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고스트 라이터의 '소설론'

by 반동희

저기 저쪽 보이나요? 여자가 일행을 택시에 태워 보내는 데 "엄마, 내일 준비물 살 돈도"하고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가 다가오네요.


엄마였군요. 2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데 아이가 상당히 큽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은 되어 보여요. 일찍 결혼해서 첫아이를 빨리 낳은 것 같군요. 물론 외동아들일 수도 있고요.


쓰고 보니 외동아들일 확률이 높네요. 이 야심한 시간까지 저 아이보다 어린 자식들을 집에 두고 밖에 나와 있을 부모는 거의 없으니까요.


요약하자면 지금 저 태권도복의 남자 어린이는 젊은 엄마를 둔 외동아들이라는 건데 지켜보는 제 입장에선 매우 부러운 상황입니다.


아마도 아이가 커서 "엄마, 저 어학연수를 가고 싶어요"라고 한다면 엄마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도 빚을 내서라도 보내주겠죠.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자 장차 가장이 될 운명이라고 생각해서 말이죠.


아이는 제가 느꼈던 패배감도 느낄 필요가 없을 거예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영어 시험 50점 맞던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이 친구가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오더니 휴대폰으로 외국인 친구랑 유창하게 대화를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나중에는 심심풀이로 영어강사를 하면서 살고요.


뭐 그 친구가 완전 부잣집 아들이었으니 그런 그림을 생각 못 한 건 아니지만 배움의 기회마저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에서 한편으론 부러웠죠. 들어보니까 1년에 1억 정도를 썼다고 하더라고요.


나 자신한테 씁쓸하기도 했어요. 고아인 저는 그럴 여유가 없었죠. 매번 영어 시험 100점 맞았는데도 겨우 혼자 토익 점수 맞춰서 작은 회사에 취직할 수준이었으니까요. 적어도 제가 보고 있는 저 태권도 친구는 그런 일을 겪지는 않겠군요.


제가 너무 오지랖이 넓었나요? 뭐 어쨌든 재밌는 광경이니까 저도 나오는 대로 술술 얘기해봤습니다. 시원한 맥주나 한 모금 더 마셔야겠군요.


어라? 저것 보세요. 더 기묘한 장면이 들어오네요. 저 아이 엄마 옆에 있는 남자가 어려도 너무 어려 보입니다. 20대 초반밖에 안 되어 보이는군요.


오호라! 이거 지금 맥주 마시는 것보다 더 기묘한 풍경이 눈앞에 생긴 것 같아요. 나란히 셋이 걸어가는데 아이는 엄마 옆에 착 달라붙어 있네요. 보통 저 나이 때에 엄마랑 친하기 쉽지 않은데 말이죠. '아빠'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들리지 않은 거로 봐서는 일반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뭐 어쨌든 상상은 자유 아닌가요? 저는 젊은 엄마와 외동아들과 엄마의 애인이자 새 아빠가 되려는 젊은 청년 정도로 결론 내리고 이 맥주나 마저 마시겠습니다.


설령 제 추측이 틀렸다 하더라도 상관없어요. 나중에 진짜 제 이름으로 쓸 수 있는 소설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하니까요. 오늘도 상상의 그물망을 가득 채운 것 같아 뿌듯합니다.


마저 한 잔 들이켜고 나니 좀 시원하군요. 이렇게 편의점에 앉아 캔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당신처럼 오늘 여기서 만났지만 제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도 감사하고요.


실컷 떠들고 보니 제 소개가 늦었군요. 네, 저는 딱 50살 된 평범한 아저씨예요. 뭐 마음은 다들 청춘이시듯 저도 그러한데 남들한테 말할 때만큼은 대충 맞춰준답니다.


저는 요즘 이렇게 매일 밤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들이켜요. 사람 있는 곳을 싫어하기도 하고 괜히 비싼 돈 주고 술집 가서 맥주 마실 필요도 못 느껴요. 날씨도 초가을로 딱 좋을 때인데 선선한 곳에서 캔맥주 하나면 별의별 풍경을 볼 수 있는 걸요.


