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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과 음색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Tristan Murail의 배음열 음악

by Komponist
murail.jpg Tristan Murail



유학 시절 나에게 3년간 큰 가르침을 주었던 트리스탄 뮤라이(Tristan Murail)는 소리를 단순한 음표들의 배열이 아니라, 주파수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직되는 유기적인 현상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개인 레슨 외에도 2주에 한 번씩 본인의 클래스 학생들을 대상으로 음악 분석 수업을 진행하였는데 우리는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이전 세대 작곡가들의 작품과 동시대 음악까지 폭넓게 탐구했다. 그의 수업에서는 전통적인 화성 분석이나 형식적 구조를 뛰어넘어,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여 소리가 어떻게 결합되고 변형되며 시간 속에서 조직되는지를 중심으로 음악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음향의 물리적 특성과 청각적 지각이 음악적 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며, 음과 소리의 경계를 확장하는 다양한 음악적 가능성을 고찰했다.


이 글은 그의 발언과 내가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배음열 음악(Spectral Music)의 핵심 개념에 대한 간략한 정리이다.




12음 평균율은 서양 음악의 주요 모델로 자리 잡았지만,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이는 하나의 선택일 뿐 필연적인 체계가 아니다. 지난 2000년 동안의 유럽 음악사를 고려할 때 특정 음계 체계의 우위를 가정할 수 없으며, 대안적 조율 방식은 지속적으로 존재해왔다.


"미분음"이라는 용어는 개념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첫째, 개별적인 음은 미분음으로 정의될 수 없다. 따라서 "미분음정"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둘째, 이 용어는 특정 조율 체계를 특권적 기준으로 전제한다. 즉, 미분음이라는 개념은 12음 평균율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으며, 이를 벗어나는 음정을 마치 기존 체계에서 벗어난 변형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단순히 미분음이 존재한다고 해서 미분음 음악을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음악적 조율 체계는 상대적이다. 12음 평균율을 기준으로 보면 미분음이 '특수한 경우'처럼 보이지만, 인도 음악, 아랍 음악에서는 미분음정을 개별적인 체계 내에서 독립적으로 정의하며, 조성(Tonality)과 미분음이라는 개념적 구분 자체가 서양 중심적 관점임을 알 수 있다. 즉, 미분음정이라는 개념 자체는 유용할 수 있지만, 특정한 조율 체계를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다른 체계를 편차로 보는 관점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음악 개념은 전통과 교육에 의해 갇혀 있다. 모든 것이 조각조각 나뉘고, 범주로 구분되며, 분류되고, 제한되었다. 처음부터 개념적인 오류가 존재한다. 작곡가는 12개의 음과 x개의 리듬 형태, x개의 다이내믹 표시, 그 모든 것을 무한히 변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작곡가는 소리(sound)와 시간(time)을 다룬다.


전통적 음악 개념에서는 "음(note)"을 음악의 기본 단위로 본다. 그러나 "음"과 "소리"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음이 음악의 기본 원자도 아니며, 피에르 셰퍼(Pierre Schaeffer)의 "오브제 소노르(objet sonore)" 개념도 아니다.




음악 이론에서는 화성(harmony)과 음색(timbre)을 별개의 개념으로 취급하지만, 사실 두 개념은 하나의 연속체를 형성한다. 음색을 점진적으로 분리하면 화성적인 효과를 만들 수 있고, 반대로 화음 관계를 점진적으로 융합하면 음색적인 효과가 형성된다.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완전히 분리된 요소들이 하나의 소리 객체로 융합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은 소리의 상대적 진폭(relative amplitudes), 주파수 관계(frequency relations), 그리고 질감(quality)이다.


음색이란, 기본 요소인 순수 주파수(pure frequencies) 혹은 백색 소음(white noise bands)의 결합이다.

화성이란, 여러 개의 음색을 결합하는 것이며, 이는 결국 기본적인 소리 요소들의 "합의 합"을 의미한다.


