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 서울을 가로지르며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정말로 대한민국이 좋다. 위기마다 내뿜었던 대한민국 국민의 잠재력이 결국 나라다운 나라와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어낼 것이다.
나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인정해야 한다고 믿는 자유주의자다. 합리적인 개인주의자일 수도 있고 이념보단 항상 인간이 앞서야 한다고 보는 인본주의자일 수도 있다.
흔히 이런 부류의 사람과 애국심은 연결되지 않는 단어로 보는 시선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개인의 끈끈한 연대로 국가가 돌아가며 행복추구권을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국가라면 그러한 국가엔 애국심을 가질 수 있다.
그 때문에 애국과 꼰대는 시작부터 다른 단어다. '내셔널리즘'이나 '보수'와도 전혀 다른 노선이다. '왜 애국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나와 주변인이 발전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며 어떤 종류의 차별도 막기 위한 국가의 시스템을 위해서'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건 양보할 수 없는 최대가치가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대한민국은 여전히 고칠 점이 많다. 우선 나라의 지향점인 민주주의 가치가 세부적으론 헐거운 부분도 있다. 뿌리 깊게 박힌 유교 사상이 희미해지곤 있지만 여전히 개인을 억압하는 경우도 심심하면 발생한다.
빈부 격차가 미국 못지않게 일상적인 게 대한민국이다. 그러한 격차를 잡지 못하고 있는 허점투성이의 교육 시스템 속에서 자란 세대가 부모의 부를 세습받거나 빈곤을 대물림받고 있는 나라이기도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 시간과 머리 위에 이고 사는 북한 문제는 굳이 말할 것도 없다.
성소수자 차별, 성차별, 이주민 차별, 다문화 차별 등등 여러 종류의 차별 문제도 있다. 그만큼 하루라도 큰 뉴스거리가 없는 날이 없을 정도의 '다이내믹 코리아'가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땅이 좋고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떠올리면 긍정이 먼저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좋은 게 아니라 과거의 역량으로 유추했을 때 상상 가능한 앞으로의 대한민국이 좋은 거다.
아직은 내게 자식이 없고 이후에도 있을지 없을지 그건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나는 미래 세대에게 만들어주고 싶은 대한민국이 있다. 조금은 더 행복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합리적인 연대가 가능한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늘 이런 마음을 품고 있는데 향후 어떤 식으로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또 고민할 게 분명하다.
넓은 백사장에서 조개껍데기 하나 정도의 역할은 할 수 없을까. 지금도 고민 중이다. 그게 글을 쓰거나 비평하는 것이면 그렇게 할 것이다. 어떠한 특정 사회 활동을 해야 한다고 결론 내리면 또 그렇게 할 것이다.
그게 어느 정도의 힘을 지녀 얼마나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는 사실 다음 문제다. 중요한 건 올바른 방향이며 지속 가능한 역할인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단상들을 2017년 추석 연휴 나흘째인 아침 올림픽 도로를 달리면서 곱씹었다.
왜 하필 내가 이런 생각을 지금 앉아 글로 쓰는지 사실 모르겠다. 아마도 아주 작게라도 사회에 유의미한 발전에 기여하며 그게 손톱만 한 것이라도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단 바람 때문일 테다.
모든 행위는 어떤 프레임을 갖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같은 환경미화원 중에서도 단순히 월급을 받기 위해 청소를 하는 사람과 '나는 지금 지구의 한 부분을 청소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일을 하는 사람의 행동은 다를 수밖에 없다.
내 분야에서 말하자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는 것과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군가는 내 글을 읽고 더 발전적인 사고를 하게 되길 바란다'고 생각하며 글을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접근이다. 물론 아직은 이 정도 생각만 하고 살아도 무척 만족하는 수준이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이후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까지 대한민국은 버려진 땅에 가까웠다. 기아와 고통이 만연했다. 거리엔 시체가 가득했고 폭음과 굉음은 땅덩어리 전체를 뒤덮고도 남았다.
어린아이들은 미군이 던져주는 '쪼꼬렛'에 따라 이리저리 우르르 몰려다니며 그걸 받아먹었다. 소설가 김훈에 따르면 그걸 몸을 날려 잘 받아먹는 아이가 당시엔 으뜸이었다.
그건 자존심과 창피함에 앞서 배고픔이 몸을 먼저 움직이게 만드는 현실적인 문제였다. 당시 대다수 대한민국 인구엔 배고픔이 싸워야 할 대상이자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였다.
휴전 이후 대한민국은 독재 정권을 거치면서 민주주의의 목마름을 경험했다. 끝내 그 민주주의를 이룩한 건 국민이었다. 그러면서 미친 듯이 기계처럼 일한 이름도 모를 수많은 노동자의 힘으로 대한민국은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사'는 외화를 벌어 그 경제발전의 한줄기를 담당했다.
대한민국이 독재 정권에 의해 '도구화된 국민의 시대'에서 '민주주의 탄생 국민'을 거쳐 '지구촌 시민의 시대'로 발전하는 동안 나라를 지탱한 건 결국 익명의 민중이었다.
여전히 독립 직후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는 푸념도 듣고 있지만 지금이라도 하나씩 정리하는 가운데 세대가 흐르며 그들은 자연스레 도태되거나 생명을 다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더는 말할 필요도 없는 사례가 있다. 지난겨울 광장의 촛불들은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과거와 장밋빛 미래가 시공간의 수직선 위에서 '도킹'한 장면이었다. 그때의 마음가짐과 그때의 주권의식만 사회 곳곳으로 확대되어 뿌리내리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긍정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러한 가치를 토대로 나아가 더욱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동시에 그들의 연대를 강조하는 사회다. 우주에서 보면 지구조차 하나의 먼지에 불과하지만 개인에겐 개인이 바라보는 주변이 곧 우주며 '나'라는 존재가 곧 세상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이러한 가치를 공고히 다질 수 있는 또 한 번의 도약을 할 것이라고 본다. 지금은 혼란스럽고 탁한 소식이 세상을 뒤덮고 있어도 하나의 과도기가 될 것이라고 오늘도 믿는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도 있듯이 큰 대한민국의 그림은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일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면 더는 익명의 희생이 있어선 안 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