기 혁명의 불꽃이 솟아올랐다. 자본에 결부되지 않는 가치를 지지하기 위해서 자본이 더욱더 필요한 문화산업. 내가 업으로 삼고 싶어 하는 영화산업도 다를 바 없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게 무대 분야는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이 위선적인 마음에 혁명의 불꽃이 솟아오르게 만들었다.


저 몇 안 되는 배우들이 1인 다역을 하면서 2시간 내내 인터미션도 없이 소화를 했다는 것은, 가히 기적에 가까운 일일지도 몰랐다. 역사극을 방불케 하는 이 방대한 스토리를 감당하기 위해서 저들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커튼콜에서 기립박수를 하는 관객 앞에서 우리 모두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무엇보다 무대를 사랑하는 그들의 진심이 너무 느껴졌고, 정말 세상을 구하러 온 특수 정예요원처럼 그들은 정말 완벽히 무대를 해내었다.


뮤지컬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배우 한 명, 한 명에 애정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고 특히 극 특성상 배우들은 무대에서 내려가지도 않고 많은 역을 해내야만 했다. 그래서 다른 역을 해내는 같은 배우의 얼굴을 찾아내는 재미도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두 배우가 있었다. 뮤지컬 <딜쿠샤>는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으 전개되었는데, 단연 편지를 주고받는 두 주인공 ‘브루스’의 최인형 배우와 ‘금자’의 김현숙 배우는 너무나 훌륭한 논외의 배우였고, 기억에 남는 나머지 두 배우는 메리를 맡은 임강희 배우와 봉순, 젊은 금자 외 많은 역할을 해낸 손지원 배우였다.


먼저 메리역의 분량은 꽤 많았다. 월요일 빼고는 매일 공연을 하는 데, 배우의 목상태가 괜찮을까 염려될 정도로 분량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이야기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기에 그가 무너지면 전체가 흔들릴 터, 끝까지 눈물겹게 잘 해내었다는 것에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손지원 배우의 목소리는 정말 좋았고 발음이 깔끔하게 정말 잘 들렸다. 1인 다역인 그녀가 노래를 끝내고 들어가면, 다시 어서 나와주기를 내심 기대하기도 했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뮤지컬 <딜쿠샤>의 '손지원' 배우


물론 이 외에 조영태 배우, 이성주 배우, 이유리 배우, 한상호 배우, 박소은 배우, 이지수 배우, 김지훈 배우 모두는 앞서 말했듯, 특수 정예요원이었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무대 위를 활보하며 무대를 꽉 채웠다. 100년이 된 집 ‘딜쿠샤’의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해방 직전, 해방 후 6•25 전쟁, 넝마주이 풍경, 달동네 이주의 역사까지 각 시대에 출현하는 수많은 인물로 등장하기 위해서 무대 위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의자와 스탠드 옷걸이가 무대 위에 비치되어 있고, 불 꺼진 자리에서도 그들은 쉼 없이 노래했다.


이야기가 몰입감이 좋아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뮤지컬 <딜쿠샤>의 모든 배우들은 계속해서 노래하고 있었다. 불이 켜진 순간에도, 불이 꺼진 순간에도. 그들과 함께 엉덩이를 흔들기에는 내가 앉은 객석이 너무나도 좁았다. 노래들도 다 좋아서 어떤 노래인지 기억하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재관람을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왜 뮤지컬 덕후들이 N차 관람을 하는지 알겠다 싶었다.


무대도 독특했다. 밴드의 악기나 연주자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배우들의 얼굴이 잘 보이는 만큼, 연주자들의 얼굴도 매우 잘 보였는데 가끔씩 그들의 얼굴을 힐끗힐끗 볼 때마다 궁금했다. 저들은 일부러 무표정인걸까? 나 같으면 나도 모르게 들썩일 것 같은데. 어떤 연주자들은 저 자리가 부담스러운 분도 분명 있겠다 싶었다. 정말 얼굴이 너무나도 잘 보이거든.


뮤지컬 <딜쿠샤> 中 한 장면, 악기와 연주자가 모두 노출된 무대


여러모로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이 모든 리뷰는 아마 한번 더 <딜쿠샤>를 관람해야 끝이 날 것 같다.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다큐멘터리를 연극도 아닌 뮤지컬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장면 전환되는 게 너무 재치있는데? 배우들의 오른쪽 얼굴이 아닌 왼쪽 얼굴도 보고 싶다. 이들이 결국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태어난 곳이 아닌 머나먼 타향을 ‘집’으로 생각하고 묻힌 테일러 가족, ‘집’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걸까? 눈물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복작복작 기어코 살아냈던 한국인의 근현대사를 기억해야 하 걸까?


무엇이 되었든 나에게도 훌륭한 예시가 생겼다. 빈약한 나의 뮤지컬 경험에서 자랑할 만한 뮤지컬. 뮤지컬이 이런 거라면! 대사와 노래가 분리되지 않는, 대사가 노래이고 노래가 대사인. ‘극’이든 ‘노래’이든 이분법적으로 우선순위를 매길 수 없는. 이런 예시가 드디어 생겼기에 나는 더 이상 뮤지컬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서! 우리는 왜 알지 못했고, 또 올리지 못했을까. 


뮤지컬 <딜쿠샤>는 2022 국립정동극장의 창작 ing 프로젝트를 통해 첫 선을 보인 작품이다. 작년에 우연히 관람한 창작 ing 연극 <카사노바>에 이어서 또 한 번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는 경험을 했다. 부디 이 프로젝트가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고, 나 또한 그 든든한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부지런히 관객 경험을 쌓아야겠다. 





출처 : https://www.art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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