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삶을 갉아먹는 건 나였다
동생과 나는 종강을 앞두고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시작했고, 조금이나마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매 달,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게 위해 보내던 문자메시지가 멈췄던 건 아니었다. 어느 날은 3만 원, 또 어느 날은 2만 원씩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 가며 매 달을 살아내고 있었다. 낮엔 학교에 가고, 저녁이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기 때문에 고시원에 돌아오는 시간은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잘 수 있는 시간조차 부족했지만 소모임 스터디에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그러다 보니, 동생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동생은 항상 컴컴한 고시원 방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누워 있곤 했다. 내가 약속이 있어서 늦게 들어가는 날이면 하루종일 밥도 먹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런 날이 늘어날수록 동생이 우는 날도 많아졌다.
쌍둥이로 태어나, 가족 중에서도 가장 가까웠던 우리는 학창 시절 내내 붙어 다녔고, 대학조차 함께 진학했다. 서로가 가장 소중한 존재였으며, 동생은 언제나 입버릇처럼 내가 죽으면 자신도 따라 죽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나를 사랑해 주었다. 나 역시 동생을 사랑했지만 새롭게 만들어진 생활 속에서 이방인이 되지 않기 위해 애쓰다 보면 동생을 외면하는 날들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약속을 나가기 전이면 동생이 먹을 밥을 챙겨 놨고, 밖에 나가서도 동생을 챙기느냐고 상대방에게 집중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도 점점 지쳐갔고, 동생과 싸우는 날이 많아졌다.
그날도 어김없이 고시원 방에 들어섰을 때, 동생은 자주 그랬듯, 컴컴한 방에 앉아 울고 있었다.
“언니는 내가 밥을 먹었는지, 어떻게 있었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
평소답지 않게, 내게 말을 걸어온 동생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동생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를 외면했다. 덜컥 겁이 든 나는 동생을 달래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동생에게 다가가려고 할수록 동생의 울음은 커졌고, 서로 언성이 오가던 끝에 동생이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언니가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상처됐을 법한 말이 오히려 아팠던 건 동생이 병들어 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내가 없으면 못 산다고 했던 아이가 내가 죽길 바라다니. 아픈 자기를 봐 달라고, 살고 싶다고 내 목을 조른 동생이 그만큼 고통 속에서 발버둥 쳤을 거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터져 버렸다.
결국, 나도 울고 동생도 울었다. 우리 삶에 도사리고 있던 불안정한 감정은 동생이 신경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하는 걸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