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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은 모방자인가 창작자인가?

작곡 교육의 본질과 목표: 국내 작곡 입시 체계의 문제점과 한계

by Komponist
f2b7fdd3755271574c162103ce010c26.jpg John Cage : Graphic score


오늘날 작곡 교육의 본질과 그 목표는 심층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학생들에게 작곡 기술을 전수하거나 기존 양식을 모방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오히려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배양하고 학생 개개인의 음악적 정체성을 탐구하도록 돕는 데 중심을 둔다. 그러나 현재 국내 작곡 입시 제도는 이러한 본질적 가치를 간과하고, 표준화된 교육 체계와 평가 기준에 의존함으로써 심각한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작곡 입시는 학생들이 주어진 과제를 얼마나 정해진 방식으로 해결하는지를 평가한다. 이러한 체계는 학생들을 단순히 기술적 모방자로 만드는 데 그치며, 그들의 창의적 잠재력을 억압한다. 기본기를 탄탄히 배우는 것은 중요하지만 ─ 현 국내 입시체계에서 기본기를 "탄탄히" 배울 수 있는지는 논외로 한다 ─ 이 과정이 학생들에게 일종의 정형화된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학문적 훈련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이론적 지식은 음악적 아이디어를 더 풍부하게 표현하고, 창의적인 작품을 구성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입시 환경에서는 이들 기술이 단순히 정답을 맞히기 위한 기술적 과업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예를 들어, 특정 형식을 따라야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면, 학생들은 자신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포기하고 정답을 맞히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다. 이는 작곡 교육의 목표가 학생의 개성을 발전시키는 데 있는지, 아니면 정형화된 기준을 맞추는 데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특히 오늘날 음악의 다원주의적 특성과 복합적 가치 체계를 반영하지 못한 채, 전통적 양식과 규범에 따라 학생들을 평가하는 경향은 창작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오늘날 음악의 상황은 스타일과 가치 체계 양측에서의 놀라운 다원주의로 특징지어진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공통의 언어를 찾으려는 매혹적인 환상을 포기하고, 교육 방식을 학생의 창의적 노력에서 즉각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의심스러운 합의로 얻어진 구체적이고 규범적인 기준에 만족하는 교육 방식은 피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의 작곡 입시체계는 이러한 현실을 수용하지 못하며, 학생들로 하여금 다양한 음악적 가능성을 탐구하기보다는 기존의 정형화된 틀 안에서 작품을 제작하도록 강요한다. 평가 기준은 특정 음악 양식이나 기법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어, 다원주의적 음악 세계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창작은 본질적으로 정답이 없는 과정이며, 학생들에게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실패를 경험하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음악 언어를 구축할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정답 지향적인 사고방식은 실험적 접근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억압하며, 결과적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기존 틀에서 벗어난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창작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작곡의 ‘기초’라는 개념을 단순히 전통적 화성학과 대위법의 습득으로 규정하는 것은 작곡 교육의 본질적 목표를 단일한 음악적 문법으로 축소시키는 오류를 범한다. 화성학과 대위법이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작곡 기법으로 기능해 온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작곡 교육의 보편적 기초로 간주하는 것은 전제 자체가 특정한 음악적 패러다임에 국한된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작곡의 기초’는 단일한 이론적 체계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음악적 맥락에서 유효하게 작용하는 개념적 틀을 포함해야 한다. 즉, 기초란 특정한 문법을 익히는 과정이 아니라, 음악적 개념을 사고하고 이를 구조화하는 방식 자체를 학습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현재의 국내 입시 체계에서 전통적 화성학과 대위법이 작곡 교육의 중심적 역할을 차지하는 것은 단순히 이론적 전통 때문이 아니라, 평가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논리에 의해 결정된 측면이 크다. ─반면, 서구권의 주요 음악대학들은 입시 과정에서 학생의 개별적 사고와 창의성을 중점적으로 평가하며, 전통적 이론 학습을 필수 요소로 강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 방식은 작곡적 창의성을 길러내기보다는, 특정한 문법적 규율을 암기하고 이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변질되기 쉽다. 화성 진행과 대위적 구조를 익히는 것은 유용할 수 있으나, 특정 양식만 입시의 필수적인 요소로 전제할 경우, 학습자는 이를 창조적 도구로 내면화하기보다 평가를 위한 형식적 요건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현대음악의 다양한 양식과 기법을 학습하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입시 체계는 이를 준비시키기보다는 기존의 규범과 답안을 모방하고 암기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대학 입학 후 창작 과정에서 큰 혼란을 겪는다. 실제로, 나를 찾아오는 학생들 중에는 대학에 입학 후 무조성 음악, 전자음악, 혹은 다원주의적 접근을 시도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전통적인 화성 진행과 형식적 구조에 익숙한 학생들은 이러한 환경에서 방향성을 잃는 경우가 많다.


