싣지 못할 도토리는 없었다
그때는 고심 끝에 '일촌명'을 정했다. 이건 촌스러웠다. 저건 앞서갔다. 그건 거리를 둔 것 같아 고민했다. 일촌명 하나 짓는데 몇 초에서 몇 분까지 생각했다. 더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일수록 그 시간은 늘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데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고민하는 것과 같았다. 첫 연결고리라는 생각에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국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원조인 싸이월드는 승승장구했다.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과 남을 훔쳐보고 싶은 욕구 사이를 채웠다. 그러다 컴퓨터 메신저 '네이트온'이란 날개를 달고 완벽히 비상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일화도 주변에 있었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휴대전화 판매장에 들어갔다가 이벤트에 당첨됐다. 그래서 점원이 "경품으로 도토리 드릴게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분은 "지금 차를 안 가져와서 도토리 박스를 싣고 가기 힘들어요"라고 답했다. 순식간에 매장 온도는 낮아졌다. 당연히 그 도토리는 집밥 백 선생이 쓸법한 먹는 도토리가 아닌 싸이월드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그 놀라운 도토리였다.
그랬던 싸이월드를 흔든 건 스마트폰의 등장이었다. 그 안에서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태어나자 싸이월드는 흔들렸다. 얼마 뒤 카카오톡이 전 국민을 유혹하자 싸이월드는 주류를 빗겨선 유물로 취급받았다.
카카오톡이 컴퓨터마저 파고들면서 싸이월드는 카운터 펀치를 맞았다. 한때 나는 '몇몇 사람들의 싸이월드 방문자 수가 더는 표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 어떡하나?'란 고민도 했는데 그 시간에 수능 공부나 더 해야 했을 정도로 오지랖이 넓은 학생이었다.
싸이월드의 생존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나는 모르겠는데 주변에선 그렇다고 한다. 어쩌다 가끔 들어가는 싸이월드 홈페이지에서 다양한 행사를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내 주변을 살펴봤을 때 싸이월드 다이어리 정도는 정말 극소수의 몇 명이 쓰고 있는 듯하다.
싸이월드가 이미 떠나간 이들의 마음을 잡기는 어려워 보인다. 묘수가 없다. 그 많던 사진첩들은 장롱 속 아날로그 사진첩과 다를 바 없어졌다. 디지털과 온라인이 내포하고 있는 '반영구적'이라는 통념이 깨졌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디지털과 온라인이라는 가상 또한 마찬가지임이 확인됐다.
소리 없이 사라진 메신저와 포털사이트들의 전철을 싸이월드는 밟고 있다. 갑자기 ADSL 인터넷 회선 쓰던 시절 즐겨찾기 해뒀던 '라이코스' '엠파스' '야후' 등의 포털사이트가 떠오른다. 더 되짚어 보니 내 일기를 담았던 'A 디스크' 'B디스크'와 엄마 몰래 아침 일찍 일어나 모뎀으로 했던 PC통신 채팅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