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아침은 이 글의 시작인 1편 첫 부분과 같다. 나는 낯선 운율 속에서 눈을 떴으며 "거시기"가 진짜 다양하게 쓰인다는 걸 TV에서 본 것 외에 실제로 처음 체험했다. 당연히 찜질방에 묵은 첫 번째 이유인 아침 온탕행도 실천했다. 참 아름다웠던 건 찜질방 온탕에서 창밖을 보면 밖으로 바다가 보였다는 거다.
바다 앞에는 '헤밍웨이' 등의 이름이 붙은 배들이 있었는데 마치 헐레벌떡 뛰어다니다가 헉헉 거리며 앉아있는 우리 집 강아지를 보는 것 같았다. 저 배들은 얼마나 많은 바다의 물살을 갈랐으며 얼마나 많은 거리의 망망대해를 쏘다녔을까. 문득 부러우면서도 힘들진 않은지 묻고 싶을 정도였다.
저 옛날의 작가 헤밍웨이는 자기 이름을 붙인 배가 한반도 어디 남쪽 바다에서 물살을 가를지 상상이나 했을까? 여하튼 꼬리에 꼬리를 물던 질문은 '뭐 먹지'로 다시 귀결됐고 나는 그렇게 다시 본능에 충실했다. 주머니 사정상 아점을 먹긴 아쉬우니 여수 거리를 한없이 걸으면서 점심시간을 채운 뒤 맘에 드는 식당에 들어가기로 했다. 스마트폰 검색이나 주변에 물어보는 것들은 몸 따라 마음 따라 하는 여행이니만큼 하지 않기로 했다. 철저히 혼자 아날로그 방식으로 여행하고 싶었으며 안 그래도 휴대폰 전원은 이미 꺼 둔 상태였다.
점심은 어느 '게장 정식'이란 간판이 크게 붙은 집에 들어가 해결했다. "혼자 오셨어요?"라는 말에 "네"라고 대답했더니 다소 신기하다는 눈빛이 몇몇 손님한테서 쏟아졌다. 평일 이 시간에 면도도 안 한 수염 덥수룩한 남자가 혼자 온 게 이상하다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집은 혼자 오는 게 아니라 같이 오는 게 더 낫다는 것일까?
아무튼 도시와는 다른 시선을 받았다. 찜질방에서 씻기 전에 왔다면 내쫓겼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는데 이미 난 면도 외에는 깔끔한 상태였다.
나 홀로 1만 원짜리 게장 정식을 무척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먹고 나니 비로소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밑반찬이 많이 나오는데 혼자 들어오면 이상하게 여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2명 분의 양을 먹어치웠기에 오히려 돈을 번 셈이었다. 이제 열심히 둘러보면서 배를 꺼트리고 서울 올라가는 KTX 열차에서 신문 보다가 잠드는 것만이 과제로 남아 있었다.
365개의 섬을 품은 여수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지켜낸 곳이자 승전지였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어업의 전진기지로 활용됐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2017년 6월 21일 자 경향신문 보도(‘아픈 역사’ 여수 - 낭만의 여수 밤바다…100년 전엔 징허디 징헌 바다였다)를 보면 여수는 천혜의 보물이 담긴 바다이자 한 맺힌 항구였다.
나는 이런 역사적 사실 뒤늦게 돌아와 신문으로 알았다. 왜냐하면 나는 집에서 입고 있던 반바지를 그대로 입고 곧장 아무 생각 없이 기차표를 끊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여수에서 갈만한 곳은 다 갔다. 택시 기사분께 이러저러한 곳을 돌았다고 얘기하니 "그 정도면 여수에서 해야 할 건 다 했네요"라는 합격 발표가 돌아왔다.
반복하자면 나는 택시 기사 취재를 즐기는 편이다. 적어도 장소에 관해선 적절한 정보가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합격점을 받았으니 나는 어디 가서 여수 다녀왔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발품을 판 셈이다.
나는 여수에서 돌산대교를 걸었다. 오동도에 들어갈 때는 걸어갔다. 나올 때는 어르신들 단체 관광 틈바구니에서 동백열차를 탔다. 2012년의 감동이 있지만 지금은 매우 한산한 여수 세계박람회장도 거닐었다. 여수 해상 케이블카를 타는 곳까지 11층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매우 유심히 관찰하고 내려오기도 했다.
다만 실제로 케이블카를 타진 않았다. 그 이유는 내가 지독한 고소공포증이 있어서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63 빌딩 꼭대기 층을 올라갈 수도 없거니와 딱 한 번 정말 억지로 올라갔다가 유리창 쪽 5미터 안으로는 발은 한 발자국도 놓지 못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 그때 하얗게 질린 얼굴은 내가 "응애"하면서 태어나 처음 태양을 보기 전까지 이후 최고로 하얀 얼굴이었다.
그러니 여수 해상 케이블카를 내가 자처한 여행지에서 온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까지 탈 이유는 없었다. 이후엔 만성리 검은 모래 해수욕장에 가서 아무 곳이나 누워 단잠에 빠져보기도 했다. 검은 모래는 사실 별 감흥이 없었고 그냥 조개구이집 자갈밭에 있는 기분이었다.
어느덧 날이 어두워질 것 같아 '이제 됐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곧장 서울행 기차표를 스마트폰으로 끊었다. 기차 안에서는 5가지 종류의 신문을 마음껏 읽고 열차에서 제공하는 간식을 먹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왕 혼자 시작한 여행 끝까지 사치 좀 부려보자는 생각에 평생 탈까 말까 한 '특실'을 끊었기 때문이다.
행색은 집에 있는 고스톱 담요만 걸치면 노숙자 부럽지 않았지만 내 나름대로는 평일 KTX 특실에서 신문 보는 폭풍 엘리트 아우라를 내뿜었다고 자신했다.
서울로 돌아오고 몇 달이 흘러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멋진 곳을 다니기에 도대체 저기가 어딜까? 하고 봤다. 그랬는데 웬걸! 여수였다. 깜짝 놀랐다.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나름대로 여수를 다녀왔다고 자부한다. 더는 설명이 필요 없는 나 홀로 여행이었다. 여행은 원래 눈과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하는 거다. 다시 쓰는데 난 분명 여수를 다녀왔으며 지역 토박이 택시 기사의 여행 합격 통보를 받은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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