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환상 속의 그대

by 반동희

건우는 성북동에서 태어났다. "서울 진짜 부자는 강북에 있다"던 말이 건우와 꼭 맞았다.


건우는 태어날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주식을 물려받았다. 신문에 종종 나오는 미성년자 주식 부자가 건우였다.


건우의 외할아버지는 건우 이름으로 강남의 원룸 몇 채를 사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한다고 바빴지만 매일 놀아주는 아주머니가 있어 오히려 편했다.


건우의 삶은 하루하루가 무료했다. 그나마 초등학교를 마치고 떠났던 미국 유학 시절이 재미있었는데 사실 영어 실력 늘고 친구들과 파티한 추억 외에는 남은 게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건우는 당연한 것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은 '다른 동네' 사람들을 종종 봤다. 그때마다 건우는 그들을 보며 불편하고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건우에게 "저들은 노력하지 않아 지금과 같은 불편을 얻은 거야"라고 강조했다.


건우는 그 말을 철저히 믿으며 그런 불편함에서 눈을 떼기 시작했다. 건우는 값 싼 동정심이 세상의 불편을 해소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 확장을 선택하며 자신이 갖고 태어난 것을 마음껏 누렸다.


오히려 부유함과 그 안에서 나올 수 있는 자유로움을 한껏 드러낼수록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목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건우는 세상의 불편함보다는 재미있고 즐거운 것에 주목하는 편이 더욱 가치 있다고 정의했다. 어차피 모든 것엔 단면이 있기 마련인데 자신이 눈을 고정해야 할 곳은 재미와 즐거움이라고 판단했다.


"거실 안마 의자에 앉아 77인치 TV로 축구 보면서 와인 냉장고에서 꺼낸 로마네 꽁띠를 마셨지만 와이키키 해변에서의 그 맛은 아니다. 마치 지난해 보라카이 화이트비치에서 놀다가 아버지 소유의 그랜드 비스타 302호에서 먹었던 산미겔의 그 대중적인 알싸함과 비슷하다."


건우가 페이스북에 이렇게 쓰며 거실에 누워있는 사진을 첨부했을 때 사람들은 '좋아요'를 마구 눌렀다.


미국에서 함께 유학한 친구들은 적당한 영어를 섞어 댓글을 달았다. 그들과 친분을 과시하고 싶은 사람들은 또 다른 댓글을 영어로 덧붙였다. 건우가 아버지 회사에서 맡은 직책인 '본부장' 아래의 부하 직원들 역시 "본부장님 럭셔리하십니다", "집에 한번 초대해주세요" 따위의 댓글을 달았다.


건우는 페이스북 생활을 즐겼다. 자신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그 이상향을 자기가 대신 채워줄 수도 있다고 정리했다.


건우이런 과시욕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넘어 상대보다 위에 있다는 수직적 관계의 강화로 이어졌다.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과 사진마다 수백 개의 좋아요가 찍히는 것을 보면서 건우는 묘한 승리감을 맛봤다.


"다들 승차감 이상으로 하차감이 뛰어나다는 아우디 r8를 뽑은 다음 새벽에 송도 국제업무지구 주변을 달렸다. 하지만 역시 나는 묵직하고 저렴한 레인지로버가 더 좋은 자유롭고 한량 기질이 다분한 마이너 감성의 소유자다. 평범한 직장인이 10년간 숨만 쉬고 살다가 대출 끼고 벤츠 한 대 뽑은 것과 같은 어색함을 이번 드라이브에서 체험했다."


새로 뽑은 번쩍번쩍한 자동차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을 페이스북에 썼을 때는 모르는 사람들이 "금수저 자식이 위화감 조성하네" 등의 댓글을 달았다.


하지만 건우는 그저 갖지 못한 자들의 푸념과 시기 어린 질투라고 치부했다. "난 그래도 아우디만 타는데" 따위의 동네 친구들과 "다음엔 같이 가자"와 같은 유학생 시절 친구들의 댓글이 건우 눈에는 더욱 또렷했다.


"이번 추석엔 가족 모두가 부산으로 내려가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세워 둔 가족 요트를 타려고 했다. 그런데 뒤늦게 태풍이 온다고 해서 아예 세부로 건너가 호핑투어나 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치 매주 가던 가평 승마장에 2주 만에 갔는데 자기 전용 말이 없어서 말 빌리려고 줄 서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부자라고 거드름 피우던 사람들을 봤을 때의 씁쓸함이다."


건우의 페이스북 글은 이렇게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다. 그럴수록 사람들의 '좋아요'는 입소문을 타고 계속 늘었다.


이 무렵 건우는 본부장 자리를 관두고 조용히 경영 승계를 위한 또 다른 유학을 준비 중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많아지자 건우는 진보적인 언론사의 기사와 진보 논객들의 글을 링크하며 비판하는 등 자신의 활동영역을 넓혔다. 그러는 사이에 주변에서는 건우를 페이스북 스타이자 '보수의 아이콘'이라고 띄웠다.


건우 또한 이 별명이 싫지 않았다. 그는 이제 자신이 진짜 보수의 가치를 전파하는 파수꾼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건우는 보수 커뮤니티를 표방한다는 몇몇 사이트에 매일 접속해 자신이 페이스북 스타 건우임을 인증하며 사회의 정치적인 논쟁과 이념적인 논의에 대해 공격적인 글을 써댔다. 보수 언론의 사설과 해설을 섭렵하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도 축적해 나갔다.


순식간에 건우는 보수적인 젊은 논객으로 우뚝 섰다.


어느덧 건우는 아버지 회사 경영 수업 따위는 뒷전으로 제쳐놨다. 이렇게 매일 페이스북과 인터넷에서 글을 쓰고 놀며 없는 자들의 푸념을 갉아버리는 게 훨씬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들이 노력하지 않아 얻은 결과였으며 건우 눈에 그들은 여전히 노력하는 대신에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바쁜 사람들이었다.


건우는 외할아버지로부터 원룸을 물려받아 관리인을 고용한 뒤 매일매일 키보드와 씨름하며 자신의 시각을 체계화했다.


"오빠 진짜 멋있어요.", "오빠 저랑 밥 한 끼만 하실래요?", "오빠 저도 오빠 차 타 보고 싶어요" 따위의 페이스북 메시지까지 날아오면서 건우는 '역시 나의 날카로운 글발과 짱 멋진 라이프스타일이 먹히는 데는 남녀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원룸 하나를 멋진 작업실로 차린 건우는 젊고 신선한 보수의 아이콘이자 시대를 풀어내는 페이스북 스타이자 이따금 방송에도 출연해 독설을 내뿜는 논객 혹은 작가로 포장됐다. 물론 건우의 통장은 원룸 세입자들이 매달 내는 월세로 꼬박꼬박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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