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쯤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퇴사한 지 2주 하고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 지 1년 하고 6개월이 좀 더 지났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자기계발을 해보자 마음먹고, 8시 알람을 맞추고 일어났다.
남편이 해준 볶음밥을 아침으로 먹고 책상에 앉았다. 무얼 해야 하지? 지금 내가 뭘 하고 싶지?
생각하고 멍하니 있다 보니 오후 12시 30분이었다. 창밖에는 비가 오고 나는 너무 무기력하다.
꿈꾸고 계획했던 일들은 너무 많은데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이렇게 하루를 그냥 지나 보내기에는 불안하니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고, 브런치 작가 승인 신청 시, 진심이 담긴 글을 쓰고 싶다고 소개했던 내 마음이 생각나서 무작정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며 나의 목표가 계획이 또 생각이 정리되기를 바라본다.
학업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에 나는 학업을 포기했다.
아빠와 이혼 후,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인 예민한 딸과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막둥이 동생을 데리고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엄마에게는 절망적인 첫째 딸의 선택이자 확신이었을 것이다.
“엄마 나 자퇴할 거야. 근데 엄마가 사인을 해줘야 자퇴를 처리가 된대. 학교 와서 사인해줘.”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어떻게 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들으며 내 뺨한대를 치지 않았을까 싶다.
만 16세. 그렇게 나는 자퇴를 했다. 엄마의 희망이자 의지 할 사람이었던 큰딸의 고집에 또 짜증에, 차도 없고 버스비도 없어 왕복 두 시간 거리쯤은 걸어 다니던 엄마가,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학교로 달려와 자퇴서에 사인을 하고 난 후 그 감정은 조금도 알지 못하면서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다고 신나했다.
집에서 늦잠을 자고 게으른 생활을 하다보니 친구들이 보고싶었고, 또 내 고집으로 엄마는 나를 혼자 한국으로 보내야만 했다. 한국에 와서 다시 고등학교를 다니며 나는 정말 힘들고 외롭고 괴로운 시간들을 보냈다.
졸업 후, 엄마와 외할머니가 있는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완벽한 나의 의지와 결심으로 인한 결정은 아니었다. 그러니 또다시 방황했다. 다시 돌아간 미국은 여전했고 숨이 막혔다. 분명 이번에 다시 돌아가면 꼭 대학을 다니며 열심히 공부해 보자 다짐했다. 그렇지만 내가 애써 잊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나는 의지박약인 사람이다.
결국 나는 또 다시 혼자 한국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미국에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공항으로 나를 배웅하는 엄마의 눈물을 보며 또 정신을 못 차렸던 나는, 이제 더는 미국에서 살지 않을 것이다. 오지 않을 것이다. 엄마랑 할머니 그리고 동생이 한국에 와서 만나면 된다 생각하고 비행기에 탔다.
이제 너는 성인이기에 누구도 너를 책임져 줄 수 있는 사람이 없고, 보호해 줄 수 없다.라는
엄마말을 그저 흘려보냈다. 절대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지만, 한국행 비행기를 타서 창밖을 보는 순간 불안해졌다. 한국에 가서 이직은 할 수 있을지, 이렇게 당당하게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떵떵거리며 와버린 내가, 한국에서 힘이 들 때 엄마한테 힘들다고 말할 수 없을 텐데, 내가 혼자 버텨 낼 수 있을까. 어느 곳이든 머리만 대면 잠들던 나인데 긴 비행시간 동안 잠 한숨도 자지 못하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우선 한국에 왔으니 열심히 늦잠 자고 편하게 쉬자! 생각하며 지내다 2개월이 지나 이직을 성공했다. 한국 사회는 정말 바쁘게 돌아갔고 내 인생 처음으로 코피도 터져봤다. 쉽지 않았다. 털털함과 예의가 없는 말과 행동을 구별하지 못했던 팀장님과 일을 해보니 어느새 내 속에는 화가 가득했고 매출이 오르면 광고를 중단하라고 지시하며, 중단 후 왜 매출이 떨어졌냐고 묻는 상사와 일을 하면 성장가능성이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웠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나니 너무 편했다. 유종의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였기에 최대한 열심히 인수인계를 했고 매뉴얼도 만들었다. 나를 포함한 총 3명의 팀원이 8월에 퇴사를 했고, 우리끼리 한 송별회에서 우리는 눈물 콧물을 다 쏟으며 헤어졌다. 그리고 아직까지 열심히 연락하며 곧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다.
퇴사 후 일상을 평화로웠다. 자고 일어나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뒹굴거리며 게으름도 피우고 새로운 목표를 계획하고 블로그도 열심히 발행하고 브런치 작가가 승인되었으니 글도 발행해 봐야지 생각하며 27살, 나는 또 꿈을, 꿈들을 꾸고 있었다.
이 평화로운 일상과 편안한 마음은 딱 일주일에서 멈춰버린 게 문제이지만 말이다.
의지박약인 나는 꿈만 계획만 매우 방대하고 거창했다. 그래서 퇴사를 마음먹었을 때도
새로운 일을 도전해 보자. 직종을 바꿔볼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자. 생각하며 엄청난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었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시도해보고 싶은 일들은 1) 일본어 독학해서 번역기 없이 여행 가보기 2) 파워블로거 되기 3) 귀여운 문구와 팬시에 정신을 못 차리는 나이기에 굿즈 만들어보기 4) 프리랜서로 경력 단절 막기 5) 작가 되기이다. 하나만 하기에도 벅차고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들인데 이 모든 걸 다 해보고 싶어 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어려워 보인다. 가뜩이나 의지박약인 나에게는 더더욱 실천하고 또 성공하기 어려운 일들일 것이다.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왜 이렇게 하고 싶고 꿈꾸는 것들만 많을까? 잘하지도 못하면서.”
남편이 나에게 말해줬다.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나도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도전해보지도 않고 실천해보지도 않는다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거라고.
그래서 이번에는 진심으로 열심히 도전해보려고 한다. 매일 1시간씩이라도 일본어를 공부하고, 아직 어떤 주제로 블로그를 키워나갈지 정하지 못했지만 꾸준히 블로그를 발행하고, 그림은 잘 못 그리지만 문구와 팬시를 정말 좋아하고, 자주 사고, 자주 구경하기에 굿즈 제작도 도전해 보고, 일을 안 하며 지나가는 시간들이 불안하니 그래도 나의 경력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프리랜서로 경력과 경제 활동을 이어 나는 것을.
그리고 브런치 작가로서 또 작가를 도전하는 나로서. 지금까지 내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말들을. 많은 상상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낯간지러워서 전하지 못했던 말들을 글로 표현해 보며 진심을 나눌 수 있도록 글도 써볼 것이다.
나의 노력과 계획이 절대 못 이루는 일들이 아니라는 걸 이번에는 꼭 나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이제 우리 엄마가 나와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 없이 마음 편히 늦잠도 자고 친구들과 여행도 다닐 수 있도록 엄마를 책임질 수 있는 딸이 되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