제가 사실 평생을 사람 관찰하는 일로 먹고살았거든요. 좁은 곳에도 오래 있었고 사람 사이의 일들로 얼마간을 살아왔죠.


하지만 최근에는 이 편의점에서 바라보는 길거리야말로 진짜 사람 관찰을 할 수 있는 교실이란 걸 깨달았죠. 역시 인생은 50대 지천명부터라니까요.


오늘 저 가족을 유심히 봤던 거는 제 옛날 일이 생각나서 그랬어요. 헤어진 가족들과 자식들이 생각나네요. 뭐, 그래도 다시 찾거나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들도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사실 저도 결혼을 했었죠. '했죠'가 아니라 '했었죠'에서 벌써 눈치 채셨을지도 모르겠네요. 맞아요. 과거형이죠.


전 지금 혼자예요. 흔히 말하는 '독거노인'인 거죠. 가끔 방송에서 그렇게들 말하던데 노인자만 빼면 그게 딱 저를 표현하는 말이더군요. 혼자 사는 사람이긴 한데 그래도 요즘 어디 나이 50이 노인인가요. 한창이죠. 특히 저같이 어디 좀 다녀온 사람들은 한참 정신적 기력이 충만할 때죠.


가족 얘기는 이쯤에서 그만하죠. 다 크기도 전에 저 때문에 이별한 아이들과 놓쳐 버린 부인을 이제 와서 얘기하고 싶진 않군요.


전 그들에게 죄인이에요. 남들이 저한테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전 그들에게 먼저 죄인이라고요. 남들은 사실 지금도 크게 상관 안 해요. 그냥 그저 맥주 마실 때만이라도 훌훌 털어버리고 싶네요.


다시 제 얘기로 돌아오자면 지금도 이렇게 사람 관찰하는 거로 먹고 삽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느냐고요? 슬쩍 꺼내 볼게요. 사람을 지독히 관찰하고 관찰해서 소설을 씁니다. 주로 범죄 추리물을 쓰고요. 지겹도록 쓴 걸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치죠. 힘들 때도 있어요. 그래도 고아에서 시작해 이 정도면 그리 큰일도 아니에요.


글 써서 먹고살기 힘든 세상인데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죠? 그렇게 진짜 궁금하단 얼굴을 하시니까 괜히 어깨가 들썩해지는 게 기분 좋네요. 아이고, 기분이다. 오늘 맥주까지 술술 들어가니 한 번 풀어볼게요.


이건 진짜 비밀인데 사실 저는 '고스트 라이터'예요. 그게 뭐냐고요? 말 그대로 이름 없는 유령 작가인 셈이죠.


작품에 제 이름을 넣진 않지만 제 작품은 아주 잘 팔리고 있어요. 댁이 아는 유명한 작가 이름 좀 대보세요. 그들 중 몇몇은 제가 대신 작품을 썼을 수도 있다니까요.


거짓말 같다고요? 네, 맞아요. 믿기 힘드시겠죠. 하지만 정말이에요.


여기 제가 매고 다니는 이 가방 안 좀 보시겠어요? 어때요. 5만원짜리가 가득하죠? 이게 인세라는 겁니다. 전 작품을 써서 유명 작가 이름으로 작품을 내고 인세를 받는 거죠.


작가들은 창작의 고통에서 벗어나서 좋고 저는 돈을 벌어서 좋죠. 그러니까 한 작가가 아니라 여러 명의 작가 이름으로 돌아가면서 작품을 내는 거라니까요.


이쯤 되면 왜 제가 제 이름으로 작품을 쓰지 않고 유명 작가들의 이름을 돌아가면서 쓰는지 궁금할 거예요. 또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도 의아할 거고요.


