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목격자를 찾습니다

by 반동희

"넌 뭔데 들어온 거야 인마?"


TV에서나 보던 강은창이 눈앞에 서 있었다. 그는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놀란 게 분명했다. 강은창은 20대 후반의 남자 영화배우로 요즘 한창 상한가를 치고 있는 충무로의 떠오르는 블루칩이었다.


"전 그냥 심부름 전화를 받고 왔거든요. 여기 두고 나가겠습니다."


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강은창의 손엔 분명 피가 묻어있었다. 내게 전화를 한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문을 두드려도 나오지 않아 직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그 순간에도 그 여자는 집에 없었다.


"됐고, 너 이리와 봐. 너 몇 살이야?"


"23살입니다."


"너, 나 알지?"


"네, 얼마 전에 영화 재밌게 봤는데요."


"오늘 여기서 나 봤다는 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절대로."


강은창은 갑자기 내가 왼손에 들고 있는 헬멧을 휴대폰으로 찍었다. 헬멧에는 내가 근무하는 업체 전화번호와 상호가 적혀 있었다. 그걸 사진으로 저장하는 듯했다.


"계좌번호 불러봐."


"네? 갑자기 무슨 계좌번호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센터 번호 말고 월급 받는 개인 계좌번호 부르라고."


일단은 불러줬다. 그는 다시 낮은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거기 서 있지 말고 잠깐 이리 와봐. 저기 앉아."


난 그가 지시한 소파에 앉았다. 그때까지도 집 안에선 그 어떤 인기척이 없었다. 도대체 내게 전화한 여자는 어디 가고 이 녀석이 내 앞에서 계좌번호나 부르라고 협박하는지 의아했다. 지금 내게 이 녀석은 잘생긴 영화배우 강은창이 아니라 손과 팔과 셔츠에 핏방울을 묻힌 의문의 사나이였다.


"잠깐만 있어 봐. 계좌로 돈 좀 부쳐줄게."


그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누르기 시작했다. 난 불현듯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에 휘말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좀 전에 여자와 통화한 내용의 녹음 파일을 내 개인 이메일로 보냈다. 그리고는 즉시 발송 내역을 삭제했다. 여자와 통화내역도 지웠다. 그건 더 이상 내 삶에서 불행한 것들에 휘말려선 안 된다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돈 부쳤어. 네 계좌에 찍혔으니 설령 이상한 짓을 하더라도 너만 더 복잡해 질 거야. 그거 잊지 말고. 오늘 여기서 나 봤다는 거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 그냥 넌 여기 와서 심부름한 걸 주고 간 거야.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알았어? 사온 건 내려놓고 가."


"네."


"나가 봐. 돈은 그게 다가 아니야. 일단 조금 보냈어. 내일은 네가 입을 열 수 없을 정도로 나눠서 보낼 테니까 하루 종일 확인해봐. 그리고 조끼에 붙은 네 이름이랑 업체명도 다 저장했으니까 서로 불편하지 말자. 너 돈 그렇게 챙겼으니 오히려 땡잡은 거야. 로또지 로또. 입 다물고 살아."


그게 그날 처음 마주한 영화배우 강은창과 나의 대화 전부였다. 화면으로만 보던 터프한 영화배우가 피를 묻히고 눈앞에 나타나 갑자기 돈을 줄 확률이 얼마인가 따져봤다. 오른쪽 주머니에 손을 넣어 맨솔 담배를 매만졌다. 전화 속 여자가 사오라고 했던 담배였다. 내가 자주 피우는 담배이기도 했다. 잔액 조회를 해봤다. 잔액이 5천12만원이었다. 월급날까지 20일을 남겨두고 원래는 12만원이 있어야 했다. 한 번 더 조회를 해봐도 분명히 5천12만원이 들어있었다.


모든 게 확실했다. 방금 난 가장 인기 많은 영화배우를 어느 집에서 우연히 만나 그의 피 묻은 손과 팔과 옷을 본 뒤 그로부터 5천만원을 받은 거였다. 물론 어떤 여자의 전화를 받아 그 집에 갔으며 그 집에서 그 여자는 없었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5천만원 뒤에 가려야 했다.


난 2년째 오토바이로 강남을 누비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나를 "심부름맨" 혹은 "심부름꾼"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현실에선 "야", "저기요", "형", "아저씨" 등등 다양했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건 역시나 "오빠"였다. 내가 하는 일은 간단했다. 고객이 원하는 잡일을 해주는 것이었다. 편의점 담배 심부름부터 강아지 약 사다 주는 일까지 해봤다. 여자들만 사는 원룸에 불려 가 2시간 동안 벽에 못만 박았던 기억도 있다.


