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여수 여행③ "여수 참 넓죠?"

by 반동희

그렇게 나는 1년 차 뱃사람 체취를 풍기면서 수제 맥주와 땅콩과 심지어 수첩 에세이로 호화를 부렸다. 그리곤 게스트 하우스행이냐 찜질방행이냐를 놓고 한참 고민했다. 이미 시간은 새벽 2시였다.


나는 사실 저 여수 밤바다 앞 벤치에서 자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조금씩 했다. 하지만 중간중간 돌아다니는 경찰이 벤치에서 자는 나를 깨울 게 분명했다. 특히 잘못했다가는 이 몰골 그대로 노숙자로 몰려 어디 파출소에 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싹텄다. 그렇기에 결국 한 3분 정도만 고민하다가 접어버렸다.


결국 찜질방을 택했다. 그 이유는 일단 게스트하우스에 가기엔 시간이 애매했으며 싹 씻고 나와서 컵라면에 시원한 맥주 한 캔을 꼭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일어나서는 뜨거운 탕에 몸을 넣어 마치 공복에 체지방이 타는 듯한 전혀 검증 안 된 기분도 느끼고 싶었다. 그러려면 게스트하우스의 확인 안 된 샤워시설보다는 그게 전문인 찜질방 목욕시설이 더 괜찮았다.


여수는 택시비 5000원 내외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걸 KTX에 앉아 어느 블로그에서 본 터였다. 주저 없이 거리 검색 따윈 하지도 않고 택시를 불렀다. 결론은 8000원이 나왔다. 진짜 멀었는지 택시 기사가 돌아갔는지 나로선 아직도 모르겠으며 다시 확인해야 할 이유도 사실 없다.


솔직히 예전에 본 <응답하라 1994>의 한 장면이 떠오르긴 했다. 그 장면에서 막 상경한 삼천포(김성균)가 서울역에서 신촌까지 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빙빙 돌며 "서울 참 넓죠"라고 말했던 것 말이다.


하지만 난 목적이 있는 여행이 아니었기에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다행히 택시 기사님은 매우 친절했다. 취재하는 게 직업인 나는 새로운 장소에서 그 지역 택시 기사의 말을 빼먹지 않고 듣는 편인데 그런 습관도 뒤로 밀어둔 채 창밖을 관찰했다. 나는 뒷좌석 양쪽 창문을 모두 열고 정말로 자유를 만끽했다. 밖에서 불어오는 여수 밤바다 해풍은 왼뺨과 오른뺨을 감싸면서 내가 정말 제대로 여수를 느끼고 있구나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얼핏 강아지들이 차를 타면 그렇게 창밖 바람을 느끼곤 하는데 그런 모습이 내게서 겹쳤다. 내가 봤던 블로그에선 여수 내 거의 모든 지역을 택시비 5000원 내외로 움직일 수 있다고 했으니 3000원 정도 더 내고 조금 더 긴 시간 여수 밤 향기를 느꼈다고 눙치면 됐다. 정말로 내가 만족하고 그러면 된 것 아니던가. 나는 목적도 시간도 없는 여행을 이제 막 시작했으니 말이다.


찜질방은 매우 쾌적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머리를 감고 거울을 봤더니 이제 조금 보통 사람 같았다. 땀 냄새와 바다 냄새가 뒤섞였던 몸이 찜질방 여기저기를 돌면서 피로를 푸는 모드로 전환됐다. 나는 가방에서 소설책을 꺼내 열심히 읽었다. 그러다가 또다시 사회학 책 하나를 꺼내 바꿔 읽었다. 여행지에서도 이 책 저책 기웃거리며 읽는 독서 습관은 여전했다.


주변은 거의 대다수가 아주머니들이었다. 어쩌다 술 취해 들어온 아저씨들도 이따금 보였다. 코 고는 소리만 빼면 내가 조용히 컵라면을 사다 먹고 책을 읽기엔 최적의 환경이었다. 그렇게 책에 빠져있다 보니 여기가 서울인지 여수인지도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피곤함이 눈꺼풀을 붙였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아마도 잠들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했던 생각은 '휴대폰 잘 넣어뒀지?'와 '아, 내일은 뭘 먹지?' 그리고 '포장마차 나도 진짜 가고 싶었는데'였던 것 같다. 그렇게 잠이 든 나는 "거시기"로 깨기 전까지 정말 오랜만에 중간에 깨거나 뒤척이거나 하지 않고 꿀잠을 잤다.


<더 읽기>


나 홀로 여수 여행① 서울역과 용산역은 왜 같이 묶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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