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의 슬픈 '반쪽 역사'

완전히 우리 것일 수는 없나

by 반동희

정신없이 용산의 모 클럽을 다니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 밤을 꼴딱 넘기고 아침이 돼서야 클럽에서 나왔는데 눈앞에 미군 기지 담벼락이 보였다.


분명 매일 봤을 법한데 그날따라 유독 그 담벼락이 슬퍼 보였다. '아, 내가 더는 이러면 안 되겠다'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거로 기억한다. 물론 술이 깨면서 그 생각도 같이 깨졌다.

그러다 며칠 전 신문을 보면서 용산의 슬픈 역사를 펼쳤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용산에 머물렀다. 병자호란과 임오군란에는 청군이 용산에 주둔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일본군 조선사령부가 용산에 있었다. 지금은 미국과 연계돼 있다.


아무리 "중국보다 미국"이라는 헛소리가 떠돌고 있어도 미국이 곧 우리는 아니다. 내가 본 기사는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용산이 완벽히 우리 것이었던 적은 없다고 꼬집었다.

개인적으로 돌아봐도 가깝게는 용산 참사가 일어났다. 아버지와 내게 게임 CD를 공급하던 이른바 '용팔이' 형님들도 온라인 쇼핑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정말 엄청난 사실은 내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었던 그 용산의 클럽이 20대의 내가 사라짐과 동시에 없어졌다는 점이다. 용산이 간직한 '잃어버림'의 역사가 절정에 달하면서 개인적 슬픔이 승화하는 비릿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