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좀 먹어야겠다
조금 다른 얘기를 하는 이가 나타난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새 얼굴은 흥미를 끈다. 그런 평가를 듣는 새 얼굴은 더욱 그간 쌓아놓은 것들을 풀어낸다. 자연히 호불호도 생기는데 이를 시기한 어느 집단이나 개인이 그 새 얼굴을 깎아내리기 위한 주관적 검증에 들어간다. '비난을 업으로 삼은 꼰대'가 등장하는 시기다.
특정 집단을 싸잡는 느낌의 '꼰대'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쓰진 않는다. 그러나 이 대목에선 딱히 다른 언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어쨌든 이때의 꼰대들은 한평생 자신들이 쳐둔 촘촘한 그물망을 펼쳐 '새 얼굴'을 평가하기 시작한다.
어디 출신? 어디 졸업? 어디까지 공부? 뭐하던 사람? 지금은 뭐하는데? 누구랑 친해? 등등 한국 사회의 구태들로 인터넷 꼰대들은 새 얼굴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꼰대들은 자신의 확증 편향이 만들어놓은 특정 통로의 인맥이 어떤 단면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이런 것쯤 수소문하는 건 내 스마트폰 연락처에선 일도 아니라고 흡족해한다.
나이 젊은 꼰대들한테는 구글링이라는 마법의 도구가 있다. 이들은 올바른 사고와 판단이 뭔지 생각할 여유는 없어도 구글링의 다양한 검색 방법을 통용할 시간은 충분히 갖고 있다.
꼰대들이 검증을 거듭할수록 새 얼굴은 향한 의도된 태클도 정비례해 상승 그래프를 그린다. 새 얼굴이 가리키는 달을 보는 게 아니라 새 얼굴의 손가락을 비틀기 시작한다. 새 얼굴이 내놓는 것들에 대한 비판이 아닌 그의 사회 등급을 엮은 비난을 위한 비난도 나온다.
그러면 둘 중 하나다. 새 얼굴은 여기에 환멸을 느껴 떠버리거나 아니면 내 갈 길 가겠다고 무시하며 하나하나 블록을 계속 쌓는다. 왜냐하면 새 얼굴은 블록 쌓는 게 그저 재미있을 뿐이며 저 뒤에는 다음 블록도 있고 또 다른 블록도 준비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블록이 쌓이다 보면 하나의 장벽이 되고 이는 꼰대들이 넘볼 수 없는 새 얼굴만의 보호 장치가 된다. 이때의 보호 장치는 새 얼굴로 향할 인터넷 꼰대의 공개 화살을 차단하는 방패이자 하나의 독립된 공간을 만들어주는 장치로 기능한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날 선 것은 되도록 쓰지 않으려 한다. 엄한 독자가 불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이들의 행적을 훑을수록 모두 저 새 얼굴에 해당하는 것 같아 뜨거운 게 치밀어 올랐다. 글을 쓰고 또 그게 읽히면서 몇 차례 말 같지도 않은 일을 겪었던 것도 한몫했다. 날도 더운데 괜히 점심으로 찌개를 먹었다. 냉면을 좀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