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기 전, 남편과 함께 산모교실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아내와 함께 온 남편들이 다섯 명쯤 있었는데 강사가 우리 남편을 콕 찍어 물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어디서 주무실건가요?”
어차피 답이 정해진 질문이었다. 남편도 정답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같이 자야죠.”
강사가 남편을 칭찬하며 말했다.
“남편분들은 꼭 아내와 같이 주무셔야 해요. 그래야 아내가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알아요.”
남편은 그 때의 약속을 열심히 지켰다. 나와 아기는 침대에서, 남편은 침대 옆 바닥에서 웅크리고 잠을 잤다. 아기가 깨서 울면 남편은 벌떡 일어나 분유를 타왔다. 그리고는 내가 갈아놓은 기저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좀비처럼 앉아서 졸았다. 내가 “자기야, 누워서 자.”라고 말할 때까지.
내 친구는 아기가 우는 데도 꿈쩍 않고 잠만 자는 남편을 발로 차 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아기 울음소리는 못 듣지만 아내의 화난 목소리는 잘 듣는 게 신기했다고. 세상에는 그런 남편들 천지였다. 그런 남편들에 비하면 우리 남편은 착하고 성실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첫째, 잠을 깊이 못 자니 남편의 성격이 점점 나빠졌다. 남편은 칸트같은 사람이어서 12시가 되면 졸려하고 적어도 6시간은 자야한다. 그 리듬이 깨지면 피곤해하다가 점점 성격이 나빠진다. 신혼여행으로 유럽을 다녀온 후, 시차적응에 실패한 남편은 함께 한 기간 중에 가장 성격이 나쁜 모습을 보여주었다.
둘째, 남편 때문에 내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와 만난 이후로 체중이 10kg정도 늘어난 남편은 코골이가 심해졌다. 안 그래도 아기 때문에 잠이 부족한데 남편의 코골이까지 한몫하니 밤마다 미칠 지경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편과 함께 자서 얻는 득보다 실이 많았다. 분유는 내가 타면 되고, 기저귀는 나중에 버려도 된다. 내가 아기 때문에 고생한다는 건 이미 충분히 알았을 거다. 이제 그만 남편과 따로 자고 싶었다.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 그냥 다른 방 가서 자라. 출근해야 하는데 피곤하잖아.”
“아니야. 자기 고생하는데 나 혼자 어떻게 편하게 자.”
남편은 옳다고 생각하는 걸 지키는 뚝심이 있다. 당신의 성격이 점점 나빠지고 있으며, 너의 코골이 때문에 나까지 못 자고 있다는 사실은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유난히 잠이 오지 않던 밤이었다. 몸은 부서질 듯 피곤한데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양을 세어보고, 우주의 먼지가 된 상상도 해 보고, 요가에서 배운 호흡도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크르렁!”
남편의 코가 울부짖었다. 아기가 깨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우렁찬 코골이였다. 어차피 오지도 않던 잠이었지만, 더 멀리 떠나가버렸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막아봐도 코골이는 너무 잘 들렸다.
조심스럽게 남편을 깨웠다.
“자기야, 옆으로 자 볼래?”
남편은 귀찮다는 듯 돌아누웠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드르렁 컥!”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귀청을 울려댔다.
그렇게 새벽 세시가 되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자기야. 진짜 미안한데 자기가 코를 너무 골아서 잠을 잘 수가 없어.”
평소에 남편은 코골이 때문에 깨우면 “어, 미안해, 미안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날의 남편은 다른 사람이었다.
“어쩌라고.”
기분이 나빴지만 꾹 참고 말했다.
“미안한데 다른 방 가서 자 주면 안 될까?”
남편은 한참동안 천장을 노려보더니 벌떡 일어나 이불과 베개를 들고 나가며 말했다.
“아씨. 짜증나게.”
가슴 속에 있던 무언가가 화르륵 타올랐다. 힘든 아내가 잘 수 있게 도와주지는 못 할망정 뭣이 어쩌고 어째? 남편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앞으로 너와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출근하자마자 사죄의 카톡을 보냈다. 미안해, 내가 너무 피곤해서 미쳤나봐. 다시는 안 그럴게. 마음이 약해져버렸다. 어제의 남편은 진짜 나빴지만, 실제로 내 남편이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영원히 말하지 않겠다 다짐했던 남편이랑 그렇게 싱겁게 화해해버렸다.
그래도 우리는 그날 이후로 따로 잔다. 따로 자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남편은 혼자 자면서 까칠함이 덜해졌고, 나도 남편의 코골이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이래서 아기를 낳으면 다들 따로 자게 된다고 하나보다.
아기를 낳기 전까지는 남편과 따로 자는 걸 극도로 싫어했었다. 부부싸움을 하고 서로 등을 돌리고 자더라도 방은 나가지 말라고 남편에게 부탁했다. 나에게 있어서 부부가 같이 자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를 사랑한다는 상징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사랑과 낭만 사이에 현실이 드러누웠다. 아기를 돌보는 일에는 낭만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잘 수 있을 때 무조건 자야 하고, 먹을 수 있을 때 무조건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육아라는 마라톤을 완주할 수 없다.
결혼을 하고 고작 1년 반만에 각방생활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 각방생활이 같이 잘 때보다 더 행복하리라는 건 더욱 상상도 못 했다. 남편과의 알콩달콩한 스킨십이 사라진 자리에 귀여운 딸이 누워있다. 딸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우리는 같이 잘 수 없겠지. 그 때의 우리는 어떤 사랑을 하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지금의 현실이 머리를 스치운다. 열두시가 넘었다! 사랑이고 나발이고 얼른 자러 가야겠다. 오늘은 제발 빨리 잠들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