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에는 담기지 않는 '경계선'
'조선은 나를 키워준 나라다. 일본은 내가 태어난 나라다. 한국은 내 국적이자 고향인 나라다.'
2012년 6월11일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정대세(32)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외국을 오갈 때 쓴다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여권을 공개했다. 우리가 인식하는 '북한' 국적의 여권으로 그는 외국을 오간다고 설명했다.
정대세가 축구 선수 이상의 관심을 받은 건 그의 눈물 때문이었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정대세는 북한 대표팀 공격수로 출전했다. 그러면서 예선 첫 경기에 앞서 북한 국가를 들으며 펑펑 울었다. 일본에서 태어나자마자 재일교포라는 딱지를 달아야 했으며 한국 국적이면서도 북한 대표로 뛸 수밖에 없는 '경계인'의 그림자가 그에게 번졌다.
울고 있는 정대세의 얼굴 아래로는 북한 인공기가 달려 있었다. 그와 동시에 중계 화면 아래로는 북한의 국제축구연맹(FIFA) 순위가 소개됐다. 이 모든 건 축구팬을 넘어 일반 대중에게까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여권 소유 여부로 국적을 가르는 FIFA의 방침에 따라 정대세가 북한 대표팀으로 뛰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정대세는 대회에 앞서 FIFA에 자필 청원서를 보내 자신의 가족사와 분단 현실을 설명했다. 이를 본 아시아축구연맹 또한 이례적으로 정대세의 이중국적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국내 상황에서 정대세의 눈물은 한반도의 복잡한 상황을 일깨웠다.
재일동포 2세인 정대세의 아버지는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해방 이후에도 조선 국적을 유지했다. 아버지의 국적을 따른 정대세를 키운 건 흔히 '조총련계' 학교라 불리는 민족학교였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정대세는 "나를 길러준 곳은 조선이며 조선 대표로 뛰고 싶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한때 보수 논객 변희재는 이를 놓치지 않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정대세를 고소했다. 정대세가 해외 언론과 인터뷰에서 북한을 찬양했다는 게 이유였다. 지극히 의도적이며 계산된 난도질이었다. 이는 모두 무혐의 처분됐으며 정대세는 아무렇지 않다는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이제 '경계인' 어딘가에서 시작된 정대세의 축구 여정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2013년부터 수원 삼성 유니폼을 입었던 정대세가 일본 J리그로 지난해 여름 이적했다. 일본(가와사키)과 독일(Vfl 보훔·FC퀼른)을 거쳐 "남북 관계를 연결하겠다"며 수원에 등장했던 그가 원점 아닌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인민 루니'와 '자이니치' 같은 부연 설명이 정대세에게 있지만 어쩐지 모두 2% 부족해 보인다.
이적 후 정대세는 시미즈 에스펄스 유니폼을 입고 훨훨 날았다. 시즌 26골을 기록하면서 J2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여기에 둘째딸까지 얻어 완벽한 시즌을 보냈다. 정대세의 국기는 선명하지만 그의 국가는 희미하다. 이데올로기를 볼수록 그를 가르고 있는 경계선은 더욱 뚜렷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