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노숙 여행③)아비규환 탈출기, 고마워요 마가렛

by 반동희

어둠 속 기아 체험이 계속됐다. 그러다 아주 잠시 태풍이 소강상태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호텔 문이 열렸다. 정확히 말하면 호텔 직원들이 딴청을 피울 때 내가 탈출한 거다.


그전까지 호텔 측은 사람들이 문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나는 마치 교도소 복역을 마치고 나온 재소자처럼 밖으로 뛰어나가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점을 찾아 거리를 활보했다. 곳곳에 꼬꾸라진 오토바이와 쓰러진 트럭과 부러진 나뭇가지와 떨어진 간판들이 즐비했다. 지구 멸망 2초 전을 보는 것 같았다.


음식을 찾기 위한 사투는 지금부터였다. 4시간을 그렇게 거리를 활보해도 영업하고 있는 음식점 하나 찾지 못했다. 심지어 저쪽 공항이 있는 타이파섬으로 가는 모든 교통편과 다리마저 전부 통제됐다는 걸 호텔 직원한테서 확인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그나마 커 보이는 호텔로 가서 얌전히 앉아 있는 것뿐이었다. 조용히 앉아 힘을 비축하며 배고픔과 싸우는 것이 최선이었다. 자칫 상황이 길어지면 귀국은 둘째치고 하루 이틀 더 숙소도 없이 마카오 반도에서 노숙해야 할 처지였다.


점심과 저녁에 먹겠다고 계획했던 에그타르트와 면 요리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저 먼 곳으로 간 지 오래였다. 빵 한 조각이라도 입에 넣고 싶었다.


저녁 8시가 다 되자 반대편 거리에 보이던 맥도널드 앞으로 인파가 몰렸다. 알고 봤더니 이제야 영업이 시작된 거였다. 나도 얼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뛰었다. 머리가 아닌 굶주린 몸이 먼저 그렇게 시켰다. 그리곤 겨우 줄을 섰다. 굶주린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지쳐 보였다. 내 차례가 되자 웬 중국 사람이 와서 나한테 돈을 건네며 메뉴판을 가리켰는데 나는 매우 단호하게 "라인업"이라고 외치며 한국말로 욕을 덧붙였다. 이 상황에서 새치기라니 정말 약간의 힘만 있었어도 복부에 레프트 훅을 꽂았을 거다. 극한 배고픔과 공포는 사람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나는 그가 불만을 드러내면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로 그 중국인을 노려봤다.


빅맥을 하나 막 다 먹었을 때 시계는 저녁 9시를 가리켰다. 다음날 새벽 3시 비행기는 다행히 출발이 확실했다. 이제 내게 남은 미션은 저 반대편 섬으로 어떻게든 건너가서 공항에서 쉬다가 귀국 비행기를 타는 것이었다. 빗줄기는 많이 얇아졌으며 강풍과 온갖 것들이 쓰러진 거리만이 여전히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아무리 이 호텔 저 호텔을 다니면서 공항 쪽으로 가는 호텔 버스를 운행하느냐고 물어도 그들은 답이 없었다. 일단 영어가 통하는 사람을 찾는 게 문제였고 겨우 찾아서 몇 마디 나누면 돌아오는 대답은 "타이푼"이었다. 태풍 때문에 도시 내 모든 게 정지됐다는 뜻이었다. 단언하는데 내가 마카오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은 "캔 유 스픽 잉글리시?"였고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망할 "타이푼"이었다.


그 많은 인파 중 한국 사람은 한 명도 안 보였다. 나중에 곱씹어보니 이 태풍에 세나도 광장 하나 보겠다고 섬을 건넌 내가 겁 없고 한심한 거였다. 안 그래도 내가 탄 택시가 그 다리를 건널 때 내 등 뒤로 차는 한 대도 없었다. 나는 말 그대로 '문 닫고' 섬에 들어온 거였다.


