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노숙 여행①)낮보다 밝은 마카오 밤안개

by 반동희

'설마 저 아저씨들 옆이 내 자리인가.'


막 비행기에 올라 비상구 좌석에 갔다. 내 앞엔 덩치 큰 아저씨 둘이 사이좋게 떠들며 앉아 있었다. 한 아저씨는 머리가 벗어졌는데 비교적 동안이었다. 다른 아저씨는 수염을 덕지덕지 기른 채로 연신 아이패드를 만지작거렸다. 아이패드 안에선 클로버, 다이아몬드, 하트 무늬 카드가 현란하게 움직였다. 그제야 나는 내가 마카오행 비행기에 올라탔다는 걸 실감했다.


누군가에게 마카오는 아시아와 유럽 문화가 섞인 볼거리 천국일 것이다. 누군가에겐 홍콩 가는 페리가 있으며 에그타르트와 딤섬 같은 먹거리 가득한 아름다운 섬일 수도 있다. 반면 누군가에게 마카오는 카지노 천국이자 한 방의 쾌감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일 테다. 아마도 이 아저씨 둘은 마지막 부류에 가까울 것이라고 나는 그들이 쳐다보고 있는 아이패드 카드에서 유추했다.


한편으론 항공사 직원에게 비상구 자리를 달라고 한 걸 후회했다. 나는 저가항공을 탈 때마다 비상구 자리를 달라고 의례적으로 요청해왔다. 앞 좌석과의 공간이 다른 좌석들보다 넓어 다리를 조금이라도 뻗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런 덩치 아저씨들과 함께라면 다리는 조금 편할지언정 어깨가 불편할 게 확실했다. 벌써 습기 가득한 마카오 현지 공기를 들이쉰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실례합니다. 잠시만 안으로 들어갈게요."


머리가 시원한 아저씨가 나를 쳐다봤다. 아이패드 아저씨는 그냥 계속 그 일을 프로처럼 했다. 그렇게 창가 자리에 들어가 앉은 순간 나는 이 아저씨들이 나를 체포해 구석으로 몰아넣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크 롤랜즈가 쓴 <철학자의 늑대>를 펼쳐서 읽기 시작했지만 솔직히 이 아저씨들의 아이패드 때문에 집중해서 읽지는 못했다. 그렇게 인천공항에서 마카오 국제공항으로 가는 밤 9시 40분 비행기가 이륙했다. 나는 비행 중간 승무원에게 펜을 빌려 억지로라도 책에 집중하려 밑줄을 긋는 등 독서를 위한 노력을 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독서등을 끄고 몸과 머리를 창가 쪽으로 기댄 뒤 눈을 감으면서 나는 비로소 덩치 아저씨들의 아이패드 불빛과 작별할 수 있었다.


착륙을 알리는 방송에 눈을 떴을 때 여전히 아이패드는 카드를 섞고 있었다. 덩치 아저씨 둘은 마치 처음 본 그 모습을 복사 붙여 넣기 한 것처럼 다정히 화면을 바라본 채 심각했다.


'당신네 여행도 목적 그대로 안녕하길.'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면서 채 절반도 읽지 못한 책을 가방 속에 넣었다. 이제부터는 내 앞에 펼쳐진 마카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약간의 설렘과 쪽잠을 연료 삼아 덩치 아저씨 둘을 제치고 비상구 자리에서 가장 먼저 몸을 움직였다.


3시간여를 하늘에서 보낸 후였다. 하지만 1시간을 자면서 벌었다. 마카오는 한국보다 1시간 느렸다. 애초 숙소를 잡지 않고 출발한 여행이었다. 현지 시각으로 새벽 1시쯤 도착한 나는 이제부터 졸음에 굴복하는 순간 여행은 끝이라는 비장한 다짐을 하고 또 했다.


마카오에 도착한 날 새벽 1시부터 꼬박 놀고 다음 날 새벽 1시 비행기로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말이 2박 3일 여행이지 실제론 무박 노숙에 24시간 만 하루를 마카오에서 보낸 뒤 곧장 귀국 비행기에 타면 됐다.


철저히 내가 결정한 거였다. 여행 계획 단계부터 숙소를 잡기에는 모호한 일정이라고 판단했다. 주머니 사정 얇은 내겐 최대한 아껴서 짧고 굵게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젊다고 자신했다. 그렇게 무박 노숙 마카오 여행이 닻을 올렸다. 동네 도서관에서 빌린 마카오 가이드북은 출발 전 인천공항 휴게실에 누워서 다 읽었다.


유네스코 문화재인 세나도 광장, 기아 요새, 상원의원, 세인트 폴 대성당, 몬테 요새, 성 아고스띠노 광장, 각종 호텔과 카지노, 에그타르트, 딤섬, 면 요리 등등 온갖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머릿속에서 파노라마를 그렸다.


마카오는 서울 면적의 1/25에 불과하다고 가이드북은 설명했다. 걸어서도 하루면 충분하다는 걸 책에서 배웠다. 나는 마카오에서 움직일 나의 동선을 몇 차례 시뮬레이션해봤다. 마카오를 내 주관에 따라 받아들이는 건 돈과 시간 모두에서 전혀 문제가 안 됐다.


새벽에 도착했으니 당연히 처음 할 일은 그렇게 멋지다는 마카오 야경을 확인하는 거였다. 그전에 커피나 에너지음료를 몸에 들이부어 내일 혹은 모레의 나를 소환해 그 에너지를 끌어다 쓰자고 결정했다.


