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초심자의 운을 지나, 재미없는 시간을 버텨야 하는 이유
요 근래 집중을 하지 못했다. 잘하려는 부담감이 짓눌렀다. 잘하고 싶은 게 생겼다.
볼링을 처음 치는 날이었다. 친구가 7이라고 쓰여 있는 볼링공을 갖다 주었다. 들어보니 많이 무겁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이 무게로는 스트라이크 칠 정도로 힘이 받지 않을 것 같은데? 웃기게도 나는 처음부터 스트라이크 칠 생각을 했다. 나는 전문가도 아닌데 괜히 나대는 게 아닐까 눈치를 봤고, 결국 공 무게를 바꾸는 선택은 하지 않았다. 친구도 첫판은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했다.
그래. 어차피 못할 거라 생각하고, 느낌대로 던졌다. 오! 웬걸 절반 정도의 볼링핀이 쓰러지고, 스페어는 되지 않았지만 두 번째 기회에도 역시 몇 개 더 쓰러졌다. 잘하고 싶어졌다. 친구는 자세가 좋았다. 하고 싶은 대로 치라는 약속의 한 판이 지나기도 전에 나는 친구에게 자세를 알려달라 했다.
친구는 자세히 가르쳐줬지만 진심으로 듣지 않았다. 자세를 배웠는데도 못할까 봐, 건성건성. 물론 눈치 보여서 겉으로는 열심히 듣는 척했다. 하나, 둘, 셋에 공을 던지라 했다. 하지만 나는 자꾸 스텝이 꼬였고, 뭔가 자세를 잡는 내내 부끄럽고 어색했다. 결국 나는 첫판에서 처음 두 세트만 점수를 내고, 그 뒤로는 거의 점수를 내지 못했다. 화가 났다. 그리고 실망했다. 친구도 기분이 다운된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순간, 잘못되었다 생각했다. 우연히 얼마 전 일이 떠올랐다. 최근에 요리라는 걸 하나씩 해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나를 위해서 했다. 재미있었다. 식구들이 맛있다고 해주니 신이 났다. 그러다 한번은 가족을 위해, 엄마를 대신해 어쩌면 의무적인 마음에서 식구들을 위해 요리를 했다. 솔직히 재미없었다. 그런 의무적인 마음 탓인지는 몰라도, 요리는 망해버렸고 풀이 죽은 나는 내 기분에 못 이겨 식구들 식사 자리에서 빠져나와 엉엉 울었다. 가족들은 이유도 묻지 못한 채 내 눈치를 봤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요리와 볼링을 하다가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역시 나는 내가 꽂힌 걸 해야 해. 원래 나는 좋아하는 게 아니면 하지 않는 고집불통 아이였어. 볼링은 내가 하자고 한 게 아니니까 못할 수밖에 없고, 의무적으로 했으니까 요리도 결과가 안 좋았던 거야.’ 웃기는 소리였다. 재밌어야 잘한다는 말. 배부른 소리였다. 초심자의 운이라 흔히들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당연히 재미있다. 새롭고, 진도도 팍팍 나가니까. 하지만 잘하려고 하는 순간, 긴장을 하고 재미도 잃을 수 밖에 없다.
더더욱 나는 스포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전에는 내가 갈등이 싫어서 스포츠를 싫어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실은 질까 봐 조마조마한 게 싫었던 것이었다. 은근 승부욕이 강했던 나를 바로 보지 못했다. 끝이란 게 있고, 다음이 없는 마지막 기회만 있다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여태껏 나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적당히 계획을 하고, 적당히 움직였다. 그리고는 성공률이 높다며 자만했다. 계획을 짜더라도 목표치를 일부러 낮게 잡거나, 일부러 기준치 이상으로 높게 잡았다. 어차피 높게 잡았으니 계획을 이행하지 못하더라도, 내 탓이 아니라는 여지를 둔 것이었다. 돌이켜보니, 참 요리조리도 피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제는 속력을 내야 할 때였다. 하고 싶은 게 있고, 잘하고 싶은 것도 생겼는데. 그래서 2024년 원대한 계획도 세웠는데 지난 이주동안 성과가 없었다. 너무 높게 잡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왜 나는 해내지 못했을까. 물론 변수도 있었지만 변수 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이제는 프로가 아니어서 못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다시 난 생각했다. ‘역시 난 힘을 주면, 못 해’ 수능 공부할 때도 그랬다. 잘하려고 하면 꼭 잘 안 됐다. 오히려 힘을 빼야 결과가 좋았다. 그러나 사실상 ‘힘을 뺀’ 게 아니었다. 그때의 나를 돌이켜보면 구체적인 미래를 상상하지 않았다. 좋든 나쁘든 상상하지 않으려 애썼고, 현재의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면 최선이었다. 최선이 모여서 우연히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하지만 최고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속력을 내야 할 때였다. 구체적으로 원하는 미래를 그리고, 전략을 짜야했다. 이기기 위한 전략! 승패가 너무나도 싫었던 내가, 지금 하는 걸 더 잘하기 위해서 경기에 뛰어든 셈이었다.
볼링 두 번째 판을 시작했다. 공을 던지지 말고 굴리라는 친구의 말에 나는 자세를 다시 한번 잡고 심호흡하며 굴렸다. 때로는 너무 긴장해 공이 손에 빠질 때도 있었고, 스탭이 꼬여 백스탭을 밟기도 했다. 공은 자꾸만 왼쪽으로 휘었다. 잘 가다 왼쪽 레인으로 일찍 빠져버리곤 했다. 공이 가볍고 내 팔에 힘이 없어서였다. 그러나 공의 무게를 올리자니 내가 중심을 잃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전략을 세웠다. 오른쪽에 위치한 핀을 쓰러트리자고 생각하며 초점을 맞추자. 오! 그러니까 공이 끝에 가서야 왼쪽으로 회전해 레인에 빠지지 않고 핀들을 쓰러트렸다. 가끔 적절하게 휘어 중앙으로 들어갈 때는, 스트라이크도 성공했다.
공이 굴러가는 속도는 약해도, 방향을 잘 조절하니까 점수가 났다. 점수가 나니 재밌어졌다. 자세도 점점 익숙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하나를 간과한 게 있었다. 바로, 매 회를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집중하는 것. 목표치 점수를 남은 몇 번의 기회에 나눠서 할까, 나도 모르게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승부의 완성은, 매번을 마지막 기회처럼 집중하기에 있었다.
잘 하고 싶은 게 생겼다. 글을 잘 쓰고 싶었다. 어떠한 형태의 글이든, 플롯이 있는 시나리오와 소설, 그리고 아무 형식이 없어 보이는 것 같은 에세이까지도. 하지만 오히려 여기까지 오니, 다른 일도 못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재능이 있는지 끊임없이 간을 봤었다.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분명 있다. 하지만 대신 소중한 걸 얻었다. 볼링이든 요리든 글쓰기든 경지에 도달하는 방법은 결국 한 가지라는 것.
“어떻게 인생에서 재미있는 것만 하니?”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재미없는 건 하기 싫어요!”라고 말했던 과거의 나를 지나 이제는 안다. 다시 재밌기 위해서는, 재미없는 구간을 지나야 한다는 사실을. 그러다 지칠 때면 환기 차원으로 새로운 걸 하면 된다. 취미가 그래서 필요한 것이구나! 이제야 취미의 필요성을 깨닫는다. 맨날 취미가 영화 보기, 책 읽기였는데… 새로운 것에 도전해봐야겠다. 볼링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