호텔 직원들도 내가 계속해서 교통이 언제 재개되느냐고 묻자 나중엔 건성으로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택시를 어떻게 겨우 잡아서 제발 저 다리를 건너 공항 쪽 '타이파섬'으로 가달라고 했지만 어떤 택시기사는 홍콩 달러 500을 요구했다. 어쩌면 이렇게 택시기사들의 '시가(싯가?)'는 정확할까. 또 다른 어떤 택시기사는 또 망할 "타이푼"을 외치며 갈 수 없다고 딱 잘랐다. 결국 홍콩 달러 500을 달라는 택시를 탔다면 가다가 다리 앞에서 "어라? 막혔네?" 하면서 여기까지 온 돈이나 내라고 나를 몰아세웠을 거였다. 마치 내가 세나도 광장에 가면서 홍콩달러 500에 합의했다가 300으로 깎은 것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망망대해에 혼자 떨어진 기분이었다. 주변에 들리는 마카오 현지어가 더 시끄럽게 신경을 자극했으며 잠을 자지 못한 여파로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러던 순간 내 예민했던 감각이 실마리를 발견했다. 저 멀리 공항 쪽 섬으로 가는 다리 위로 차가 움직이는 게 포착된 거다. 나는 얼른 다시 호텔로 뛰어들어가 몇 번이고 묻고 또 물었던 직원에게 지금 저 위로 차가 지나간다고 말했다. 이게 교통 통제가 풀린 것 아니면 뭐겠냐고 제발 똑바로 한 번 알아봐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직원이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니 "택시 불러줄까?"라고 태연히 말했다. 다만 지금 택시를 불러도 1시간은 걸릴 거라며 내 번호를 남겨두면 전화를 주겠으니 저쪽으로 가서 대기하라고 빈 의자를 가리켰다. 나는 그렇게 번호를 남겼지만 도무지 이들을 믿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들은 내가 한국에 올 때까지도 전화를 주지 않았다. 지금도 열심히 택시를 예약하고 있는 거라고 믿는다.


결론적으로 나는 어여쁜 젊은 여자의 업무용 고급 밴을 타고 섬에서 탈출했다. 길거리로 나가 빌어먹을 "캔 유 스픽 잉글리쉬?"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신 남발했다. 그러다가 어느 높디높은 건물에서 나오는 젊은 여자에게도 똑같이 말을 걸었는데 그녀는 다행히 매우 유창한 영어로 내 지금의 행색과 어디서 왔느냐 등을 되물었다. 오히려 얕은 영어를 쓰는 내가 알아듣지 못했으니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실 이 젊은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또 마카오 현지 직원에게 속아 마카오 공항 쪽 섬이 아닌 저 반대편 중국 국경으로 가는 버스 대기 줄에서 30분을 허비했다. 도무지 저쪽으로 가는 버스면 섬으로 가는 게 아니라고 생각돼 도박하는 심정으로 줄에서 이탈해 다른 직원에게 묻자 그 직원은 "너 여기 왜 서 있어? 여기 중국 국경 구경하러 가는 버스 타는 줄이야. 너 한국 간다며?"라고 오히려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또 당했구나, 생각하며 나는 다시 거리를 헤매다 이런 구세주를 만난 거다.


이 구세주는 내게 럭키가이라며 웃어 보였다.


"난 내 손님 항공권에 문제가 생겨서 마카오 공항에 가야 해. 너 진짜 운 좋다. 나 지금 우리 회사에서 운영하는 업무용 밴 불렀거든? 그거 타고 나랑 공항 가면 될 거야. 한국에서 왔다고? 나도 예전에 부산이랑 서울 가봤는데. 넌 어디 사니? 서울? 아이고 별로네. 나는 부산이 더 좋더라. 그나저나 공항 가기 전에 내 다른 손님들 카지노에서 태운 뒤 또 다른 카지노에 좀 내려줘야 해. 그것만 나랑 같이하고 공항까지 가자. 데려다줄게. 다시 말하지만 넌 진짜 럭키 가이야. 타이푼 때문에 온 도시가 마비라고 지금."


하늘에서 동아줄을 들고 내려온 이 여자는 내게 이런 말들을 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MBA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마케팅을 경영했고 현재는 호텔 VIP를 대상으로 관련 업무를 하는 마카오 엘리트였다. 금융 지식이 부족해 얼마 뒤에는 홍콩에서 공부할 거라고 하기도 했다.