공항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들이 여러 개 보였다. 그중 제일 왼쪽 문 앞에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있었다. 안에 들어가니 한국어로 각종 재료 표기가 된 스타벅스 캔커피가 나를 반겼다. 기쁜 마음에 성큼 집어 점원에게 홍콩달러로 계산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점원은 아무 말 없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비자카드로 계산하겠다고 했더니 카드 리더기가 없다고 잘랐다. 그럼 도대체 어째야 하냐고 되레 물었더니 마카오 돈만 된다고 했다. 시작부터 힘이 빠졌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짧은 영어로 따지든가 조용히 캔커피를 원래 있던 곳으로 가져다 놓는 거였다. 그런데 아무리 짧은 영어로 따져도 그 끝은 가져다 놓는 것일 게 분명했다. 점원의 인상은 전 세계 공통 근로자의 표정인 퇴근을 앞둔 직원의 얼굴 모습 그대로였다. 내 경험으론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 근로자 대다수는 고용주가 아니면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무적 상태였다.


선택지는 하나로 줄었다. 무박 노숙 여행이니 힘을 아끼는 측면에서 조용히 캔커피를 원상 복구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이는 내가 카지노에서 생수를 구걸하기 전까지 무려 4시간 넘게 아무것도 마시지 못한 악재의 시초였다.


그렇게 공항 문을 박차고 나온 순간 나는 4년 넘게 끊었던 담배를 입에 문 것처럼 동공이 커지는 걸 느꼈다. "흡"하는 쉰소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정도로 마카오의 습한 공기가 입을 타고 목구멍을 통과해 폐 저쪽 구석에 들쩍지근하게 달라붙었다. 예상보다 더 습한 마카오 밤공기의 급습에 놀랐다. 그래도 인간의 적응력은 위대하니 준비 운동만 잘하면 금방 익숙해질 것이라고 위로했다. 그 준비운동으로 나는 공항에서 저 멀리 보이는 화려한 조명의 호텔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비록 날이 어두워 무섭기도 했지만 어디서 들은 마카오의 안전한 치안을 믿고 마카오 첫발을 내디뎠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카오는 '마카오 반도'와 '타이파섬'으로 나뉘어 있다. 이 섬들 사이로 두 개의 다리가 지난다. 그리고 마카오 국제공항은 타이파섬에 있다. 이 타이파섬에는 요즘 막 짓는 호텔들이 즐비하다. 베네시안, 크라운, 시티 오브 드림즈, 코타이 센트럴, 쉐라톤, 콘래드 등 비교적 새로 생긴 호텔들이 화려한 조명을 자랑한다. 그러니까 내가 공항에서 내려 불빛들을 따라 불나방처럼 걸어간 곳은 이 호텔 거리였다.


공항에서 20분 가까이 걷다 보니 요즘 마카오에서 가장 인기라는 베네시안 호텔이 나왔다. 이 호텔을 시작으로 다른 호텔들까지 그 안팎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새벽이 다 갔다. 각 호텔마다 한국의 쇼핑몰처럼 다양한 볼거리와 쇼핑센터가 즐비했다. 카지노는 없는 호텔이 없었다. 심지어 호텔과 호텔들도 건물 실내 길로 이어져 있어 밖을 돌아다닐 일도 많지 않았다.


휘황찬란한 야경과 각 호텔의 카지노 덕분에 나의 마카오 첫새벽은 그 누구의 낮보다 밝았다. 가끔 심각하게 야한 옷차림을 한 여자가 다가와 "먀아샤아지이?"라고 했지만 그게 뭘 뜻하는지 알기에 텅 빈 내 양쪽 바지 주머니를 뒤집어 까서 보여주고는 내 길을 걸었다.


비록 캔커피 거절 이후 갈증과 함께 걷고 또 걸었지만 마카오의 황홀한 야경은 피곤함을 잊을 만했다. 몸은 조금 고됐지만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호수와 조명이 만들어내는 도시의 밑그림이 풍성했다. 절망적일 정도로 습한 실외와 천국과도 같은 쾌적한 실내의 대비가 마치 두 개의 전혀 다른 시공간을 오가는 것처럼 오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도대체 마카오는 이렇게 거대한 실내 냉방을 어떻게 가동할까? 그런 의문 속에서 여기저기 들어갔다 나왔다 신나게 움직였다. 비록 카지노 게임은 하지 않았지만 여러 기계 앞에도 앉아보면서 잠시 다리 휴식을 하기도 했다. 카지노 기계에 USB 케이블을 연결해 휴대폰 충전을 하기도 했다. 잠깐 카지노 주변을 둘러보는데 저기 어디서 아이패드 아저씨들의 칩 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새벽 5시가 됐을 때 나는 어느 호텔의 한 식당에 가서 딤섬과 그곳 직원이 추천해주는 망고가 들어간 국도 아니고 탕도 아닌 요리를 아침으로 먹었다. 점심은 세나도 광장에서 에그타르트를 먹고 저녁은 면 요리를 먹겠노라고 다짐했다. 거스름돈은 기필코 마카오 돈으로 받아 비행기 타기 전 늦은 밤에는 다시 공항 세븐일레븐에서 캔커피를 살 것이라고 승부욕을 발동하기도 했다. 그렇게 아무리 따져 봐도 항공권 외에는 쓸 돈 없이 알뜰살뜰한 여행이 완성될 거라고 상상하며 웃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이 정말 산산이 깨질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어느 호텔 로비에 소파에 앉아 잠시 졸며 단잠에 빠졌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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