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끝나던 날, 당신은 비겁했다

우리 연애의 승자는 언제나 당신의 몫

by 빈틈


첫 연애였다.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던 날, 그를 만났다. 몇 살인지, 몇 학번인지 알 수 없던 그에게 첫눈에 눈길을 빼앗겨, 그가 있던 동아리에 들어갔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흔한 인사조차 수십 번 연습을 했다. 그 사람은 모두가 인정했던 것처럼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를 따르는 후배들도 많았고, 모두가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애가 탔다.


우리에겐 나이 차이는 있었지만 공통점이 많았다. 둘 다 지방에서 서울로 왔고, 영화를 좋아했으며, 홍대입구역 근처에 살고 있었다.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종종 마포평생학습관에서 만나 함께 공부를 했고, 밥도 먹고, 커피도 먹었다. 커피가 낯설었던 스물한 살 나에게,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그 사람은 어른 같았다.


우리의 연애는 손을 잡는 걸로 시작됐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더위가 온몸에 달라붙어 끈적이는 밤인데도 전혀 불쾌하지 않던 달큼한 밤이었다. 첫 연애가 시작되었다.


그는 다정하고, 세심했다. 자취하는 나를 위해 반찬을 챙겨 주기도 했고, 아픈 날이면 약을 사서 주고 갔다. 다정한 그와 2년 가까이 만나고, 우리는 헤어졌다. 편입 준비, 취업 준비로 예민해진 그와 그런 세계를 이해할 수 없던 나. 만나는 것도, 연락도 기다리는 쪽은 나였고, 그의 바쁜 일상은 하루 한 통의 연락조차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언제나 연애는 그의 페이스대로 흘러갔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싸워 본 적 없는 연애였다.


그를 만나지 못한 지 한 달째 되던 날이었나,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반가웠을 연락인데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저 온 마음이 물에 젖은 양 무겁고 슬펐다. 오랜만에 만난 얼굴은 메말라 있었다. 그 순간 느꼈다. 그 사람에게는 더 이상 사랑이 없다는 걸.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세요.”


언제나처럼 그에게 존댓말을 했다. 그의 가슴팍이 조금은 숨 가쁘게 오르락내리락거리고 있었다.


“네가 나한테 할 말 있는 거 아니야?”


나는 그의 사랑이 끝났다는 걸 온 감각으로 확인사살 당하는 중이었다. 예민한 그는 아마도 내 사랑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별을 나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오빠가 하고 싶은 말, 알 거 같아요. 망설이지 말고 하세요.”


나쁜 사람이 착하게 남고 싶었던 걸까. 한참을 뜸을 들이더니, 결국 예전처럼 선후배 사이로 돌아가자는 말을 들었다.


“집에 데려다줄게.”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그는 끝까지 다정하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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