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노숙 여행②)태풍과 함께 세나도 광장 독사진

by 반동희

나를 깨운 건 호텔 직원이었다. 로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직원이 와서 현지어로 말을 걸었다. 대충 눈치를 보니 여기서 잠자면 안 된다는 말 같았다. 알았다고 손을 들어 보이곤 시계를 봤다. 아침 7시였다. 40분 정도 졸았으니 적당히 머리는 한 박자 휴식을 취해 맑아진 후였다.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마카오 전역을 둘러보자고 다짐하고 발걸음을 뗐다.


호텔 로비에서 나오니 공항에서 나왔던 때처럼 또 "흡"하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습한 공기가 목구멍을 지나 폐 한구석에 다시 들러붙었다. 공기를 기준으로 전혀 다른 두 개의 시공간이 공존하는 마카오의 실내와 실외에 재차 놀랐다. 그런데 진짜 놀란 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었다.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돌아다녔다. 택시와 버스가 와이퍼를 연신 돌리며 운행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 마카오 일정인데 비가 온다는 사실에 우울했다. 30분을 하늘만 관찰했는데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다시 실내로 들어와 온갖 문 닫은 실내 상점 거리를 쏘다니며 이 호텔 저 호텔을 옮겨 다녔다. 그러면서 이 사태를 어떻게 돌파할지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다가 프랑스 파리 에펠탑을 중심으로 한 '파리지앵' 호텔에서 우중충한 기념사진을 찍은 뒤 이대론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비에 굴복해 새벽녘처럼 실내만 돌아다니느니 비를 맞더라도 계획했던 동선을 실행하자고 결단 내렸다.


이 결단에 따르면 내 첫 목적지는 지금 있는 타이파섬에서 택시를 타고 다리를 건너 또 다른 섬인 마카오 반도로 들어가야 했다. 그래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마카오 관광 1번지라고 불리는 세나도 광장을 보고 그 근거리에 있는 모든 볼거리를 만끽할 수 있었다.


세나도 광장은 포르투갈 식민 역사가 만들어낸 이국적인 풍광이 시작되는 관광 첫 출발지다. 주변은 옛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돼 '중국 속의 작은 유럽'으로 통하는 곳이다. 이곳에만 도착하면 나머지 장소들은 걸어서 전부 훑어볼 수 있다고 나는 계산했다. 나는 그곳에서 점심까지 해결한 뒤 다시 공항이 있는 타이파섬으로 오후에 돌아와 귀국 때까지 나머지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 한 동선에서도 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물론 내 이런 사고 과정이 이뤄지는 동안에도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거세졌다는 게 유일한 불안 요소였다.


호텔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택시기사에게 아무리 세나도 광장을 가자고 영어로 말해도 알아듣질 못했다. 마카오가 생각보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곳이라는 건 이미 새벽 거리를 활보하며 인지한 터였다. 결국 가이드북 지도를 펴서 세나도 광장 지점을 가리키며 이곳이라고 알려주자 택시기사는 알아들을 수 없는 현지어를 랩 수준으로 다다다다 내뱉었다. 내게 들리는 단어는 "따이뽀" 하나였다. 나는 '그래, 여기 지금 있는 곳이 타이파섬'이라고 생각하며 이 아저씨가 지금 타이파섬을 설명하는 것이라고만 이해했다. 그런데도 택시기사는 움직일 줄 몰랐다. 심지어 뒷좌석에 탄 나보고 내리라는 손짓까지 했다. 나는 한국말로 "뭐 이따위 승차거부도 다 있느냐"라고 혼자 투덜대면서 홍대 클럽에서 새벽에 나와 온갖 택시기사들에게 차이던 젊은 날을 떠올렸다.


그렇게 택시에서 내쫓기는데 영어를 할 줄 아는 호텔 직원이 다가왔다. 그리곤 내게 말을 걸었는데 주의 깊게 들어보니 "타이푼"이라는 단어가 들렸다. 타이푼? 태풍? 태풍이라고? 새싹에 불과했던 불안 요소가 어느새 빗방울을 먹고 자라 큰 나무로 우뚝 서 있는 분위기였다. 재빨리 와이파이가 터지는 호텔로 들어가 검색창에 '마카오 태풍'이라고 쳤다. 홍콩과 마카오 일대에 태풍이 왔다는 뉴스가 속보로 떴다.


호텔 로비에서 졸다가 막 깨어났을 때처럼 멍했다. 첫날이자 마지막이자 지금 막 시작한 마카오 관광이 태풍에 휩쓸려 저 쓰레기통에 던져지는 기분이었다. 어디선가 덩치 아저씨 둘이 아이패드를 한 손에 들고 나를 향해 낄낄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아저씨들은 태풍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낮인지 밤인지도 모른 채 카지노에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겠지?


멍청히 있던 순간을 깬 건 내면의 목소리였다. "야, 여기까지 와서 세나도 광장도 한 번 못 가보면 넌 아이패드 아저씨들보다도 못한 바보 관광객이 되는 거야. 그럴 거면 차라리 겁쟁이처럼 실내로 들어가서 카드게임이라도 하든가? 뭐니 이게 지금."


저 가슴 한구석에서 알 수 없는 실체가 자존심을 건드렸다. 태풍이고 뭐고 일단 차가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은 되니 세나도 광장에 가고 말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태어나서 처음 내 손으로 산 셀카봉으로 인증샷도 찍겠노라고 승부욕을 잘게 뭉쳐 다지고 또 다졌다.


