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화와 무식화

사유 안 하는 아이러니란...

by 반동희

그는 지식이나 정보의 축적과는 다른 차원의 앎이 있음을 강조했다.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는 말이 대상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모았다는 뜻이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의 눈이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그런 앎 말이다. 지식을 쌓는 것과는 다른 지식이 밝아지는 체험. 사람들의 가치와 신념 더 나아가 삶까지 통째로 바꾸게 하는 정신상 격변의 체험을 나는 이 글에서 '사유'라는 말로 개념화하려고 한다. (중략) 그는 지식의 생명이 방대함이나 엄격성과는 다른 요소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것을 그는 '의식'이라고 불렀다.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의식이 없으면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국제법을 몇십년 공부해도, 박사학위를 몇개씩 받아도, 아무런 '회의'도 없이 그저 정부가 내놓은 대로만 '지식화'하면 영원히 무식자로 남을 뿐이다. 그러니까 의식이 없으면 지식은 무식이 된다. '지식화=무식화'라니 참으로 역설적인 도식이 아닐 수 없다. (사유란 감옥에서 상고이유서를 쓰는 것: 리영희의 루쉰 읽기 / 고병권)


느 날인가가 책을 많이 읽어서 버티는 힘을 기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의견 개진에 독서량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단순 인용하기보다는 그걸 체계인 자신의 언어로 체득해야 한다고 어느 분께서 충고해줬다. 위 구절을 보다가 그날이 떠오르며 희미하게 갖고 있던 '사유'의 정의란 결국 이런 게 아닐까 하고 선명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새로운 사람을 자주 만나다 보니 소위 말해 '배웠다'는 분들도 만나고 그와 반대로 '저는 배우지 못해서'라며 머리를 긁적이는 분들도 이따금 본다. 뭐가 배운 것이고 뭐가 배우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이분들이 말할 때의 '배웠다'와 '못 배웠다'가 뭔지는 확신할 수 있다. 그때의 모든 배우고 안 배우고의 기준점은 사회의 정규 교육 과정을 어디에서 어떻게 어디까지 통과했는가로 축약된다. 물론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전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다.


어제 자 경향신문에 '대한민국은 왜 의전 공화국이 되었나?'라는 주제로 긴 특집 기사가 나왔다. 기사를 읽고 나니 민간으로 잘못 퍼진 의전 또한 '배움'을 일렬종대로 나열해 사회 구석을 찌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에서 갑은 항상 그들이며 '을'에서 을도 항상 우리가 아는 그들이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많은 것들이 갈리고 그에 따라 반평생의 삶이 정의되는 것에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라이센스' 아우라 뽐내던 분들의 실상이 '맹탕'일 수도 있구나 하는 경험을 몇 번 했기에 귀가 쫑긋 한다.


어떨 땐 도무지 그 라이센스맨과 대화가 안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라이센스 없는 죄'와 예전에 자주 유행하던 '억울하면 출세해'라는 말로 귀결되는 극단적인 사례였다. 그래서인지 지식화가 곧 무식화가 될 수도 있다는 책 속 텍스트가 실감 나게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사유 안 하는 인간의 아이러니란 또 뭐가 있을까. 나란 인간은 사유라는 걸 하고 있을까. 문득 책장에 쌓인 책들이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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