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상의 주인이 된 걸 환영해] - 1-1
한창 온라인으로 하는 달리기 게임에 빠져있을 때가 있었다. 나는 게임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사람이지만 초등학교 5학년, 유일하게 이 게임에 빠져 살았다. 그 당시에 친했던 친구와 방학 내내 함께 게임을 했다. 그 당시에 친구의 집에는 컴퓨터 두대가 있었기에 친구집에서 함께 하거나, 각자 집에서 컴퓨터를 켜고 온라인상에서 만나 열심히 게임을 했다. 계속 게임을 하다 보니 다른 유저들의 찬란하고 반짝거리는 캐릭터 아이템들과, 수많은 캐릭터들이 부러웠다. 나는 따로 용돈을 받으며 생활하지 않았었고, 용돈을 받으며 생활을 했었다고 해도 나는 혼날까 봐 절대 게임에 돈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매일 사고 싶은 캐릭터를 구경하고, 결제하기 버튼을 수 없이 눌렀다 끄기만을 반복했었다.
그렇게 학원에 가기 싫은 마음을 억지로 붙잡고 어쩔 수 없이 학원에 갔다. 온통 머릿속은 게임 생각뿐인데 수업에 집중이 될 리가 있나. 그렇게 신발을 질질 끌며 지루한 한 시간이 지나고 집에 가는 길에 학원 게시판에 걸려있는 종이 하나를 보았다. 자율적으로 영어 학습지를 나누어주고, 원하는 학생들만 원하는 만큼씩 학습지를 풀면 가장 열심히 많이 한 학생에게 문화상품권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때 내 기억을 되돌이켜보면 당시에 나는 너무 신나지만 티를 낼 수 없기에 혼자 눈만 크게 뜨고 종이에 적혀있는 내용을 집중해서 읽고 또 읽었던 것 같다. 나는 바로 뒤돌아 선생님께 가서 “선생님 저 영어학습지 받아가고 싶어요!” 하고 말했다. 선생님이 기쁘게 씩 웃으시며 “몇 장 줄까?” 여쭤보시는 말에 “우선 5장이요!” 말하고 신나게 집으로 뛰어갔다. 집에 가자마자 손을 닦고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를 켜 놓은 채로 학습지를 풀기 시작했다. 학습지는 다 해야겠고, 게임은 빨리 하고 싶고. 학습지를 끝내자마자 바로 게임을 시작할 수 있도록 모든 세팅을 마친 후, 조급하게 학습지를 풀어나갔다.
그리고 다음날 학원에 도착해서 어제저녁에 푼 학습지 5장을 모두 제출했다. 선생님이 확인을 마치신 후, 나는 새로운 10장을 받아왔다. 전날과 같은 패턴으로 학습지를 모두 풀고 다음 날 제출했다. 그렇게 매일 최소 3장에서 최대 10장씩 끊임없이 풀고 제출하기를 반복하니, 나는 압도적으로 월 1등을 할 수 있었고 드디어 문화상품권 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달리기도 공부도 뭐든 어중간하기만 했었던 내가 1등을 했다. 용돈도 받지 않던 내게 만원이라니. 너무 큰돈이었고, 나는 원하는 데로 게임캐릭터를 샀다. 그리고 조금 남는 금액으로 친구에게도 게임 아이템을 선물해 줬다. 내 힘으로 선물도 하고 원하는 것도 산다는 게 참 행복한 일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욕심이 생기다 보니 그다음 달도, 다다음달도 계속 일등을 하며 문화상품권을 탔다.
그렇게 학원 로비에 나의 사진이 매월 걸리고 있을 때 즈음, 어느 날은 집에 가는데 내 사진 속 내 얼굴에 누군가가 눈 코입을 검은색 볼펜으로 마구 칠하고 구멍을 뚫어 논 걸 봤다. 오만가지 생각과 감정이 들었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화도 나고 서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왜 내 사진을, 누가 이렇게 망쳐놓은 걸까. 한 사람이 정확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곧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한 언니였다. 내가 수업을 듣고 있을 때 그 언니가 선생님께, “대체 누가 자꾸 이렇게 학습지를 많이 푸는 거예요? 나는 맨날 일등 못해요, 나도 많이 하는데.” 하고 말하며 나를 째려보는 것을 듣고 보며 혼자 얼굴이 빨개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낙서를 보고 난 후로부터는 학습지를 절대 집으로 가져가지도 풀어서 제출하지도 않았다. 선생님께서 “이제 학습지 안 풀기로 했어? 열심히 했었잖아.” 하고 말씀하시는 대답에 나는 같은 공간 속에 있는 그 언니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저 이제 그만할 거예요, 집 가서 풀기 너무 힘들고 이제 하고 싶지 않아요”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 달, 일등은 그 언니였다. 학원 로비에 걸려있던 해맑게 웃으며 문화상품권을 들고 있는 그 언니의 사진을 나는 그저 바라만 보았었다.
사실 그 당시에 나는 어김없이 학습지를 받아 풀고, 제출하며 또 문화상품권을 받고 싶었었다. 내가 원하는 걸 당당하게 살 수 있고,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을 하며 느끼는 보람과 기쁜 감정들이 너무도 컸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그 언니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사실이 무서웠고,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가족들이 낙서로 망가져있는 내 사진을 봤다면 얼마나 속상했을지에 대한 감정에 겁이 났고 답답했다. 그때는 그저 내가 일등을 양보한다면 나를 미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초등학교 5년 때 나로 돌아간다면 “나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위해 이번에도 열심히 학습지를 풀어서 꼭 일등을 할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께 “누가 제 사진에 낙서를 했어요, 범인을 잡아주세요!”라고 그 언니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당당하게 말씀드렸을 것이다. 그랬다면 현재의 나는, 초등학교 5학년때의 나를 당차고 자신 있는 나로 기억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