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상의 주인이 된 걸 환영해] - 1-3
중학교 2학년. 친했던 친구들과 억지로 이별하며 나는 전학을 가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이, 새로운 생활이, 새로운 학교가, 새로운 친구에 대해서 걱정하다 보니 내가 왜 이사를 가고 전학을 가야 하냐고 엄마한테 화를 냈다. 새로운 음료수조차도 시도해보지 않으려고 하는 나인데, 나조차도 이유를 모르겠는 짜증과 서러움이 밀려오는 시기에 너무 많은 새로운 것들을 신경 쓰고 생각해야 하는 게 버거웠다. 시간은 흘러갔고, 시간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없는 나는 결국 새로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걱정과는 달리, 전학 간 첫날 쉬는 시간을, 또 점심을 함께 먹을 친구가 생겼다. 덩그러니 혼자 아무렇지 않은 척 1시간 같은 쉬는 시간 10분을, 배고프지 않은 척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텼어야 할 1시간에서 나를 구해준 친구가 생겼다. 먼저 나의 수많은 고민 속에서 나를 꺼내준 아은(가명)이에게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매일을 함께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고 학교에서도 밖에서도 항상 붙어있었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 내 세상의 주인이 아은이로 바뀌었다.
새로운 학교에 적응을 할 때 즈음, 다른 친구들과도 조금씩 가까워졌다. 수업시간에 같은 조가 되면서, 체육시간에 같은 팀이 되면서, 서로 필요한 물건들을 빌리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나에게도 친구들이 꽤 생겼다. 그리고 그 무렵, 아은이가 나에게 삐지고 짜증 내고, 화내는 일들이 자주 생겼다. 내 세상의 주인인 아은이가 나를 점점 싫어하고 있구나 느껴졌지만, 도대체 그 이유를 알지 못했기에 답답하고 두려웠다. 그렇게 나는 매일 아은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아은아 이거 먹을래?” , “오늘은 학교 끝나고 뭐 해?” 먼저 다가가니 다행히 아은이는 전처럼 친절하고 살갑게 나를 대해줬지만, 다른 친구가 나한테 말을 걸거나, 내가 다른 친구들을 살갑게 대답을 하는 날이면 또 얼어붙었다.
어느 날은 나에게 “너 예영(가명)이 진짜 소문 안 좋은 거 알아? 가깝게 지내면 너도 이상한 소문 퍼질걸?” 하고 아은이가 말했다.” 나는 모든 부분에 대해서 아은이의 말을 믿었지만, 내가 직접 알고 느낀 예영이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당황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아은이는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랬을까? 아무런 대답도 대응도 하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아은이는 “너 걔랑 연락한 적 있지? 핸드폰 보여줘 봐.”라고 말했다. 나에게 화가 난 것이 분명한데,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겠고, 예영이가 그런 사람이 아닐 거라는 생각과 아은이의 말이 무조건 맞다고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내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 순간 내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떻게든 아은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아은이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한다고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하자. 였다. 그래야 예영이와 나눈 다정한 대화들을 아은이가 굳이 보지 않아도 기분이 풀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아 정말? 그렇구나. 말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애써 웃어 보였다. 그렇지만 아은이는 내 예상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아니 핸드폰 보여달라고. 나는 너 걱정돼서 말해준 건데 너는 나한테 핸드폰 못 보여줘?” 가슴이 또 미친 듯이 뛰어댔다. 내가 예영이랑 무슨 대화를 나눴었더라? 내 말투가 다정하다고 느낄 텐데, 그럼 분명 나에게 화를 낼 텐데. 아은이가 내 세상에서 떠난다면 나도 내 세상도 버려질 것 같았기에 무서웠다. 그래서 말했다. “내 휴대폰? 우리 친하니까 당연히 보여줄 수 있지.” 그렇게 내 핸드폰을 넘겨줬고, 비밀번호도 알려줬다. 아은이는 내 휴대폰을 받기와 무섭게 예영이 뿐만 아니라, 내가 연락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의 대화 내용을 보기 시작했다. 눈물이 터져버릴 것 같았고 숨이 막혔다. 머릿속은 하얘졌고 무슨 말을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우왕좌왕 바보같이 손을 떨며 가방에서 무언가를 찾는 척을 했다. “절대 울지 말자. 울면 또 화를 낼 거야. 아은이에게 핸드폰 따위는 다 보여 줄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친하다고 믿는다고 아은이가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해.” 그렇게 끔찍한 시간이 끝났고 아은이는 나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다행히도 별문제 없이 그 시간이 마무리되었고, 학교가 끝나자마자 약속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 후 집으로 곧장 달려갔다.
집에 가서 이 답답한 감정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분명 그런 존재가 아은이여야 하는데 아은이에게는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복잡한 와중에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사람은 예영이었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고 나의 생각에 행동에 신경 쓰지 않고도 그저 즐겁게 떠들 수 있던 사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꾹 꾹 참으며 혼자 울었다. 그때의 나는 분명 아은이와 멀어지고 싶었다. 내 옆에는 본인을 제외한 그 누구도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했고 나를 숨 막히게 하던 그 친구와 멀어지고 싶었다. 분명 나의 걱정들을 무너뜨려준 아은이에게 고마웠고 이 친구는 나의 사람이 되었었지만 나 자신은 혼자서 10분을, 1시간을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는 것보다 더 힘들어져있었다.
중학교 2학년, 내 세상의 주인이 나였더라면, 나는 아은이에게 “너는 나에게 정말 소중한 친구이지만, 예영이도 나에게는 좋은 친구야”라고, 또 너는 나에게 정말 좋은 친구이지만, 나의 핸드폰을 검사하는 건 불편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내 기억 속 아은이는 나를 죽도록 숨 막히게 했던 사람이 아닌, 고마웠던 친구로
기억에 남아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