답은 정말로 간단해요. 전 아직 이 세상에 사람들에게 존재하기 힘든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럼 제가 귀신이나 유령일까요? 에이, 무슨 그런 허무맹랑한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말 그대로 이 세상 모든 서류에 '시뻘건 놈'이 된 사람이에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느냐고요? 말씀드려도 놀라지 않겠다고 약속하세요. 아까 슬쩍 말했잖아요. 좁은 곳에 오래 있었다고요.


자자, 들어보세요. 한 삼십년 전쯤 세상을 들썩이게 한 연쇄살인 사건을 아시나요? 남녀노소 따질 것 없이 열다섯 명이 차례로 죽으면서 나라 전체가 난리였죠. 이제 진짜 놀라지 마세요. 사실 그 범인이 저였어요.


맞아요. 5년을 도망 다니다 잡혀서 난리가 났던 그게 접니다. 어때요? 지금 얼굴이랑은 조금 다르죠. 그래도 조금은 남아 있지 않나요? 자세히 보면 비슷한데 그때의 그 살기와 경찰 앞에서도 "그래 내가 범인이다. 잡아라, 이 삐리리들아"라고 했던 독기가 사라졌을 겁니다. 나이를 먹고 죗값을 치르고 나왔으니까요.


20년을 살고 나왔더니 세상이 많이 달라져 있더라고요. 하지만 하나는 변하지 않았죠. 그건 바로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읽는다는 거였어요. 스마트폰과 각종 자동화 시스템이 판을 쳤지만 결국 읽지 않고는 살 수 없던 세상이었던 거죠.


그래서 전 결심을 했습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거로 다시 한 번 세상 사람들 앞에 나타나겠다고 다짐했죠.


제가 수감 생활을 하며 뭘 했는지 아세요? 바로 저의 경험이 담긴 범죄 기록과 그때의 느낀 감정들을 적기 시작했죠.


맞아요. 기억하시네요? 제가 잡혔을 때 그간 꾸준히 써 온 제 일기가 화제였죠. 저는 글쓰기 하나 만큼은 정말 좋아했고 꾸준히 했거든요. 친구가 없기도 했거니와 이상하게 글 쓰는 게 재밌었어요.


어떤 정신 나간 언론사는 제가 체포된 뒤 얼마 있다 찾아와서 수감 생활을 '옥중 일기' 형식으로 내보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니까요.


아무튼 그렇게 적기 시작한 범죄 기록과 감정을 가만히 보니까 잘만 손보면 아무도 쓸 수 없는 소설 거리가 되더라고요. 거기에 그럴싸한 상상력들을 결합한다면 그야말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작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었죠.


그때부터 그 기록들을 소설로 만들기 시작했어요. 감방에서 쓰고 또 쓰고를 반복했어요.


가끔 제 면회를 와주시는 봉사 단체 분들과 인권 변호를 맡아주신 변호사 형님께 공책을 계속 보내 달라고 해서 종일 글만 썼죠. 어떤 소설은 아예 있는 그대로의 제 경험에 주인공만 띄워서 이름을 바꾸고 살짝 감정만 넣으면 됐어요.


쓰는 건 문제가 안 됐어요. 차고 넘쳤으니까요. 관건은 결국 문장력이었죠. 그런데 그것도 어느 시점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수감 생활 내내 읽었던 신문을 매일 필사했으니까요. 문장을 베껴 쓰고 베껴 쓸수록 멋있거나 오묘하진 않지만 뜻이 명확한 신문체 그대로의 문장이 나오더라고요. 역시 범죄나 글이나 몸으로 배운 건 절대 사라지지 않는 법이니까요.


그러다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어요. 원래는 무기징역이었는데 재수가 좋았던 거죠.


세상은 20년이나 훌쩍 지났지만 제 작품은 저만이 쓸 수 있는 것들이었죠. 그런 건 변하지 않으니까요. 이게 책이든 인터넷상이든 출간만 된다면 분명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죠.


