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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지 Aug 07. 2018

아기의 탄생

  예정일이 3일이나 지난 새벽, 익숙한 통증이 찾아왔다. 배가 단단히 뭉치면서 누군가 뱃속에 손을 넣고 쥐어짜는 듯한 느낌. 전날, 비슷한 통증 때문에 회사에 간 남편을 조퇴까지 시켰지만 아기가 나오지 않아 쫌 민망해졌었다. 이번엔 설레발치지 말아야지, 하며 조용히 통증을 견뎠다.

  누워있자니 배가 더 아픈 것 같아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나의 아저씨’를 미리 보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정주행하다보니 아침이 밝았다. 그동안 30분 간격이던 진통은 20분 간격으로 줄어있었고, 진통이 올 때면 숨을 참아야 할 만큼 배가 아팠다.

  하지만 다섯 시간이 지나도 진통간격이 20분 아래로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아닌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병원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진통간격이 7~8분으로 훅 줄어들더니 배가 꼬이는 것처럼 아팠다. 검사를 해보더니 의사가 말했다.  

  “오늘 애기 낳아야겠다. 입원수속하고 올라가요.”

  지금 당장 아기를 낳으라고? 그러니까 오늘? 바로 지금?     


  분만대기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으니 관장부터 하잔다. 새우처럼 동그랗게 누워 관장약을 집어넣는데 넣자마자 속이 부글부글 끓으며 폭발할 것 같다. 이걸 5분이나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있는걸까. 관장을 제대로 못 하면 진통하면서 똥파티를 한다지만 더 참다가는 시작도 하기 전에 똥파티를 할 것 같아 1분도 안 돼 변기에 앉고 말았다.

  잘 된 건진 모르지만 어쨌든 속을 비워내고 무통주사를 맞은 후, 분만대기실 침대에 누웠다. 촉진제가 들어간 건지 폭풍처럼 고통이 밀려오면서 자궁수축지수가 99를 찍어댔다. 커다란 가위로 허리를 도려내는 것 같은 느낌. 무통주사빨이 잘 듣는 사람들은 남편과 수다떨면서 진통을 한다던데 애석하게도 나는 무통주사의 은혜가 작용하지 않았다. 그냥 딱 기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천번쯤 한 것 같다.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남편에게 울면서 똑같은 말만 계속 했다.

  “나 못 하겠어. 나 못 하겠어.”

  남편은 내가 어떻게 해줄까, 라고 물어댔지만 남편이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애를 대신 낳아줄 게 아니라면 하나님도 필요없다.     


  진통이 시작된 지 열두 시간. 자궁경부는 고작 2cm 열리고 아기는 여전히 위에 있다고 했다. 그 때쯤 나는 진통에 지쳐 잠이 든 건지 기절한 건지 알 수 없는 상태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이제 더는 못 하겠다 싶을 때쯤 의사가 말했다.

  “엄마. 애기가 못 내려온다. 더 해도 안 될 것 같으니 수술하자.”

  무섭긴 해도 자연분만을 하고 싶어 그 지독한 진통을 견뎠는데 허무하게도 수술을 하게 됐다. 산모들이 가장 싫어하는 ‘진통하다가 수술하기’에 당첨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기가 못 내려온다는데 어쩌겠는가.

  수술을 결정한 후, 모든 게 정신없이 진행됐다. 간호사들이 분주히 수술을 준비하며 내게 이것저것 물었다.

  “제모할 거예요. 괜찮으세요?”

  “팬티를 안 가져오셨네요. 여기서 구입하시면 비급여인데 괜찮으세요?”

  제모를 하는 게 안 괜찮으면 안 하고 수술할건가. 팬티가 비급여가 아니라 바가지요금이라 한들 어쩔건가. 나는 이미 벌거벗겨진 상태로 수술실 침대위에 누워있는데. 여전히 진통이 진행중이라 사경을 헤매던 나는 마취가 되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배가 찢어질 것 같이 아파 눈을 떠보니 모든 게 끝나 있었다.

  “애기는요?”

  “건강해요. 지금 신생아실에 있어요.”

  아기가 나오면 품에 안고 “엄마야.”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첫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카메라 배터리도 빵빵하게 충전하고, 남편에게 사진 잘 찍으라고 신신당부까지 했었는데.

  결국 아기에게 처음으로 “엄마야.”라고 말하며 품에 안아보기까지는 네 시간을 더 기다려야했다. 열달동안 기다렸던 아기이건만 그 네 시간을 기다리는 게 참 힘이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간절히 기다려 만난 우리 딸은 너무 작고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바람에 잘 내려오지 못 해서 수술을 하긴 했지만, 아기도 무던히 애를 썼던지 골반 사이에 끼어있던 머리 부분이 옴폭 파여있었다. 조그만 게 그 안에서 나오려고 얼마나 낑낑댔을까. 눈도 못 뜨고 꼬물거리는 딸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이제 이 아이의 엄마구나.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비루한 체력을 가진 내가, 하고 싶은 것 많은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아침잠은 포기해야 할 거고, 바닥에 있는 체력까지 끌어다 써야 할 거고, 내가 하고 싶은 일 같은 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나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엄마로 사는 동안 외롭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겠지.

  하지만 숨만 쉬어도 예쁘고, 재채기만 해도 귀여운 내 딸에게 많은 걸 해주고 싶다.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비슷한 엄마라도 되기 위해 노력은 해봐야겠다. 아가, 세상에 나온 걸 축하한다. 엄마랑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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