즉, 이론적으로 보면 화성과 음색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단지 그것을 인식하는 방식과,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온 습관의 차이일 뿐이다. 이와 유사하게, 음악에는 다른 연속체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리듬과 다이내믹 사이의 연속체, 리듬과 주파수사이의 연속체 주파수 스펙트럼을 낮추다 보면 맥놀이(beating) 현상이 발생하는 것처럼, 그리고 주파수 공간 자체가 이산적인 계단으로 나뉘기 전의 연속체가 존재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주파수 공간을 옥타브 단위로 나누고, 이를 다시 12개의 단계로 세분화한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실용적 선택에 불과하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옥타브를 다양한 방식으로 나누려 했다. 24분음 (quarter-tones, 1/4음 체계), 18분음 (third-tones, 1/3음 체계), 심지어 해리 파치(Harry Partch)처럼 다양한 개수로 나눈 경우도 있다. 그리고 아예 옥타브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논의도 있었다. 주파수 공간(frequency space)은 본질적으로 연속적이며, 각 문화와 음악적 필요에 따라 조율 체계가 정의될 뿐이다. 즉, 조율 체계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음악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은 임의적이다. 미분음정이란, 옥타브 분할 방식의 연장선으로 생각될 경우 대부분 듣기에 고통스럽다. 주파수 공간은 본질적으로 연속적이며, 음향적 현실이 각자의 조율 체계를 정의해야 한다. 이 논리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면, 순수 주파수의 조합만으로도 과거와 미래의 모든 음악 개념을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 요소들, 즉 사인파(sine-waves)는 각각 고유한 생명력을 지닌다. 그들은 분리되고, 융합하며, 수렴하고, 발산하면서 다양한 청각적현상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무한하고 연속적인 소리의 공간을 조직할 것인가? 만약 모든 조율 체계가 부정된다면, 주파수 공간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만약 기존의 리듬적(duration) 기준을 버린다면, 시간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이제 더 이상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상대적 기준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즉, 개별 요소들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작업해야 한다. 더 이상 객체와 외부 기준의 관계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객체들 자체가 맺고 있는 관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부분의 알려진 스펙트럼은 선형 관계(linear relation)를 따른다. 하지만 현실에서 흥미로운 조화 스펙트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스펙트럼은 결함을 가지며, 특정한 배음(partials)만이 들리거나 일부 배음이 사라질 수도 있다. 또한, 각 배음 성분은 상대적인 진폭을 가진다.


일반적으로 악기 소리에서는 낮은 배음일수록 진폭이 크다. 하지만 많은 예외가 있으며, 이러한 예외가 오케스트라를 흥미롭게 만든다. 예를 들어, 두 번째 배음이 첫 번째 배음보다 더 강한 경우가 많다. 심지어 기음이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피아노의 낮은 음역에서는 기본 주파수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특정한 배음이 특정한 스펙트럼 영역에서 더 강하게 들리는 경우 포먼트(formant)를 형성하게 되며 이는 악기 고유의 음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신디사이저에서는 배음 구조를 비교적 단순한 규칙으로 조작할 수 있지만, 실제 악기에서는 다양한 요인 포먼트, 진폭 변동, 특정 배음의 부재 등 이 작용하여 보다 복잡한 음색이 형성된다.


결국 음악적 스펙트럼을 연구하는 핵심 과제는 이러한 복잡한 배음 구조를 어떻게 분석하고 활용할 것인가? 라는 점이며, 이는 스펙트럴 음악, 전자음악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음악을 조율된 음들의 체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소리의 관계성과 시간적 변형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한다. 더 이상 고정된 조율 체계 속에서 제한될 필요가 없다. 소리는 서로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직되는 유기적 현상이다.


앞으로의 가능성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오케스트레이션을 예로 들면, 경험적 해결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음향 분석(acoustical analysis) 덕분에 단순한 경험적 지식의 영역을 넘어, 과학적 탐구와 기술의 지원을 받으며 전례 없는 정밀도로 확장될 것이다. 각 악기의 음색과 스펙트럼을 완벽히 분석하고, 소리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차이까지 예측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제 전통적인 경험적 기법들의 논리적 근거와 원리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여전히 무한한 가능성이 남아 있다.


스펙트럼과 스프라이트 컴퓨터 그래픽 혹은 알고리즘적 요소의 결합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다. 이것은 곧 소리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혁명이며, 음악적 가능성을 새롭게 정의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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