문제는 어떻게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느냐 하는 거였어요. 제가 누군지 알면 출판사가 기겁할 거란 생각부터 했죠. 끔찍한 범죄자가 쓴 범죄 추리 소설을 책으로 실어줄 거로 생각하지도 않았죠.


그런데 지금 보니까 어쩌면 마케팅을 위해서 '범죄자 누구누구가 쓴 소설'이란 타이틀을 달고 의외로 쉽게 연결됐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그건 지나간 거니까 일단 제쳐놓고요. 어쨌든 그렇게 한창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제 변호를 맡고 공책을 넣어줬던 변호사 형님한테 전화가 오더라고요. 출판사 담당자 번호라면서 갖고 있는 원고를 이메일로 보내면 연락을 줄 거다. 한 번 만나봐라. 뭐 그런 얘기를 해줬어요.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순간이었죠. 그리곤 옳다구나 싶어서 만났죠.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출판 담당자는 제게 '고스트 라이터'라는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많은 작가가 창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들 모두 등단 작가가 되기 위해 달려왔는데 그 준비 기간이 길었던 작가들은 샘이 말라 버린 것 같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그들에게 제가 가진 원고를 골고루 나눠 출판하면 인세 대부분을 저에게 주겠다. 뭐 이런 식의 제안이었죠.


거절할 이유가 있나요? 저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이건 정말 저밖에 쓸 수 없는 것이라는 확신과 살기 어려워졌다는 지금의 세상에서 사람들이 범죄 추리물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뭐 그런 개똥철학이었죠.


그거 아세요? 세상이 갑갑할수록 사람들은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걸 좋아할 수밖에 없다니까요. 제가 잡혔을 때 사람들이 제가 입은 옷과 팔찌 같은 거에 환호했던 걸 한 번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첫 작품이 모 중견 작가의 이름으로 나갔을 때 전 대형 서점에서 웃고 있었죠. 대형 출판사와 서점이 연결된 마케팅과 유명 작가의 이름값과 저의 빼어난 작품이 만나니 베스트셀러를 달리는 건 당연했어요.


6개월쯤 지나자 또 다른 원로 작가의 이름으로 저의 2번째 작품이 나가고 또 6개월 있다가 3번째 작품이 신예 작가 이름으로 나가고 하는 순서였죠. 그렇게 5년을 보냈습니다. 아직도 5편이 제 손에 남아있어요.


혹시 최근에 읽은 범죄 추리 소설 중에 기억나는 게 있나요?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그게 어떤 얘기고 어떤 감정과 상황이 얽혀있는지요.


두려워 말고 여쭤보세요. 정말 빼곡하게 설명해 드릴 수 있어요. 사실에다 약간의 상상을 더한 거니까요. 최근 사람들이 많이 읽은 범죄 추리 소설은 전부 제가 쓴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요.


사실 요즘에 제가 하는 일은 별거 없어요. 썼던 걸 고치고 또 고치는 것이죠. 이름을 빌려준 작가를 만나 밥 몇 번 얻어먹고 헤어질 때 선물 조금 받고 뭐 그래요. 그런 작가들 대부분은 출판사한테 저에 관한 얘기를 못 들었는지 직접 만나면 다들 흠칫 놀라더라고요.


아, 그 자식들 그저 고맙다고 한마디만 하면 될 건데 또 그런 소리는 곧 죽어도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작가들은 어떻게 사느냐고요? 걱정할 거 없어요. 인세는 제가 거의 다 가져가지만 그 친구들은 또 나름대로 다른 활동들을 하면서 사니까요.


저도 이 바닥 밥 좀 먹다 보니 깨달은 게 있는데 생각보다 작품만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거죠.


그러니 그 친구들한테 작품은 그저 '나 이렇게 작품 활동 하고 있다' 정도가 되겠죠. 물론 그 안에서도 대박을 터뜨리는 사람들도 많지만 글쎄요, 그런 작가들은 사실 제 원고를 받아갈 이유도 없겠죠.


