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인체 부품

요즘은 '감흥'이 없어

by 반동희

야구, 축구, 농구, 바둑, 장기, 고스톱, 포커를 하며 놀았다. 가장 재능을 보였던 건 사실 포커였다. 바둑 연습하라고 집에서 사 준 바둑돌들을 전부 포커할 때 쓰는 '칩'으로 썼다.


"남자는 다 할 줄 알아야 해"라고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포커 족보를 알려줬던 아버지 표정이 갈수록 어두워졌다. 그러다 막 중학교 입학했을 때인가 내가 스승인 당신을 무수한 바둑돌 칩으로 꺾었을 때 아버지는 처음으로 내게 교과서도 좀 보라고 했다.


요즘 유튜브 빅데이터가 강화됐는지 접속만 하면 다양한 포커 동영상이 뜬다. 아무래도 자주 보니까 뜨는 듯하다. 다만 얼마 전 인공지능이 세계 최고의 프로 포커팀을 꺾으면서 이 판에 대한 환상도 조금은 사라졌다. 사실 계산이나 추론 능력은 뒤로하고 아예 표정을 읽을 수 없다는 점에서 고철 덩어리가 포커에 유리한 건 당연하다. 존재 자체가 포커페이스니까 여기엔 심리전이 개입할 여지가 아예 없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나이 먹으면서 갖고 있던 꿈을 지워나가는 게 삶이라고 한다. 내가 먼저 썼어야 할 말을 또 누가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했는데 실제로 요즘 또래들을 만날수록 비슷한 얘기를 하며 나도 공감한다. 그럴수록 새로운 걸 찾아야 하는데 도무지 뭘 해도 감흥이 없다.


월미도 하늘에 터지는 폭죽을 보며 "나도 빨리 사서 쏴야지"라고 했던 게 엊그제 같다. 그런데 요즘은 "날 위해 이런 걸 쏴주다니 고맙다. 편하게 잘 볼게"라고 한다. 어디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벌써 육체든 정신이든 어느 한구석 부품이 수명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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