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저쪽 봐 저쪽."
현준이가 창수에게 손가락으로 반대편을 가리켰다. 40대 중반의 여자가 골프장 건너편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빨간색 승용차 쪽으로 가는 거로 봐선 차 주인이 분명했다.
"가자"라고 현준이가 말했을 때 창수는 이미 그 여자에게 성큼성큼 걸어간 뒤였다.
"저기요."
"네?"
창수는 주먹으로 여자의 복부를 쳤다. 여자는 쓰러졌다. 창수는 기절할 정도로 여자에게 발길질을 수차례 해댔다. 모든 건 속전속결이었다. 현준이가 창수에게 뒤늦게 달려왔다. 상황은 이미 끝났다.
"말 좀 하고 다니자."
현준이가 볼멘소리를 했다.
"돈이나 챙겨."
창수가 말을 튕겨냈다.
둘은 여자의 지갑에서 현금만 챙겼다. 창수는 시계를 확인했다. 밤 12시 10분 전이었다. 며칠 전부터 봐 둔 외곽의 한적한 골프 연습장이었다. 역시나 인적이 드물었다.
"컵라면이나 때리자."
차에 돌아온 창수가 복면을 벗으며 무덤덤하게 내뱉었다. 현준이는 지폐를 정확히 반으로 나눠 창수에게 건넸다.
창수는 컵라면을 먹으며 생각에 빠졌다. 기억은 20대부터 시작됐다.
창수는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이 되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몇 번 중소기업에 인턴으로 취업해 잠깐이나마 돈을 벌었다.
하지만 정규직이라는 현실과의 괴리감은 좁혀지지 않은 채 겉돌았다. 그렇게 불안정한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20대를 훌쩍 넘어 35살이 됐다.
창수에겐 10년 사귄 여자 친구가 있었다. "오빠, 우리 진짜 내년엔 결혼하는 거야?"라는 여자 친구의 물음에 창수는 2달 전에 고개를 끄덕였다.
중소기업 계약직인 여자 친구는 창수의 인턴 만료 사실을 몰랐다. 자존심 센 창수가 먼저 속였다. 꾸준히 좋은 조건을 찾아 이직하고 있다고했다.
창수는 그녀와 그녀의 부모님 앞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월급을 꼬박꼬박 저축하고 있다는 거짓말도 해버렸다.
그때부터 퍽치기가 시작됐다. 돈을 모으겠다는 일념 하나로 모든 것들을 쳐내버렸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주먹질 좀 한다던 현준이가 "퍽치기라는 게 있는데 용돈 벌이엔 그만"이라고 창수에게 바람을 불어넣었다.
"오늘은 공원 쪽으로 가자."
창수의 휴대폰에 현준이의 메시지가 떴다. 둘은 공원 앞에서 만나 가로등 귀퉁이에서 서성였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주머니 속에는 복면을 넣은 채였다. 목표 대상을 물색하다 여차하면 복면을 쓰고 뛰어가 일을 치르는 식이었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길 건너에서 비틀거렸다. 둘은 눈짓을 했다. 현준이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뒤져봐야 몇 푼 나오지도 않는다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지금 찬밥 더운밥 따져? 혼자 갈게 찌그러져 있어라."
창수가 빈정댔다.
"담배나 깔란다. 다 하고 공원 화장실로 와."
현준이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가로등 불빛 너머로 사라졌다.
그런데 일이 꼬였다.
창수가 남자에게 다가가려고 길을 건너는 찰나였다. 비틀거리는 남자가 서 있던 길모퉁이에서 웬 20대 초반의 남자가 나타나 순식간에 남자의 뒤통수를 쳤다.
"이런 개새끼가."
창수가 쓰러진 남자의 옷을 뒤지는 20대 범인의 목덜미 뒤를 잡았다. 그가 저항하며 일어났지만 창수보다 키가 한 뼘 정도나 작아 문제없었다.
"이 새끼, 너 지금 퍽치기하는 거냐? 어린놈의 새끼가 겁을 상실했구나 아주?"
창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어린 퍽치기 범인이 가만있지 않았다. 그는 붙잡힌 목덜미를 빼려 자신의 등 뒤를 향해 팔꿈치를 휘둘렀다. 창수와 그가 엉겨 붙어 몸싸움을 벌였다.
모퉁이에서 건너오던 여자 두 명이 이 장면을 보고 카메라로 찍기 시작했다.
"이 자식 이거 퍽치기예요. 이 아저씨 돈 뺏는 거라고 이거."
