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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Feb 15. 2017

'레거시' 희미한 평창동계올림픽

물릴 수 없으니 '사후 활용'이라도 확실하게

일본 <마이니치> 신문이 '평창동계올림픽 주요 시설은 완성됐지만 국민 관심은 충분하지 않다'고 지난 10일 보도했다. 이들은 현장 취재 직후 한국의 갤럽 여론 조사를 인용해 '한국에서 평창올림픽에 관심 있다고 응답한 국민은 48%에 불과하다. 올림픽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38%에 이른다'고 꼬집었다.


해당 보도는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D-365일을 맞아 국내 복수의 매체가 취재했던 시기와 겹친다. 국내 매체들이 대회 공정률 등을 근거로 성공 개최를 낙관한 가운데 비판적인 목소리가 외신에서 먼저 나온 셈이다. 발화지가 본 매체라는 심적 반발심 때문에 이를 무시하고 싶지만 그래서 더 눈길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이 2020 도쿄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터라 여러모로 평창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로 들어와 평창 현장을 탐방한 한 활동가는 도쿄 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정규 과목으로 '올림픽'이 채택돼 연간 35시간의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일본에는 총 1000개 정도의 대학교가 있는데 그중 550개 대학이 올림픽 자원봉사활동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단다. 일본 특유의 일사불란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마이니치> 신문 보도는 그들의 '우월의식' 아래서 평창의 준비 과정을 얕잡아 보는 것으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만 보면 이 비판 대부분은 외신에서 먼저 나왔다. 우리 사정 우리가 더 잘 알 텐데 이제껏 꼭 그래왔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이 1년도 남지 않으면서 분위기 띄우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치르기로 한 대회이니만큼 잘 해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성공 개최'의 초점이 잘못됐다. 사후활용을 포함해 폐막 이후 수습이 진짜라는 건 이제는 많은 이들이 안다. 체육계 안팎을 비롯한 일반 국민까지도 이러다 부채만 잔뜩 껴안고 강원도 파산하는 거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한다. 유치과정부터 지금까지의 평창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유나 킴' 앞세워 개최 전쟁 승리


'삼수'를 거듭한 평창은 2011년 7월7일 자정에 2018 동계올림픽 유치를 확정했다.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제123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95표 중 63표를 얻었다. 경쟁 도시인 독일 뮌헨(25표)과 프랑스 안시(7표)를 예상보다 크게 따돌렸다.


언론은 이명박 전 대통령, 조양호 유치위원장, 문대성 IOC 위원의 프레젠테이션에 이어 '피겨여왕' 김연아의 호소가 IOC 위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보도했다. 이들의 흥분은 고스란히 국내로 전달돼 국민의 자부심을 끌어냈다. 그사이 한쪽에서는 평창동계올림픽이 가져올 효과를 돈으로 묶는 작업이 진행됐다. 여럿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는 구체적인 경제효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평창을 띄워준 65조원 경제효과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타당성 조사 보고서'에서 대회를 한껏 치켜세웠다. 보고서는 ▲20조 4973억 원의 전국 총생산 유발효과 ▲23만 명의 고용 창출 효과 ▲19만 5000명의 외국인 관람객 수 등을 예상했다.


경제효과 산출은 멈추지 않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국가브랜드 제고로 기업 이미지가 동반 상승한다. 3200억 원에 이르는 홍보 효과가 발생한다"면서 "약 10조원의 내수 수출 증대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경기장과 교통망 등 개최를 위한 총 투자 규모는 7조2555억 원"이라며 "경제적 효과는 16조4000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언론도 가세했다. 대다수 언론은 이들의 발표와 예상치를 종합해 "최대 65조원의 경제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평창동계올림픽이 강원도의 지역 경제를 넘어 국내 경제까지 살릴 수 있다는 행간 속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그간 소외당했다고 여기는 강원도의 민심을 다독여주면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팍팍해진 국민의 지갑 사정을 훤히 내다봤다.


경제효과에 앞서 우려되는 부채


하지만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제는 경제효과를 곧이곧대로 믿는 것에 많은 의문이 쌓이고 있다. 여러 시민단체는 대회 경제효과에 고개를 젓고 있으며 강원도 내에서조차 거대한 빚잔치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대회 개최 비용은 매년 폭등했는데 그나마 최근 추산치인 2조8000억원 중 아직도 4000억원 가량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후원금은 목표액의 86% 정도에 머물러있다. 올림픽 운영비와 사업관리 등을 대행할 주거래 은행도 선정되지 않은 상태다. 주거래은행 후원금은 2011년 유치 결정 당시 500억~600억원을 호가했으나 현재는 150억원까지 줄었다. 특히 '국정농단'을 포함한 나라 안팎의 정치적 어수선함이 번지면서 금융권은 여전히 냉담하다. 이 가운데 사업비의 75%가 국비로 지원된다는 것을 참작하면 국가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강원도의 재정자립도는 전국 17곳 중 15위다. 시민단체들은 올림픽 이후 강원도민 1인당 약 130만원의 부채 부담이 발생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나가노·밴쿠버·소치 모두 '적자 축제


동계올림픽의 경제효과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것은 과거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눈의 도시'로 불리며 "아시아에서 가장 동계올림픽을 치르기에 적합하다"고 평가받았던 일본은 1998 나가노동계올림픽에서 약 5조원의 적자를 봤다.


