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은 어떻게 눈을 지배하는가

by 반동희

의식은 눈을 지배한다. 우리는 보이는 게 아니라 인지하는 것을 본다. 쉽게 말하면 뇌가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을 보는 셈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해석이다. 모든 실재하는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모든 실재하는 것 중 인지 가능한 것들을 우리는 인식한다. 그게 인간의 한계이자 무한한 가능성이다.


라디오에 처음 나갔을 때가 생생하다. 평소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진행 속에 일주일에 한 번씩 출연자로 나섰는데 모든 게 너무 낯설었다. 나중에 5주 차쯤 들어섰을 때 겨우 라디오 부스 안에 있는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큰 시계가 다섯 번의 라디오 출연 동안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눈 뜬 장님이 따로 없었다. 결과적으로 늘 거기 있는 커다란 시계 하나 인지하지 못한 거다. 라디오 출연이 처음인 내 뇌는 그걸 인식할 여유가 없었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때의 느낌도 같다. 똑같은 책을 2년 전의 내가 읽은 것과 지금의 내가 읽은 것은 받아들이는 관점과 수준에서부터 차이가 크다. 유치원 때 읽었던 '흥부와 놀부'를 직장인이 되어 읽어도 감정 변화가 없다면 그 사람은 둘 중 하나다. 여전히 티 없이 맑거나 생각이 없거나다.


전에 봤던 영화에서 읽어내지 못했던 메시지를 다시 보며 확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 체험과 경험이 그만큼의 시야 확장을 가져왔거나 관점 변화를 끌어온 거다. 이는 긍정일 수도 있고 부정일 수도 있는데 적어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살았다면 긍정에 가깝다고 확신한다.


비슷한 면에서 '프레임 이론'이란 게 있다. 심리학에서 유명하고 꽤 무게감 있는 이론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알고 있다. 이 프레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모든 사물과 말과 행동에 영향을 받는다. 심지어 무의식 중에 그러한 영향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 눈보다는 뇌가 더 치밀하며 그 안에서도 의식보다는 무의식이 우리를 더 많이 지배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문득 특정 사람을 떠올리면 특정 냄새와 말투와 몸짓과 음악이 떠오를 때가 있다. 프레임 때문이다. 문학적 언어로 풀어보자면 모두 그 사람이 가진 '향수'다. 우리가 몸에 뿌리는 향수가 생각보다 오래가고 강한 것처럼 특정 사람이 나와 주변인에 뿌리는 이러한 무형의 향수도 오래 남는다.


향기를 날리는 건 시간이다. 사람이 남긴 향기를 지우는 것도 시간이다. 이걸 인위적으로 다른 것으로 덮으려 하다가는 이도 저도 되지 않는다는 게 내가 얻어온 결론이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프레임 이론에 따라 이미 모든 것에서 큰 영향을 받아 의식과 무의식이 정교하게 특정인에 대한 회로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거기에 적응한 의식은 어찌해 볼 수 있어도 무의식까지 의지로 지워내긴 불가능하다.


의식과 프레임만 고려하면 다시 태어난다는 건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프레임을 바꾸고 그 부산물로 따라온 사람 향기들을 지우는 일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나는 가끔 집 청소를 하면서 내 의식과 무의식도 다시 정돈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