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쉬 스파에서 테라피스트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이 일을 좋아한다는 감정이 전보다 조금 더 또렷해졌다.
내가 배운 것들이 실제 누군가의 삶에 닿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고객이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다가 조용히 몸의 긴장을 내려놓는 순간을 곁에서 지켜보며, 이 일이 단순히 기술만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처음에는 그저 손으로 하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됐다. 테라피스트의 컨디션은 물론, 공간의 온도와 낮게 흐르는 음악까지 모든 요소가 하나의 호흡으로 어우러져 움직이고 있었다.
여전히 서툴고 때로는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기도 했지만, 타인의 몸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이전과 분명 달라져 있었다. 동작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보다, 그저 상대에게 '제대로 닿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기 시작했다. 그 마음은 나를 더 조심스럽게 만들었고, 그만큼 더 머무르며 고민하고 공부하게 했다. 그 조심스러움 속에서 나는 이 일을 더 깊이 좋아하게 됐다
일을 시작하고 시간이 흐르자, 처음에는 미처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것은 일이 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이 일을 좋아하고 있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사랑하는 일'과 '회사가 운영되는 방식'이 늘 같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에는 이곳만의 규칙이 있었고, 그 틀 안에서 나는 분명 많은 것을 배우며 성장했다. 하지만 내가 끝까지 지키고 싶은 가치와 이 공간이 지향하는 방향이 언제나 나란할 수는 없다는 걸,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스파는 누군가에게는 온전한 휴식과 회복의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철저한 규칙 아래 운영되어야 하는 일터이기도 했다. 정해진 시간과 흐름에 나를 맞추는 일을 당연하게 여겨 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견고했던 당연함 사이로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삼 년 정도 이 일을 하고 나니 그 균열이 더 자주, 깊게 느껴졌다. 하루를 마치고 나면 몸 마디마디가 닳아 있는 것 같았다. 크게 아픈 건 아니었다. 조금씩 마모되고 있는 쪽에 가까웠다. 사람의 몸을 풀어주는 일을 하면서도 내 몸은 충분히 풀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매일 누군가를 쉬게 하는 일을 하면서도 나는 점점 쉬는 법을 잊어 가고 있었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 마음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이 쌓여 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을 덜 좋아하게 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또렷하게 좋아하게 됐고 그래서 더 자주 고민하게 됐다.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아니면 언젠가는 다른 형태를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다가 아주 잠깐 멈춰 섰다. 그리고 조금씩 다른 방향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 이 시리즈에 함께 올리는 사진들은 모두 여행하면서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