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여수 여행② 1년 차 뱃사람 코스프레

by 반동희

"그 포장마차 많은 곳 가주세요."


막상 여수역에 내리니 멍했다. 기차에서 내려 역 밖에 나왔더니 밤 10시 40분이었다. 그나마도 베트남 요리가 배에서 신호를 보내 여수역 화장실에서 15분을 까먹은 후였다. 그러니까 나는 여수 특유의 바다내음이 담긴 공기를 느낄 새도 없이 심지어 출발지도 아닌 서울역에서 사 먹은 베트남 요리를 위해 화장실에서 여수의 첫인상을 느낀 것이다. 다행히 화장실은 최소한 내가 쓰기 전까진 무척 깨끗했다.


역에 나왔더니 한없이 어두웠다. 고요했다. 서울의 평일 저녁 10시 40분과 여수의 평일 저녁 10시 40분은 한 10시간 정도의 차이가 나는 듯했다. '그래, 우리나라도 시차가 존재하는구나' 뭐 이런 생각을 하는 찰나에 택시 아저씨가 내 앞에서 친절히 창문을 열었다. 그리곤 "어디 가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뒤를 살짝 봤다. 나밖에 없었다.


"포장마차 많은 곳이요. 거기 어디죠? 이름을 모르겠네요. 거기 내려주세요."


다행히 여수에서 내 차림은 노숙자로 인지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택시도 탈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인정받은 뒤 기차에서 검색했던 여수의 포장마차 거리를 대충 말했다. 그렇게 여수 포장마차 거리 혹은 낭만포차 거리로 불리는 곳에 얼떨결에 갔다.


첫인상은 뭐랄까. 나도 들어가서 앉아보고 싶다? 그런 느낌이었다. 삼삼오오 내 또래보다 조금 젊은 친구들이 모여 웃고 떠들며 마시고 있었다. 일단 안주 자체가 풍성했다. 가끔 포차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에서 게임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하지만 난 혼자였다. 혼자 도저히 그 포장마차에 들어가 앉아 이거 주세요, 저거 주세요,라고 할 자신이 없었다. 택시 영수증을 내놓지 않는 한 노숙자로 인정될 가능성도 충분했다.


안주는 무척 맛있어 보였는데 그럴수록 혼자 왔다는 자유로움과 대비되는 알 수 없는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 구속감이 들었다. 둘러보고 둘러볼수록 입맛이 다셔졌다. 그렇지만 어차피 여행의 목적이 식도락은 아니었다고 자기 위안하며 포장마차 반대편에 있는 바다로 점점 눈길을 돌렸다.


여수의 밤바다는 '빛'에서 나온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동해의 야경이 빚어내는 웅장함이나 집어삼킬 것 같은 짙은 색의 물이 중심이 아니었다. 멀리 이순신대교와 돌산대교 등 무슨 무슨 대교 하는 것들이 빛을 튕겨내는 그야말로 '야경'이었다. 바다와 함께 풍화된 그들 대교는 서울의 방화대교니 동호대교니 하는 것들과는 다른 구석이 많았다.


연인이면 꼭 가야 한다고 관광 안내 책자에 적혀있는 하멜 등대가 꽤 멋있었다. 그 옆에서 낚시하며 고기를 낚는지 시간을 낚는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집이나 숙소에 들어가기 싫어서 객기를 부리는 것인지 모르는 낚시꾼들도 눈에 들어왔다. 중요한 건 그저 낚시꾼들이 보였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무언가를 건져 올리는 걸 30분 내내 관찰하면서 단 한 번도 못 봤다. 어쨌든 어디서나 세월을 낚는 사람들은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여수의 밤바다는 '버스커 버스커'가 부른 노래 가사보다는 훨씬 다양한 풍경으로 존재했다. 혼자만의 사색이나 연인과의 교감도 좋지만 바다 그 자체에서 올라오는 특유의 바다내음과 짠내음 등을 느끼기에 혼자는 더욱 좋았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동해나 서해바다를 밤에 갔을 때 느낄 수 있는 바다 특유의 공기가 여수에선 더 강했다.


바다를 따라 어느 곳을 걸어도 내가 바다의 사정권 앞에 있는 느낌이었다. 저 먼 바다에서부터 오는 바다향이 내 온몸을 감쌌다. 이런 바다향은 더운 날씨와 더불어 며칠째 입다가 그대로 여수까지 입고 온 티셔츠의 체취와 뒤섞였다. 나는 그때 '내가 이 대로 배만 타면 적어도 1년 차 정도 뱃사람의 체취 정도는 풍길 수 있다'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나는 1년 차 정도의 뱃사람 체취를 잔뜩 머금고 바다 근처 카페 2층에 올라갔다. 그리곤 그 집에서 만든다는 수제 맥주와 땅콩을 벗 삼아 수첩에 '그렇게 아지트를 세워간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 글은 나중에 서울에 올라와 타이핑해서 이곳 브런치에도 올렸다.


<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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