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운동하던 선수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도울 길이 없었다. 연습생 선수들의 최저 생계비, 경조사비, 연금 같은 최소한의 복지 제도를 만들기 위해 선수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설적인 투수 고(故) 최동원은 1988년 선수협의회 결성을 선언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선수협 설립을 자문했던 변호사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하지만 구단들 반발로 선수협 결성은 실패했다. 결국 그해 11월 최동원은 고향팀 롯데에서 삼성으로 트레이드됐다. 구단에 미운털이 박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후 최동원은 1990년까지 삼성에서 뛰었으며 1991년 시즌 전 32세의 젊은 나이로 마운드를 떠났다.
불의에 저항했던 최동원을 기리는 '최동원상 시상식'이 있다. 2014년 양현종과 2015년 유희관에 이어 지난해는 장원준이 받았다. 그러나 이 상이 정말 최동원의 '정신'까지 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참고로 최동원상의 후보 조건은 ▲평균자책점 3.00이하 ▲선발등판수 30경기 이상 ▲12승 이상 ▲180이닝 이상 ▲150탈삼진 이상 ▲QS 15회 이상이다. 그 어디에도 최동원이 보여줬던 정의감이나 지키고자 했던 가치관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프로야구계는 승부조작부터 시작해 구단이 이를 은폐했다는 얘기까지 떠돈다. 그 와중에 한쪽에선 '억억' 거리며 FA 금액이 얼마나 뛰어오를지 마치 경마 중계를 보듯 지켜본다. 그러다 이렇게 최동원상이란 단어를 접하면 씁쓸하다.
특히 최동원은 1991년 은퇴 후 민주당 후보로 부산 서구 광역의원에 출마했다. '건강한 사회를 향한 새 정치의 강속구'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비록 낙선했지만 스포츠에서 배운 건강한 가치를 사회에 심고자 했다. 만약 최동원 투수가 살아있다면 그때 못 던진 강속구를 저 북악산 밑으로 하나만 던져달라고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