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고 한달이 지났을 즈음, 시댁 식구들이 아기를 보러 온다고 하셨다. 시부모님과 시누이부부, 총 4명이 함께 오실거라 했다.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전해들었을 때,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시댁이 멀기 때문에 오시면 하룻밤을 주무시고 가셔야 한다. 몸을 추스르지 못한 나는 1박 2일짜리 손님을 치를 엄두가 안 났다. 모유수유를 하며 시댁식구들을 살펴야 하는 1박 2일이라니.
게다가 방문예정일이 하필 시아버지 생신 3일전이었다. 그냥 생신도 아니라 60번째 생신, 다른 말로 환갑 3일전 방문이라는 뜻이다. 1박 2일동안 최소 두번, 어쩌면 세 번의 식사를 우리 집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그 중에 한번은 생신잔치를 해야 한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했다.
하지만 나는 남편에게 별말 하지 않고 오케이, 했다. 남편 마음을 헤아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부모님도 손주가 보고 싶으실테고, 남편도 자신의 가족들에게 아기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시누이에 시누이남편까지 오는 게 좀 불편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아버지가 장거리 운전을 힘들어하셔서 서울까지 모시고 올 사람이 필요했다.
시아버지 생신에 대해서는 분명히 해뒀다. 두세 시간에 한번씩 아기 젖을 먹여야 하는 몸으로 환갑잔치까지 해드릴 여력이 없다. 케이크는 주문해놓을테니 나머지는 남매가 알아서 해결해달라.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정말 아기만 보러 오시는 거라고, 부담갖지 말라고.
하지만 결혼한지 1년을 갓 넘긴 나는 며느라기에서 벗어나지 못 했나보다. 하루에도 몇번씩 고민이 됐다. 국이라도 끓여놔야 하는건 아닌가. 그러다 웃음이 났다. 지 밥도 못 챙겨먹는 주제에 누가 누굴 챙겨.
그렇게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준비하지 못한 채 손님들을 맞았다. 시댁 식구들 앞에서 입어도 민망하지 않은 수유복으로 골라 입은 게 손님 맞을 준비의 전부였던 것 같다.
좁은 거실에 어른 여섯명이 옹기종기 앉았다. 딸은 모빌을 보고, 어른 여섯은 딸만 구경하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는데 밥을 어떻게 하자는 이야기가 없다. 남편을 쿡 찔렀다.
“아버님 생신이신데 모시고 나가서 맛있는 것 좀 사드리고 와. 그리고 들어오면서 나도 맛있는 것 좀 사다줘.”
어떻게든 식사를 밖에서 해결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등짝을 때리셨다.
“너를 두고 어떻게 나가서 밥을 먹니. 아무거나 먹자.”
하지만 집에는 그 아무거나도 없다. 먹다 남은 미역국을 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시 남편을 쳐다봤다. 남편은 해맑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뭐 먹지?”
결국, 저녁메뉴는 중국음식으로 결정이 났다. 짜장면 4개와 짬뽕 2개, 탕수육 대자 하나가 배달됐다. 유아매트 위에 상을 펼치고, 그릇마다 포장되어 있는 비닐을 뜯으며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이게 아닌데. 중국음식 한가운데 자리잡은 환갑케이크가 너무 화려했다. 남편은 며느리가 특별히 주문제작한거라며 추켜세워줬지만, 이미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후의 일은 더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다. 낯선 사람이 많아서인지 아기는 평소보다 더 보챘고, 나는 아기를 달래랴 손님들을 살피랴 마음이 분주했다. 하지만 마음만 불편했을 뿐, 뭔가를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시댁 식구들은 배달음식으로 한끼, 남편이 밖에 나가서 포장해온 음식으로 한끼, 이렇게 두끼를 드시고 내려가셨다.
손님들이 떠난 후, 남편이 말했다.
“손님 치르느라 고생했어.”
남편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가 싶었다. 한참을 주저하다 속이야기를 꺼냈다. 아기가 너무 어려서 손님들을 대접할 여력이 없는데 다같이 1박2일씩 머물다 가시는 건 너무 힘들다, 아기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이렇게 오시는 게 부담스러울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남편의 얼굴이 굳었다.
“어쩌다 한번 오시는 걸 가지고 꼭 그렇게 뭐라고 해야겠냐?”
대화가 꼬이기 시작했다. 시부모님 오시는 게 싫어서 그러는 걸로 오해한 모양이다. 괜히 말을 꺼냈다 싶어 후회가 됐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그게 아니라 오시면 식사를 적어도 두세번은 드셔야 하는데, 아기 데리고 외식도 힘들잖아. 그러면 내가 차려드려야 하는데 내가 그 많은 손님 밥을 어떻게 다 차려. 내 밥도 제대로 못 먹는데...”
하지만 이미 남편은 내 말을 이해할 의지가 없었다.
“너네 부모님은 맨날 오시잖아. 우리 부모님은 어쩌다 한 번 오시는 건데 꼭 그래야겠냐?”
너.네.부.모.님?
1박 2일동안 받았던 스트레스와 함께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폭발했다. 아기가 있으니 소리지를 수는 없지만, 어금니를 꽉 깨물고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엄마가 오시면 엄마가 밥 다 차려주시잖아. 그런데 자기 부모님이 오시면 내가 밥을 다 해야 하잖아. 아기 데리고 손님상 차리는 게 쉽겠어? 그런 건 이해를 못 해?”
그러자 남편이 대답했다.
“난 이해가 안 돼.”
남편은 나와 싸울 때마다 “이해가 안 돼.”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남편의 “이해가 안 돼.”라는 말은 ‘남편과 내가 오래도록 잘 살 수 있을까?’ 의심을 품게 하는 가장 주된 원인이었다. 결혼한 지 1년도 안 돼 헤어질 수는 없으므로 나는 그가 “이해가 안 돼”를 시전할 때마다 그를 이해시키기 위해 별의별 노력을 다했다. 예를 들어 설명하기도 하고, 입장을 바꿔 이야기하기도 하고, 서운한 감정을 실어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의 이해력 향상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아기를 키워야 하는 몸. 남편을 이해시키기 위해 쏟을 에너지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아기가 옆에 누워있다는 것도 잊고 남편에게 빽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나를 이해하지 못 하는 건, 네가 배려심이 없거나 멍청해서 그러는 거야!”
그 말을 쏟아낸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아기가 보고 싶었던 시댁 식구들의 마음과 부모님에게 아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남편의 마음을 내가 이해했다면, 남편도 내 마음을 이해해줘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다. 하지만 남편은 본인의 서운함만 앞세울 뿐 나를 이해하지 않으려 했다. 그건 정말 배려심이 없는 거다.
우리가 어떻게 화해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기만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남편이 다가와 사과를 했던가. 그가 어떤 마음으로 내게 사과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 때 어렴풋이 깨달았다.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던 시간은 지나갔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아주 많이 싸울수도 있겠구나.
아기가 생기고, 부부관계 2막이 펼쳐졌다. 부모가 된 우리는 좀 더 성숙한 부부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