국내 작곡 입시체계는 학생들로 하여금 현대음악의 다양한 양식과 기법을 접할 기회를 사실상 박탈한다. 특정 형식과 규범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입시 과정에서는 다양한 스타일에 대한 학습은 뒷전으로 밀려나며, 심지어 다양한 작곡 스타일의 존재조차 모른 채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해 상당한 인지적 장벽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단순한 학습 기회의 결핍을 넘어, 음악적 사고의 범위가 조성 중심적 체계에 한정된 상태에서 새로운 음악적 언어와의 조우 자체를 낯설고 이질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욱이, 입시 과정에서 현대적 작곡 요소들이 평가의 핵심 요소로 고려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학생들로 하여금 이를 본질적으로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만들며, 나아가 현대음악적 사고를 비주류적이거나 실용성이 결여된 분야로 치부하는 경향을 강화한다. 이러한 인식 구조는 단순한 지식의 공백을 넘어, 현대음악에 대한 무의식적 저항을 내면화하는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작곡 교육 전반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기회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효과적인 작곡 교육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목표의 본질과 적절한 한계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의 작곡가는 가능한 한 폭넓은 현대 예술적 실천의 스펙트럼에 대한 직접적인 친숙함이 없으면,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교육자는 학생들이 비판적 능력과 열정, 호기심을 키울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은 학생들이 축적한 경험들을 평가하고 주관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게 한다.




전통적인 작곡 교육은 분석과 모방을 결합시키는 방식이다. 이 방식이 경우에 따라 유효할 수도 있으나,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이것이 주변적인 상태로 강등되어야 한다. 이는 현대 작곡의 스타일과 절차적 독창성이 특정 작곡가의 창작적 전기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작곡의 품질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데 필요한 통찰력의 깊이가 중요하다.


특정 "작곡적 방언"의 특성을 재현하는 데 집중하는 것은 종종 그것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단순한 모방에 가까워질 위험이 있다. 이는 곧, 학생들을 단순한 모방자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작곡가는 자신의 창조적 활동을 통해 도구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강력한 지원이 필요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기술이 신뢰할 만한 수준의 유용성에 도달할 수 있다. 학생이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할수록 진정한 개별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나타나기도 하며, 특정 시점에 이르면, 과제 설정과 정기적인 논의 및 격려 간의 구분이 흐려진다. 이는 좋은 작곡이 대답보다 더 많은 질문을 제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까?


작곡 교육자는 학생들이 수업에 가져오는 문제와 어려움에 반응하도록 요구받는다. 학생들이 자신의 필요를 사전에 정의하고 구조화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교육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작곡 교육자의 역할은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반영하고, 증폭하며, 명확히 해주는 "공명체"로 기능하는 것이다. 교육자가 자신의 해답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대신에 학생들의 재료에 이미 잠재되어 있지만 경험 부족, 개념화의 어려움, 혹은 직관을 구체적 과정으로 번역하는 능력 부족으로 인해 학생들에게서 놓친 해답을 끌어내는 것이 교육자의 임무이다. 스타일적 가이드라인을 가능한 한 피해야 하지만, 자신이 지도한 학생들의 작품이 특정 스타일적 규범을 사용하는 데 따르는 결과를 충분히 이해했음을 보장할 책임이 있다.


교육자는 단순히 기술적 조언을 제공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학생들이 자신의 작품을 다양한 맥락에서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고 능력을 길러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자는 학생들이 질문을 던지고, 실패를 경험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가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작곡 교육자는 학생들과의 만남에서 창조적 갱신을 끊임없이 모범으로 보여줌으로써, 작곡가들이 단순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로서 탄생할 수 있는 조건을 창조해야 한다. 교육자는 학생들에게 창작 과정이 기술의 단순한 반복이나 정형화된 결과물의 산출이 아니라, 끊임없는 실험과 발견의 연속임을 경험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작곡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진정으로 독창적인 음악적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다. 작곡 교육자의 이러한 역할은 단순히 지식과 기술의 전달자를 넘어, 학생의 창작적 삶에 영감을 주는 동반자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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