창수가 소리 지르며 범인의 다리를 걸어 쓰러트린 뒤 무릎으로 가슴팍을 눌렀다. 여자들은 계속 한 손으로 놀란 입을 가리며 찍기만 했다.
"신고해 주세요. 어린 녀석이 악질이네 아주."
그렇게 창수는 퍽치기 범죄 현장을 잡은 용감한 시민이 됐다. 여자들은 SNS에 그날 찍은 동영상을 올렸다.
순식간에 많은 이들이 그 동영상을 봤다. 그리고 공유했다. 사람들 사이에 퍼지고 또 퍼졌다. 몇몇 지역신문 기자가 창수의 소식을 기사화했다. 창수의 인터뷰도 실렸다.
"너 왜 그랬냐?"
현준이가 창수네 집에 찾아와 물었다.
"첫째, 몸이 그냥 움직였다. 둘째, 불의 앞에서 양심에 따라 행동했다. 셋째, 담배도 잠시 미루고 찾아간 내 돈 통을 빼앗겨서 짜증 났다. 뭘까?"
창수가 되물었다. 현준이는 저리 가라는 듯 손만 휘저으며 인상을 썼다.
"뭐야 인마, 뭐가 그리 심각해. 당연히 세 번째지. 내가 혼자 해서 혼자 먹으려는 돈 통을 어디 어린놈의 자식이."
현준이가 인상을 풀었다. 둘은 소리 내어 웃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게 변했다. 창수는 그날 이후 SNS에서 스타가 됐다. 지역 언론은 이를 지역의 자랑으로 설파했다. 시골 동네에 이런 멋진 청년이 있다는 걸 알려야 한다고 지역에서 힘 좀 쓰는 사람들이 똘똘 뭉쳤다.
중앙 언론사도 창수의 소식을 듣고 찾아와 '시골 청년의 정의' 같은 수식어를 그에게 붙였다. 그간 동네에서 꾸준히 일어나던 퍽치기 사건은 창수가 잡은 20 초반 범인의 소행으로 모두 돌아갔다. 전부 창수가 현준이와 저질렀던 범행이었다.
"평생 농사만 짓던 시골 총각 아버지와 베트남 처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그마저도 아버지는 암으로 5살 때 돌아가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입학 전날에 고국으로 돌아가셨죠. 그때부터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요즘 건강이 부쩍 안 좋으세요."
"오래 사귄 여자 친구랑 빨리 결혼도 하고 증손주도 안겨 드리고 싶은데 제가 뚜렷한 직업이 없어 이러고 있는 거죠. 사실 어려서부터 제가 체격도 좋고 힘도 세고 해서 우리 동네를 지키는 경찰관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형편상 대학도 멀리 서울로 못 가고 인근 대학에 가서 학자금 대출까지 받으면서 겨우 졸업했는데 경찰 시험 볼 때까지 도저히 돈을 벌지 않고 공부만 하기는 힘들더라고요."
"지금도 근근이 아르바이트하며 경찰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멀리 가고 싶지도 않아요. 태어나고 자라고 할머니와 여자 친구가 있는 저희 동네를 지키고 싶어요. 게다가 어머니가 다 큰 제 모습을 보고 싶어 돌아올지도 모르잖아요."
창수가 언론에 한 말은 극적인 사연으로 재탄생했다. 결국 그는 특채로 동네 파출소에서 근무하게 됐다.
"그래서 파출소 순경 되면 나 좀 끌어 주냐?"
집에 놀러 온 현준이의 물음에 창수는 "기다려봐 인마. 일단 뒤는 봐줄게"라고 웃으며 답했다.
"세상에서 가장 독성이 강한 게 뭔지 알아?"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창수가 제복을 입기 위해 깎았다는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뭔데 인마, 새끼 예전부터 책은 좀 읽더니 이제 경찰 된다고 유식한 척 좀 하네? 하긴 인터뷰한 거 보니 아주 술술 나오더만. 난 그렇게 경찰이 되고 싶어 하는지 몰랐지."
현준이가 양 눈썹을 위로 씰룩이며 물었다.
"그건 시간이지. 담배, 커피, 대마초 같은 것보다도 시간이 강한 거야. 내가 한 얘기는 아니고 랠프 월도 에머슨이라는 이름 겁나 어려운 사람이 한 얘긴데. 그러니까 내 말은 잊자는 거야 현준아. 다 잊자. 우리가 먼저 잊자. 그럼 세상도 뭐도 금방 잊고 가진 것만 남는다."
창수가 거울을 향해 손가락 두 개로 브이 자를 그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