영어 이름은 '마가렛'이었는데 현지 이름은 '호호메이'라서 어감상 자기는 마가렛으로 불리는 게 좋다고 했다. 얼굴도 예뻐서 인기가 많을 것 같다는 말을 하려다가 지금 내 주제에 그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닌 것 같아서 접었다.


마가렛이 중간에 남자 손님들을 잔뜩 밴에 태우는 순간 이러다 어디 납치되는 건 아닌지 잠시 의심했던 적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가렛이 날 태울 이유가 없었으므로 사실 불안했다. 특히 그들 너덧 명이 현지어로 시끌벅적 떠들 때 나는 저들이 "야, 쟤 콩팥은? 간은? 타이파 섬은 무슨 내가 아는 곳으로 가자" 등등을 얘기하는 건 아닐까 속으로 생각하며 다시 공포를 스스로 키우고 또 키웠다. 그때 내 불안감이 느껴졌는지 마가렛은 내게 "너 지금 불안하지?"라고 물었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렇지만 내가 느끼기에도 내 목소리는 이미 가야금 줄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진짜 냉정히 생각해 보면 그녀가 나처럼 한눈에 보기에도 속옷까지 다 젖은 게 분명하고 머리카락은 어디 마대 걸레처럼 아무렇게나 젖어서 찰랑거리며 수염은 아무렇게나 자란 채로 피죽도 못 먹은 것처럼 축 처진 사람을 태울 이유는 없었다. 그냥 진짜 '행운'이라고 밖엔 생각이 안 될 상황이었다.


카지노에 찌든 사내들을 여기저기 호텔에 내려주고 마침내 마카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마가렛은 공항 문이 열리자마자 쿨하게 "오케이, 굿바이!"라고 말했다. 나는 스타벅스 캔커피가 생각나 그걸 하나 사주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괜찮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그녀가 뒤돌아서서 다시 밴에 오를 때 등 뒤로 나는 분명 밝게 빛나는 아우라를 목격했다. 그 순간 내게 그녀는 자신의 멋진 업무용 밴으로 생명의 다리를 건너게 해 준 오 나의 주님이었다.


그렇게 나의 태풍과 함께한 마카오 탈출기는 막을 내렸다. 여행은 이미 탈출기가 된 지 오래였다. 온갖 긴장이 풀어진 몸은 천근만근이 됐으며 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내내 30분 이상 눈을 뜨고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나마 아이패드 덩치 아저씨들을 다시 만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집에 도착해 샤워한 뒤 나는 정확히 아침 8시 30분부터 다음 날 저녁 7시 20분까지 잤다. 중간에 저녁 8시 뉴스를 1시간 정도 봤으니 얼마나 잤는지는 독자의 계산으로 남기겠다.


여전히 안 해도 될 경험을 한 것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고 있다. 내게 마카오 여행의 의미는 도대체 뭘까 자문해도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휴식도 아니었고 체험도 아니었으며 식도락이나 볼거리 충족 등의 즐거움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다만 확실한 건 혼자 세나도 광장을 빌린 것처럼 찍은 독사진 인증샷이 내 휴대폰에 존재한다는 거다. 아마도 마카오 여행의 의미는 먼 훗날 시간이 흐른 뒤에 정의될 것으로 보인다.


만 하루가 지나 정신을 차린 뒤 마카오 태풍 뉴스를 검색해 사실을 끌어모았다. 그중 절로 쓴웃음이 난 한 신문 기사의 팩트는 다음과 같다.


'마카오 행정장관 태풍 피해 입은 주민들에게 사과. 기상청장 해임. 이번 태풍 53년 내 최악. 최소 8명 사망 확인. 200명 이상 중상. 도시 전체 정전.'


나는 53년 만의 마카오가 내놓은 또 다른 광경을 보고 왔다.


(시리즈 끝)


<시리즈 함께 보기>

(마카오 노숙 여행①)낮보다 밝은 마카오 밤안개

https://brunch.co.kr/@komsy1201/216


<시리즈 함께 보기>

(마카오 노숙 여행②)태풍과 함께 세나도 광장 독사진

https://brunch.co.kr/@komsy12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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