밤에는 배달 음식점 음식을 좀 더 빨리 먹겠다고 나를 찾는 고객들도 있었다. 시키는 음식들을 보면 군침이 돌 정도였다. 어쩜 그리도 다양한 음식을 시키는지 창의성에 입이 뜨악하고 벌어질 지경이었다.


강남이라는 잘 사는 곳을 배경으로 두고 있어 그런지 종류부터 확연히 달랐다. 음식도 먹어본 사람들이 잘 알고 잘 먹는다는 걸 그때 배웠다.


"논현동 토지주택공사 맞은편에 고깃집이 있는데 거기 고깃집이 맛있거든요. 제주 돼지 시킨 다음에 구워서 바로 가져다주세요. 초벌 해서 나오니까 얼마 안 걸릴 거예요. 오실 때는 편의점에서 라면 4봉지랑 담배도요."


한 번은 이런 전화를 받기도 했다. 나는 그날 혼자 고깃집에 가서 4인분을 주문한 다음에 단 한 점도 먹지 않고 열심히 구워 고객의 집을 향해 질주했다. 중간에 편의점을 들를까 하다가 만약 고기가 식을 경우 고객이 사장에게 항의하고 그 항의가 불호령이 돼 내게 올까 봐 일단은 고기부터 배달했다. 그리고 다시 나가 편의점에서 사다 줬다. 후회로 가득한 내 과거를 덮으려면 지금 당장 사소한 일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신념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날 밤에 강은창으로부터 받은 5천만원은 내 인생의 항해를 막다른 곳으로 몰았다. 그건 분명 살인 사건의 단면이었으며 난 로또 복권 맞은 것처럼 그 사건을 다른 물질로 맞은 것이었다. 그날부로 난 심부름꾼 일을 그만뒀다. 그리곤 통장을 계속 확인했다. 시차를 두고 여러 계좌에서 들어온 돈은 끝내 19억5천만원까지 불었다.


믿을 수 없었다. 난 즉시 이 불안한 행복을 안정적으로 잡기 위해 아는 형에게 전화했다. 옛날부터 친했던 대포 통장에 빠삭한 형이었다.


"형, 갑자기 전화해서 놀랐을 거야. 그런데 급해. 오늘 중으로 대포 통장 5개 좀."


형은 곧장 대포 통장 5개를 마련해줬다. 난 5개의 통장에 돈을 나눠 넣은 뒤 몽땅 현금으로 찾았다. 다시 형에게 대포 통장 10개를 받아 차례로 돈을 나눠 넣었다. 그리곤 비트코인으로 돌렸다. 나는 당장 외국 어디든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눈을 감은 사건은 연예인 김은수 사건이었다. 내가 강은창이 보낸 돈을 확인한 뒤 다음날 심부름센터에 가서 "그만두려고요"라고 말했을 때 사장님 뒤에 있는 TV에서는 '속보, 연예인 김은수 자살'이라는 뉴스 자막이 나오고 있었다.


난 그녀가 자살한 게 아닌 타살이라고 확신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그녀가 우울증에 못 이겨 자살을 택한 것이라고 했지만 내 이메일에 보내 둔 통화 녹음에서 그녀는 매우 밝은 목소리로 "대나무 족발집 A세트랑 올 때 맨솔 담배 하나 사다 주세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물론 그때는 그게 연예인 김은수라는 걸 몰랐다.


내가 본 강은창이 범인이라는 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손과 팔과 셔츠와 내 눈에 비친 피를 19억5천만원으로 닦았다. 분명히 그는 돈으로 피를 닦았으며 그 피가 김은수의 것일 확률이 높았다.


그날부터 내 습관은 인터넷에 '김은수'라고 쳐 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 난 깜짝 놀랐다. 한 매체가 단독이라며 김은수의 자살 1시간 오피스텔 출입 CCTV를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김은수가 살던 오피스텔 관리자가 끝까지 관련 CCTV가 없다고 했으나 경찰 조사 결과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수사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이었다. 어떤 곳에선 대놓고 CCTV를 숨기려 했던 관리인까지 석연찮은 구석이 나올 경우 처벌 받을 수 있다는 해석을 달았다.


