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돌아본 노량진의 속살

고인 빗물엔 그들의 자유가 모였다

by 반동희

그들은 노량진에 모였다. 무엇이 그들을 이곳으로 모았는지 확신은 어려웠다. 자의도 있고 타의도 있을 터였다. 추측만 가능했다.


금요일 밤과 토요일 새벽 사이의 노량진은 비틀거렸다. 굳게 닫힌 컵밥집과는 대조적으로 휘황찬란한 술집들이 불빛으로 자유를 끌어당겼다. 저마다의 도전을 하겠다는 수험생들의 열기와 현실의 무게감이 그 속에서 뒤엉켰다. 누군가 낮에 혼자 먹었을 김밥 한 줄이 떠난 자리엔 술잔이 남았다. 술에 취해 주저앉아 머리를 흔들거나 꺼억꺼억 헛구역질을 하는 것도 그들 나름의 자기 합리화이자 언어였다.


노량진 지하철 역과 반대편 대로변을 잇는 육교는 스산했다. 모두가 세상과 노량진을 연결하는 다리라고 의미를 부여한 육교였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세상'과 그 밖의 장소를 뜻하는 노량진의 차이를 나는 느끼지 못했다. 세상 속에 노량진이 있는지 노량진이 세상 밖에 떨어져 있는지도 쉽게 구분할 수 없는 수준의 문제였다. 오히려 노량진 뒷골목으로 들어갈수록 노량진이 더 내가 아는 세상 같아 서글펐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따위의 말이 그곳의 공기를 벨수록 뒷골목의 공기는 온도를 낮췄다.


노량진 수험생들은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한 수험생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모두가 시험을 위해 그렇다는 거였다. 10여 분간 지나가면서 보거나 스친 사람들 중 2명 정도가 합격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진한 비릿함에 코끝이 찡했다. 10퍼센트의 확률이 주는 수학적 명료함에서 감성적이기 어려운 삶의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그때 나는 '자유를 통장에 넣어두고 나중에 꺼내 쓸 것'이란 관념이 노량진 안쪽에서 공유되고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자유는 실물로 가둘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자꾸만 그들 사이에서 주말 밤이면 흘러 나왔다. 그렇게 저마다가 흘린 자유는 뒷골목에서 호흡했다. 나는 그 안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세상과 노량진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날 노량진에서 10년 지기 친구들을 만났다. 패기 넘쳤던 그 시절로 돌아가 시원한 욕지거리를 하며 결코 취하지 않았다. 창밖엔 비가 오락가락 내리며 노량진을 씻어내고 있었다. 술집에서 나왔을 때 땅 바닥에는 노량진을 한 번 훑은 빗물이 곳곳에 모여 있었다. 그 빗물 속에는 수험생들이 억누른 자유가 녹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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