동계올림픽 예산 전문가로 알려진 에자와 마사오 '올림픽이 필요 없는 사람들 네트워크' 대표는 2년 전 CBS와 인터뷰에서 이런 문제를 꼬집었다. 그는 "지방채를 발행하는 등 나가노올림픽 준비는 거의 빚으로 이뤄졌다. 1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빚이 남아있다"고 전했다. 1조5000억 엔을 투자하면 약 2조3000억 엔의 돈이 될 것이라던 나가노 지역 연구소의 경제효과 발표 또한 허울뿐이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캐나다 밴쿠버 또한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5조원의 적자를 봤다. 밖에서는 동계 스포츠의 발달과 지역적 특성을 언급하며 대회 자체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밴쿠버 안에서는 '올림픽의 저주'라고 할 정도로 경제효과가 없었다.


2014 소치동계올림픽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적극적인 밀어붙이기식 행정 속에 성대하게 열렸지만 50조원의 투자가 대부분 적자로 돌아왔다. 당시 미국 CNN방송은 '파티가 끝나면 개최 도시에는 무엇이 남겠느냐는 물음이 소치 동계올림픽 관계자들의 밤잠을 괴롭힐 것'이라고 보도했다. 뒤이어 여러 외신을 통해 소치의 황량한 모습이 전파를 타면서 동계올림픽 이후 시민들의 체감 경제효과는 사실상 없다는 게 입증됐다.


"스포츠 경제효과는 과대평가된다"


IOC는 2014년 사실상 '1국가 1도시 개최'를 포기한 '어젠다 2020'을 내놨다. 개최 도시를 넘어 한 국가의 재정을 압박하는 동계올림픽 개최가 더는 경제효과 논리에 가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도 동계올림픽에 대한 세계적인 반응은 미지근하다. 2022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서려던 노르웨이의 오슬로는 주민들의 반대와 재정상의 문제로 유치 신청을 철회했다. 평창과 경합했던 뮌헨 역시 지방재정 적자를 이유로 더는 동계올림픽 유치전에 뛰어들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동계올림픽을 비롯한 국제스포츠 이벤트가 쇠락해가던 도시를 살린다는 이론도 옛말이 된 것이다.


설수영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와 김예기 한국개발연구원 실장은 2011년 쓴 <스포츠경제학>에서 "초대형 스포츠 경기장 등 스포츠 시설에 대한 경제적 효과가 비경제적인 이유로 과대평가될 수 있다. 많은 스포츠 시설이 지역 경제 발전에 일조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타당성 평가가 경제적 편익을 과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해당 지역의 정치인, 관료, 스포츠 관련 종사자들이 정부지원을 통해 스포츠 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경제적 효과가 크게 나오도록 여러 가지 가정을 이용하기도 한다. 특히 외부 관광객을 유치하는 정도를 과대평가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둘러싼 경제효과를 여기에 대입해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도 없던 경제효과


2002 한일월드컵은 스포츠에서의 경제효과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등에 지어진 축구장은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이고 풀뿌리 축구의 기초가 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들었다. 하지만 서울월드컵경기장과 몇몇 경기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경기장은 유지비용만 잡아먹는 애물단지가 됐다. 무형적인 효과는 알 수 없으나 실질적인 경제효과에서는 꽝인 셈이다. 메가 스포츠 이벤트의 경제효과는 분명 과대 포장돼 있다.


당장 2014년 치른 인천아시안게임만 봐도 그렇다. 대회 폐막 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인천시는 "아시안게임을 위해 지은 신설경기장 16곳의 예상 수입이 26억 원이지만 지출액은 134억 원"이라고 밝혔다. 신설 경기장 외에 기존 경기장 11곳과 소규모 체육시설 8곳 등 공공체육시설 35곳의 영업 수지율도 41.5%에 그쳤다. 예상 수입은 131억 원인 반면 지출액은 315억 원에 달하는 적자 생활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당연히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갔다. 반드시 예산을 지출해야 하는 필수 사업이 있음에도 인천시는 이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인천시가 대회 이후 예산에 반영하지 못한 필수경비는 군·구 조정교부금 1263억 원과 교육비 특별회계 전출금 451억 원 등 약 4500억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재난관리기금 1366억 원, 재해구호기금 240억 원, 지난해 누적된 예산 미반영 필수경비까지 모두 합치면 1조2000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감싸고 있는 경제효과 또한 이들과 다를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두루뭉술한 경제효과는 커다란 빚으로 이어진다는 게 최근 국내외 사례에서 확인됐다.


'사후 활용'만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


평창에서 이러한 사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제라도 제대로 된 사후 활용 방안이 있어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대회를 안정적으로 치르면서도 이른바 '레거시'로 불리는 유산을 어떻게 남길까 하는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다. 사실 지난해까지도 뜨거웠던 '분산 개최' 론이 그래서 더 아쉽다.


현시점에서 가장 첫째는 정선 알파인 경기장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의 사후 관리 주체를 결정하는 것이다. 현재 이 두 시설물은 사후 활용의 첫 단추조차 끼우지 못하고 있다. 특히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은 원래 올림픽 이후 철거하려 했으나 지난해 4월 존치하기로 하면서 더욱 애물단지로 몰릴 위기에 직면했다.


올림픽 개폐회식이 열리는 올림픽플라자도 현재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 강원도가 맡는다는 계획인데 애초 사격형 형태가 오각형 형태로 변형되면서 실용성이 더욱 떨어졌다는 평가다. 늦기도 많이 늦었지만 이러한 시설물의 사후 활용 방안부터 떠올리는 게 부채 최소화의 시작이다.


현재까지의 상황만 봐서는 평창동계올림픽에 '유산'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조차 힘겨워 보인다. 하지만 강원도라는 역사와 지역적 특수성을 인정하면 조금은 다르게 볼 여지도 있다.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뒤에 더욱 정확한 평창의 유산 측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후 활용 대책과 부채를 더 늘리지 않는 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항목임이 분명하다.


*허핑턴포스트 기획연재에 참여했던 글(올림픽 경제효과의 진실. 2015/04/17)을 토대로 추가 취재해 작성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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