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린' 말 한 필

by 반동희

바다에 가면 자연의 장엄함을 새삼 깨닫는다. 먼 바다와 가까운 바다 모두 반짝이며 햇살을 튕겨낸다. 멀리서 일렁이며 밀려오는 파도는 그 시작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하다. 지구의 6분의 1을 이런 바닷물이 차지하고 있다는 걸 철썩이는 파도로 말하는 듯하다. 그 앞에 서면 시야가 트이고 바다 특유의 짠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오감으로 세상을 느낀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감동의 물결이 파도랑 함께 다가온다.


며칠 전 바다에서 나는 오감의 꿈틀거림을 재차 체험했다. 모처럼 회색 빌딩과 그것들이 수놓은 잿빛 풍경에서 벗어나 내 몸에 오감 DNA가 있음을 확인했다. 눈을 다 떠도 담을 수 없는 바다의 넓은 풍경이 장엄했다. 코를 계속 킁킁거려도 매번 다르게 올라오는 후각이 내 몸에 여전히 포유류의 동물적 감각이 살아있음을 일깨웠다.


모든 것이 영롱하던 그 바다에서 나는 홀로 쓸쓸한 말 한 필을 봤다. 눈에 가림막이 처져있던 그 말은 사람을 위해 노동했다. 그 말은 꼬리 뒤에 연결된 마차를 끌었다. 마차에는 말 주인으로 보이는 이에게 돈을 주고 올라탄 관광객들이 차례대로 북적였다.


저 말은 어디에서부터 전혀 연고도 없는 이 동해까지 왔을까. 어찌 사람 손을 타기 시작해 이 아름다운 곳에서 억지로 중노동을 하고 있을까. 혹시 더 한창때는 경마장 같은 곳에서 준마로 달리며 도박사들 사이에서 이름을 날리지 않았을까.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도 앞에서 밀려왔다가 쓸려나갔다. 눈앞의 현실에 집중하면 내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바다가 자연의 일부로 여전히 빛났다. 하지만 머릿속 직관에 집중하면 자연에서 기능이 거세돼 말 주인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 말이 커졌다.


내가 보는 풍경을 말이 보지는 못할지언정 코로 냄새는 느끼지 않을까. 그때 말 속에선 어떤 감정이 샘솟을까. 생각이 번지는 동안 다음 손님을 위해 멍하니 서 있는 말을 도무지 쳐다볼 수 없었다. 그 눈빛을 보면 꽤 오랜 시간 잊을 수 없을 것 같아 애꿎은 말발굽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말 주인은 말이 앞만 보고 걷도록 양쪽을 가림막으로 가렸다. 노동을 위한 도구로 정의된 말에겐 그것만을 위한 시가 필요했음이 분명하다.


그 가림막에서 나는 이따금 한쪽만 보고 달린 나와 나를 포함한 이 시대 비슷한 수준의 몇몇 현대인이 떠올랐다.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사는데도 때때로 그게 전부인 양 인지하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바다 앞에서 오감을 작동하면서도 몸과 마음의 가림막을 모두 걷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눈 가린 말은 그렇게 감상에 젖은 나를 뒤로하고 눈앞에서 저쪽으로 사라졌다. 마차에는 막대사탕을 손에 든 어린아이와 그 부모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타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