침이 말랐다. 그때 책상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울렸다. 강은창일까? 경찰일까?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돈은 어떡하지? 무서워서 아무 말없이 갖고 있었다고 하면 문제없는 건 아닐까? 그런데 대포 통장은? 온갖 고민과 상상이 한 번에 몰려왔다.


"여보세요?"


말이 없었다.


"여보세요?"


또 말이 없었다. 모르는 번호라 더 답답했다.


"전화를 주셨으면 말씀해 주세요. 말씀 안 하시면 끊습니다."


그때 수화기 저편에서 답이 돌아왔다.


"입 확실히 다물어라. 그 정도면 많이 줬다. 불어봤자 너만 불리해."


남자 목소리였다. 워낙 작게 말해 강은창인지는 확실치 않았으나 메시지는 분명 그쪽이었다. 전화는 뚝 끊겼다. 난 통화 목록을 다시 지웠다.


전화가 또 울렸다. 이번엔 또 다른 번호였다. 뭔가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 같다는 불길함이 치솟았다. 일단 통화 버튼을 누르고 말을 하지 않았다.


"여보세요?"


여자 목소리였다. 괜히 김은수와 비슷한 것 같았다. 오싹했다.


"저 은수 언니입니다."


통화 속 여자는 다시 말했다. 귀신과 통화는 아니었다.


"네?"


"저 연예인 김은수 언니 되는 사람이라고요."


"네, 아 그러시군요."


뭔가 올 것이 온 것 같았다.


"제가 지금 경황이 없어서 용건만 말씀드릴게요. 목격자를 찾고 있습니다. 만나 주시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침묵으로 대응했다.


"CCTV 보고 수소문해서 연락 드린 겁니다. 그쪽 말고는 찍힌 분이 없더라고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무서웠다. 하지만 강은창이 진짜 범인이라면 그 자식은 어떻게든 CCTV에 찍히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리라 추측했다.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네 만나 뵙겠습니다."


"그런데요. 그쪽 분이 그날부로 일도 그만두셨고 사장님 말씀으로는 어딘지 그날 밤에 이상했다고 하더라고요."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별다른 건 없었습니다."


애써 침 삼키는 걸 감추고 대답했다.


"저는 목격자를 찾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경찰은 용의자를 찾는 것 같더라고요. 걱정돼서 말씀드린 겁니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김은수 언니라는 사람을 만났을 때 경찰도 함께였다. '진짜 저 사람이 김은수 언니가 맞을까' 의심될 정도로 그녀는 영화에서 보던 김은수와 생김새가 달랐다. 함께 나온 경찰과 함께 나는 곧바로 경찰서로 이송됐다. 조사실엔 내 모든 신상이 가지런히 정리돼 한 장의 서류로 올려져 있었다.


"왜 그날 바로 일을 그만두셨죠? CCTV에 혼자 찍혔습니다. 게다가 김은수 씨와 통화한 휴대폰 통화 내역도 삭제돼 있더군요. 일 할 때 심부름센터 휴대폰 쓰는 거로 알고 있고 휴대폰은 자동 녹음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굳이 지워버린 이유가 뭡니까? 아주 흥미로운 점은 전과 기록이 있으시더군요? 그걸 연결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대목은 분명 아닙니다."


이들은 이미 내가 고등학교 시절 절도와 폭행 혐의로 소년원까지 들락거렸던 기록을 읊고 있었다. 우발적인 사고였고 죗값이 끝난 일이었지만 그건 법정과 소년원에서 얘기였고 이곳은 사회였다. 아직 경찰은 거기서 만난 형이 대포 통장을 만들어줬다는 건 모르는 듯했다.


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살해 혐의로 내가 교도소에 가 있을 시간과 갔다 와서 새 삶을 살았을 때 벌 수 있는 돈까지 머리에서 굴렸다. 그리고 나는 그 돈이 강은창이 준 19억5천만원을 넘을 수 있을지 따져보기 시작했다. 확률은 낮지만 어찌해서 재수가 좋으면 강은창이 내게 전달한 돈과 내 돈이 현금으로 인출돼 대포 통장으로 건너간 것들까진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확률이 낮다는 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며 낮은 확률의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뜻했다. 경찰이 내가 전과자라는 프레임에 갇히면 현금으로 인출돼 대포통장을 거쳐 비트코인으로 돌아간 돈이 안전할 수 있었다. 내 진술로 그렇게 밀어넣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밀려왔다.


고민은 금방 풀렸다. 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우발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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