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요플레 뚜껑' 핥기

욕심과 욕망은 결국 먹는 것

by 반동희

요플레 뚜껑을 핥는 건 내 오래된 습관이다. 요즘은 초대형 요플레까지 나오고 있는데 이런 요플레를 마주할 때면 내 혀는 더 바빠진다. 조금이라도 더 먹겠다는 내 의지가 뇌에서부터 혀끝까지 짜릿하게 통한다. 일종의 적색경보를 발령하는 셈이다. 요플레 뚜껑의 멀그레한 요플레들은 그 순간 혀에 감겨 입안으로 끌려온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 요플레 뚜껑을 핥는다고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 습관은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며 대형 요플레 앞에서 눈동자가 커진 뒤 혀가 길어지는 것도 우리 모두의 일일 수 있다.


생각해보면 '더 먹고자'하는 인간의 욕구가 역사를 바꿔왔다. 나는 모든 소유욕을 먹는다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는 개똥철학을 갖고 있다. 다른 나라를 침략한 것을 두고 '나라를 먹었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 나라 땅을 점령한 것을 빗대 '땅을 먹었다'고 비유할 수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암살>은 그래서 더 보는 내내 요플레가 생각났다. 손에 든 사과 주스를 빨대로 먹는 건 사실 먹는다는 표현보다 마신다는 것에 가까워서 어쩐지 아쉬웠다. 마찬가지로 영화 속 배경에서 일본은 조선을 먹었지만 전부 집어삼키진 못하고 어설프게 마셨다.


어쩌면 요플레 뚜껑을 핥는 단순한 혀 놀림이 과거 역사적 어느 시점의 어느 순간을 설명할 수 있는 단초이자 나비 효과의 시작점일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 섬뜩함에 잠깐이나마 시원해지다가도 요플레가 잔뜩 묻은 그 뚜껑을 눈앞에 두면 또 핥고 만다.


이 요플레 뚜껑 핥기를 멈추지 않는 한 욕심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방도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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