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김희수아트센터, 김명범 개인전 <물질 접속사 마찰음>
김명범 작가는 과연 무엇을 의도한 것일까? 그의 작품은 흠잡을 데 없이 완결하고, 매끄럽다. 첫눈에 보면 어렵지 않게 작품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 파생되는 의미들을 유추할 수 있다. 민들레 홀씨와 생일 초, 뼈에 자라난 나뭇가지, 밧줄에 연결된 막대사탕 등 관객들이 상상의 나래로 떠날 수 있는 여지는 많다. 특히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사물의 접합지점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마치 한 사물과 같이 온전해서, 이상한 불쾌함을 느낄 정도이다.
김희수아트센터에서 김명범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매년 수림문화재단에서 시상하는 수림미술상의 수상 작가로 2024년에는 김명범이 선정되었다. <물질 접속사 마찰음>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이 2025년 2월까지 열린다. 김희수아트센터의 전시공간은 독특하다. 뻥 뚫려 있는 한가운데 공간과 안쪽의 큰 방과 같은 전시공간으로 크게 두 곳으로 양분되어 있다. 흔치 않은 구조의 공간이다 보니 매번 전시를 관람할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김명범의 전시 <물질 접속사 마찰음>을 처음 마주했을 때는, ‘내가 알던 아트센터 공간이 맞나?’ 싶었다. 초입에 가벽이 세워져, 평소에 보였던 가운데 뻥 뚫린 공간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초반에 반쯤 열려 있는 문처럼 생긴 벽은 전시관람에 앞서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켰다. 알고 보니, 반쯤 열려 있는 문에 쏘인 프로젝트 빔(영상) 또한 하나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앞서 언급한 이질적인 두 사물이 하나로 합체된 형태의 작품들이 하나둘씩 보였다.
김명범의 작품은 확실히 직관적인 재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되려 너무 진짜 같아서 이상한 불쾌함을 자아내는데 그 효과 중 하나가 죽어 있다는 느낌을 관객에게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다. 산 채로 박제된 사슴도 그렇고, 정수된 투명한 물 안에서 유영하는 금붕어 등은 본래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기는커녕 ‘죽어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피아노 건반을 짓누르고 있는 돌멩이와 건반 소리 역시, 죽음의 아우라를 더했다. 작품에 사용된 풍선이라는 소재도 그렇다. 본래 풍선은 가볍고 터지기 쉬운 것이지만, 김명범 전시 공간 안에서의 풍선은 굉장히 무겁고 탄력성이 제로에 가까워 보였다.
아름다움과 기이함 사이에 낀 작품은 ‘삶’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죽음’을 말하는 걸까? 작가가 초입에 통로를 만들어 관객의 동선을 유도했던 만큼, 분명 작가는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을 것이다. 혹은 작품 관람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스토리텔링의 장치였을까? 어쨌든 작가가 제시한 동선을 따라 산책하듯 걷다 보면, 작품들이 뿜어내는 아우라에 관객의 몸은 상기된다.
자연의 공간을 떠올려봤다. 자연을 산책하듯 걷다 보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신의 의도를 가늠케 된다. 이 나무의 가지는 왜 이런 모양일까? 새의 울음은 왜 이런 음색일까? 이 꽃은 왜 이런 색깔일까? 자연의 사물들이 퍽 자연스러워 우리를 명상에 들게 하지만, 한번 시작한 질문은 끊임없는 질문을 낳는다. 즉, 매끄러움, 접합지점이 보이지 않는 ‘자연’의 자연스러움은 관객을 편안하게 하기도 하지만 깊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김명범 작가의 전시는 매끄러워 보이지만,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 그의 작품은 정말 매끄럽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일부러 어떤 ‘틈’을 유도하기 위해 틈의 틈을 완벽히 메꿨다는 생각도 든다.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온 불쾌함이 관객에게 스며들고, 작품은 확실히 그런 의도를 충분히 이행한다.
집에 가서도 생각나는 찝찝함은 눈앞에 보이는 사물들로 하여금 모든 게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 사물은 왜 이렇게 생겼지? 이 사물은 어떤 접합지점을 가지고 있지? 등의 질문이 떠오른다.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전해 보였던 사물도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일상 속 틈과 땜질 자국을 자연스럽게 들여다보게 하는 김희수 아트센터의 김명범 개인전은 과연 흥미로웠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덩어리 진 사물 뒤로 아직도 가늠키 어려운 꽤나 불투명한 무언가가 뭉뚱그려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마주해야만이 위와 같은 물음이 우후죽순 떠오를 터. 꼭 한 번 다녀오길 추천한다. 솔직히 이런 기이함은 다분히 신체적인 것이라, 직접 몸으로 느끼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다. 추운 겨울, 기이하지만 아름다운 테마파크를 거닐고 싶다면 김명범의 <물질 접속사 마찰음> 전시를 다녀오기를 추천한다.
*수림아트에디터 수퍼(SOOP-er) 2기
*본 리뷰는 수림문화재단으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받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