그런데 문제는 호텔 앞에 늘어선 택시 운전기사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하나 같이 전부 그곳에 안 가려고 했다. 이제는 내 귀에 잘 들리는 '타이푼, 타이푼'만 연신 외치면서 손으로 잇달아 엑스를 그렸다.


그래도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제일 어려 보이는 운전기사를 꼬셨다. 내일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데 세나도 광장을 꼭 가봐야 한다고 그게 소원이라고 했다. 기사가 홍콩달러 500에 오케이 했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이는 우리나라 돈 7만 200원꼴이었다.


택시에 타고선 일단 출발을 기다렸다. 그리곤 5분 정도 지나 호텔과 다른 택시기사 무리가 저 뒤로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사실 돈이 없어서 노숙했다고 토로했다. 제발 깎아달라고 나는 돈이 없다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끝내 홍콩달러 300까지 택시비를 깎았다. 닷새간 일부러 하지 않은 면도가 빛을 발했다. 우리 돈 4만 3000원 수준이지만 이미 모든 일정이 어그러질 분위기에서 세나도 광장 하나만은 꼭 챙겨보고 오겠다는 배짱이 그걸 상쇄하고도 남았다.


문제는 빗줄기가 계속 굵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람도 "우우우우"하고 소리를 내며 광풍을 일으켰다. 마치 자연이 우는 것 같았다. 그 울음소리와 더불어 내가 건너는 다리 옆 강인지 호수인지 모를 물들이 육지로 넘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택시기사는 계속 "와우, 와우"를 연발하며 고개를 저었다. 내게 영어로 "너 굉장히 싸게 가는 거야 지금"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불리한 건 못 알아듣는 척하며 넘겨버렸다.


그렇게 세나도 광장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차마 택시에서 내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창문 옆으로 가이드북에서 본 세나도 광장이 휑하게 보였지만 이제는 강력한 비바람이 된 자연의 성난 기세가 무서웠다. 그러나 돌이키기엔 이미 내지른 게 많았으며 돌아갈 왕복 택시비도 수중에 없었다. 홍콩달러 300을 놓고 내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으며 너무도 어이없이 이 날씨에 여길 오는 사람이 있느냐는 표정으로 택시기사가 나를 계속 쳐다봤다.


택시 문을 열자마자 나는 스프링처럼 세나도 광장으로 튀어나갔다. 일단 빗줄기가 내 움직임을 본능적으로 그렇게 이끌었다. 그렇게 마주한 세나도 광장에서 나 혼자 저 옛날 마카오를 점령한 포르투갈 군인처럼 사진을 찍었다. 평소 사람 바글바글한 곳에서 구글링으론 절대 찾을 수 없는 세나도 광장 독사진을 찍었으니 이제 됐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로맨스는 잠시였고 현실은 영원했다. 나는 속옷까지 홀딱 젖었으며 양말도 신지 않은 채로 발을 넣었던 운동화는 점점 물기를 머금어 군대 시절 군화처럼 무거워졌다. 그렇게 찰나의 순간을 보내고 1시간 넘게 세나도 광장 인근에 갇혔다. 쓰레기통이 나뒹굴고 나뭇가지들이 부러졌다. 머리 위에 있는 환전소 간판이 흔들렸다. 안전한 시내 쪽으로 가겠다고 달리면 폭풍이 뒤에서 나를 밀었다. 옆에서 나랑 같이 달리던 아저씨는 앞으로 꼬꾸라졌다. 택시도 버스도 거리엔 없었다. 진짜 아주 조금 무서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포감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달리고 달렸다. 4차선 도로 한가운데로 달렸다. 도보로 뛰면 머리 위에서 간판이 떨어져 수박 쪼개듯 내 머리를 반 토막 낼 것 같았다. 나무가 쓰러지면서 내 등 뒤를 가지로 찌르는 상상도 했다. 극한 상황에서의 공포는 정비례를 곧추세우는 상상들과 점점 자극적으로 변모하는 걱정들을 먹고 자랐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다가 겨우 허름한 호텔로 겨우 피신했다.


문제는 귀국이었다. 이미 점심을 한참 지난 시간인데 이대로는 저 다리를 건너 마카오 국제공항이 있는 '타이파섬'으로 돌아가지 못할 게 분명했다. 와이파이를 연결하니 이미 항공사에서 내일 새벽 1시 30분에 뜨기로 했던 귀국 비행기가 기상 악화 때문에 3시로 밀렸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러던 중 때마침 호텔 내 전기가 다 나가버렸다. 정전이었다. 로비 직원들은 촛불을 켰다. 나는 "캔 유 스픽 잉글리시?"만 연신 외친 채 상황 파악에 애를 썼다. 그러나 주변엔 영어와 담을 쌓고 산 사람들뿐이었다. 나도 담장 하나 정도는 치고 살았지만 이들은 아예 이 세상에 영어란 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온 게 분명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중화사상인가. 공포감은 별의별 걱정으로까지 번졌다.


나는 대사관에 연락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겨우 알 수 있었다. 이대로는 여기서 굶어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속옷까지 홀딱 젖은 몸은 축축함 속에서 곪아가는 기분이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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