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미용실에서 안정환의 어린 시절을 조명한 여성 잡지 기사를 읽었다. 외모와 다른 삶의 궤적을 보며 당시 스포츠키드였던 내게 롤모델은 그날부터 어느 시점까진 안정환이었다.
판자촌에서 빵이랑 우유를 얻어먹으며 막노동으로 알바까지 했던 그는 확고한 가치관을 실천했다. <아빠 어디가>에서 그가 자기 아들 뒷모습을 보며 울컥할 때 나는 잡지에서 읽었던 꼬마 안정환이 생각나 이건 예능이 아니라 다큐라고 생각했다.
결석을 밥 먹듯이 하던 시절에도 내 스포츠 저널리즘 과목 학점은 괜찮았는데 그 이유는 모두가 박태환과 김연아를 논했지만 나는 안정환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저히 안정환의 어머니 얘기만은 할 수가 없었다.
안정환이란 사람은 타고난 운동 신경과 화려한 외모가 아닌 자신의 스토리를 품고 사는 사람이다.
"지하철 5호선 목동역 공사할 때 그 지하에서 잡부로 일했던 기억이 나. 일당을 5만원 받았나."
"나도 좋은 학교에서 오라는 데가 있었는데 그렇게 혼자 가면 나머지 애들은 갈 데가 없어서 축구 다 관둬야 되거든. 같이 굶어가면서 불쌍하게 운동하던 놈들을 어떻게 매정하게 버리고 가냐. 결국 내가 열서너 명인가 데리고 서울공고 축구부를, 그것도 야간으로 들어갔지."
"축구 명문대 가고 싶지만 돈이 많이 들잖아. 아주대에서 학비랑 합숙비 다 공짜로 해준다길래 동기들 몇 명 데리고 갔지. 그때 아주대 김희태 감독님이 나를 오래 쫓아다니면서 지켜보셨는데 그분이 내 눈엔 진실돼 보이기도 했고."
"2005년에 프랑스 리그 FC메츠 갈 때 그랬지. 그때 다른 팀이랑도 협상이 많이 남아있었는데 구단주를 만나고 싶다니까 키 작은 할아버지가 8~9시간을 운전해서 엄청 멀리서 온 거야. 그래서 새벽에 만났는데 그분이 너무 진실돼 보이고 고마워서 그 자리에서 하겠습니다, 하고 계약해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