지금 제 생활은 단조로워요. 마치 진짜 작가가 되기 위한 습작기를 겪는 기분이죠. 매일 오전에 일어나 써서 모아둔 글을 잠시 고치고 온종일 노는 게 전부예요.


놀 때는 사람을 꿰뚫어 보기 위한 여러 장소를 찾아다니는데 그중 하루의 마지막이 편의점 앞 맥주인 셈이죠. 붐비는 지하철역, 쇼핑센터가 즐비한 거리, 고속도로 휴게실, 산 오르기 전 입구, 유명 스포츠 경기장, 헬스장 등 놀기 좋은 장소는 정말 많다니까요.


먹고사는데 걱정은 없을 것 같다고요? 그렇죠. 돈이야 충분하니까요.


그러니까 제 꿈은 결국 뭐냐고요? 갑자기 물어보시면 당황스럽긴 한데요. 일단 2개가 있어요. 첫째는 나머지 소설 5편을 안전하게 출판하고 이런 사실이 걸리지 않는 거죠. 가족도 뿔뿔이 흩어진 제가 얼마나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겠습니까. 그간의 것들이 더럽혀지지 않는 게 첫 번째 과제죠.


나머지는 그래도 언젠간 제 이름이 걸린 책 한 편을 내고 싶다는 거예요. 출판사에서도 나머지 5편을 다 내고 3년 뒤쯤엔 제 이름으로 책을 하나 내자고 하니까요.


물론 그때는 완벽히 성형 수술을 하고 전혀 다른 이름의 제 모습으로 책을 내던가 아니면 진짜로 출판사 마케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연쇄살인범이 쓴 범죄 추리물' 따위의 슬로건을 걸 수도 있겠네요.


괜찮아요. 그때 가면 남은 일생 혼자 먹고살 돈은 생겼을 테고 그때가 진짜 그 이름 빌려 간 작가들이 입버릇처럼 말했던 '진짜 예술의 문'이 열리는 것일 테니까요.


가짜의 삶을 살면서도 현실에선 진짜의 음식을 먹는 게 진짜 예술이자 소설 아닐까요?


전 제가 그 어떤 이 나라의 작가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현실에 바탕을 둔 허구가 가미된 범죄 추리 소설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다들 범죄 현장이나 그 감정을 직접 느끼면 몸부터 벌벌 떨겠죠. 그런 겁쟁이들과 그 현장에 서 있는 전 완벽하게 다르죠.


진짜 제 소설의 소재요? 그건 다 써버렸으니 지금부터 쭉 모아야죠. 전 경험에 바탕을 둔 글을 믿어요. 그러면서 범죄 추리물에 강하니까 계속 그쪽으로 모아야 하고요.


혹시나 예전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걱정 없어요. 예전에도 전 5년이나 숨어있었는 걸요. 무리해서 제가 슈퍼에만 가지 않았더라면 더 문제없었을 거예요.


이번에도 그 정도는 문제없죠. 그렇게 된다면 이미 제 책은 나와서 대박을 터뜨리고 있을 거예요. 가령 책이 이미 대히트를 치고 있는데 제가 잡히는 상황이 온다면 정말 더 극적인 드라마가 연출되겠죠. 그와 동시에 가짜의 것인 소설이 현실로 살아나면서 예술과 현실의 경계를 제가 무너트리지 않을까요?


세상은 아마 저를 진정한 작가로 기억할 거예요. 전 그렇게 믿어요.


어라? 그런데 술기운에 다 말하고 보니 저에 대해 모든 걸 알게 되셨네요? 게다가 앞으로 저의 계획을 알고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고요.


음, 이거 좋지 않아요. 잠깐만요. 어디 가세요? 거기 멈춰요. 그쪽으로 도망가면 더 어두운데? 형씨, 나 지금 진짜 화나려 그러네. 거기로 뛰면 진짜 막다른 골목이라니까요? 다 들었으면 값을 치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